반값 외국인 가사 노동자 도입, 답이 아닙니다
거듭되는 저출생 헛발질 정책... 남녀평등 노동조건 개선이 진짜 해법
▲ 2019년 2월 27일 서울의 한 병원 신생아실. ⓒ 연합뉴스
출산하면 주택자금 또는 전세자금 일부를 지원 혹은 탕감해준다거나, 자녀 셋을 낳은 아빠에게 병역을 면제해주자는 방안이 여론의 반발과 조소에 부딪혀 좌초한 가운데, 이번에는 외국인 가사 도우미(가사 노동자)를 도입해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책이 나왔다.
고용노동부와 서울시가 제안한 외국인 가사 노동자 도입이 이르면 하반기부터 추진될 전망이다. 6월 중 시범 사업 계획을 완성해, 이르면 올 하반기 100명 규모의 외국인들을 비전문취업(E9) 체류 자격으로 입국 허가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 소식을 듣자마자 여행으로 갔던 홍콩에서의 풍경이 떠올랐다. 무더운 거리를 걷는데 가는 곳마다 주말을 즐기러 나온(?) 필리핀 여성 노동자들 무리와 마주쳤다. 화려한 쇼핑몰과 공원 곳곳을 차지한 그녀들의 모습에 마음이 불편했다.
휴일, 평소 노동하는 공간에서 내몰린 그녀들은 분명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편히 쉴 자리는 없었다. 노출된 공공장소에 그녀들이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높은 국민소득과 화려한 야경에 가려진 어두운 면이었다.
이제 우리도 그 전철을 밟겠다는 것이다. 연초, 통계청이 밝힌 2022년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일생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은 0.78명. 인구소멸의 위기 앞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 봐야 한다는 말은 좋다. 하지만 우리와 합계출산율이 크게 차이 없는 싱가포르와 홍콩의 정책에 대한 실효성 평가나 사회적인 영향을 면밀하게 살피기보다 도입부터 서두르는 게 과연 맞는 걸까.
외국인 가사 노동자 제도 도입의 명암
외국인 가사 노동자 도입은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우선, 이주노동 및 노동자에 대한 입안자들의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고용허가제 법안까지 바꿔가며 외국인 가사 노동자를 허용하자는 차별적 주장은 선진국에 들어서려는 지금 힘겹게 합의한 최저임금제도마저 흔드는 것이다.
이미 농촌과 중소사업장이 인력난을 겪으며 외국인 노동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도, 여전히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식은 잘 사는 우리가 못 사는 그들에게 수혜를 베푼다는 한계에 머물러 있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출산과 육아, 돌봄과 가사노동에 대한 시대에 뒤떨어진 이해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저출생과 고령화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돌봄노동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런데 말이 통하지 않아도, 최저임금도 지불하지 않아도 누구나 해도 되는 일이라며 제 값도 치르지 않고 외국인 노동력으로 해결하자는 인식은 돌봄과 가사노동을 폄하하는 것이다.
또한 국내의 여성들은 돌봄만 해결되면 아이를 낳아야 할 대상으로, 저임금에도 한국으로 올 동남아의 여성들은 돌봄과 가사노동의 수단으로 여기는 여성차별도 큰 문제다. 더불어 돌봄 노동을 구매할 수 있는 경제력에 따라 계급적인 차별까지 야기한다.
더군다나 육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없는 건가? 아이들은 양육자를 통해 세상을 접하고 배움을 확장해 나간다. 언어는 물론 우리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외국인 가사노동자로 돌봄을 대체하겠다는 발상은 국가존립을 위한 출산율에만 초점을 맞출 뿐, 태어날 아이와 낳고 기를 국민 개인의 권리와 행복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저출생의 진짜 원인
▲ 오세훈 서울시장 ⓒ 사진공동취재단
올해 열 살인 아이를 키우는 동안, 우리 사회에서 직간접적으로 강요되는 출산의 의무는 있지만, 출산과 육아의 권리는 과연 보장되는 것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될 때가 많았다. 아이가 하나인 나는 일상 속에서 무차별적으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로부터 '하나 더 낳아야지'라는 말을 듣고 산다.
지인은 아들 둘 초등 엄마인데, 여전히 '딸 없으면 서럽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딸 하나인 엄마는 분명 '아들은 하나 있어야지'라는 말을 듣고 있을 것이다. 출산은 한 여성과 그 여성의 가정 상황을 고려한 개인의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여성에게 당연히 출산의 의무를 지운다.
그렇다고 수월하게 출산하고 육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아이를 낳으러 가기 전날까지, 이미 가진통이 시작되어 출산이 임박했음을 느끼면서도 밤 9시까지 일을 하고 다음 날 출산을 하러 갔다. 대체인력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서였다. 선배들이 우스갯소리처럼 들려준 출산경험이 찐 현실이었음을 실감했다.
법으로 보장된 3개월의 출산휴가를 가는데도 대체 임시인력이 온 것이 출산일 하루 전이었다. 인수인계가 제대로 될 리 없어서 수시로 전화를 받고 아이를 돌보는 틈틈이 일해야 했다. 돌아가서 공백을 수습하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과 체력적 부담은 오롯이 나와 아이의 몫이었다.
더군다나 육아와 돌봄 노동은 늘 여성에게 책임을 부여한다. 직장맘은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하는데"라는 말을 듣는 것이 일상다반사다. 가족 중 누군가의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경우는 행운이지만 그 또한 대부분 조부모인 여성이 돌봄을 대리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결국 여성에서 여성으로 돌봄의 책임이 전가될 뿐이다.
남성 근로자와 비교해 차별도 받는다. 어린아이가 있는 경우, 야근이 어렵고, 병치레 등으로 잦은 연차를 쓸 수밖에 없다. 자연히 승진에 대해서도 차별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벌어진 격차는 다시 남녀의 임금 격차로 이어진다.
돌봄이 대부분 여성에게 전가되어 있고, 임금도 남성에 비해 낮은 수준이므로 결국 여성의 경력이 단절되는 구조적인 문제로 이어진다. 어렵게 경력을 이어가도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즈음 경력이 단절되는 것이 흔한 사례다.
저출생 문제의 해법 : 양성 평등, 돌봄의 권리 확보
▲ 사진은 tvN 드라마 <미생> 속 워킹맘의 모습 ⓒ tvN
맞벌이가 많아지면서 남성의 육아와 가사노동 참여가 늘어났지만, 여전히 출산과 돌봄에서 발생하는 기획 노동의 주체는 대부분 여성이다. 출산이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고, 남성의 소득수준이 더 높기 때문에 여성이 주로 양육을 맡게된다.
하지만 단군 이래 가장 많은 교육을 받은 지금 세대의 여성들에게 가사 노동 및 양육 부담을 전가하는 문화에서 저출생은 필연적 결과 아니었을까? 출산율에만 집착하며 여성에서 여성으로 돌봄을 돌려막기 하려는 사고방식으로는 출산뿐만 아니라 결혼에도 냉담한 2030 여성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아이를 낳아도 주당 60시간 이상 일해야 하고, 내 아이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 키워야 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어떤 여성이 굳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선택을 하려고 할까. 그리고 최저임금도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법안이 발의되는 사회에서 외국인 가사노동자 손에 자란 아이들은 과연 차별과 인권에 대해 무엇을 배우게 될까.
인구 소멸의 위기 앞에서 무엇이든 해야 한다면, 가장 먼저 고민할 것은 출산하고 키울 권리를 남녀가 평등하게 누릴 수 있게 노동의 조건을 개선하는 일일 것이다. 회사의 눈치를 보거나 훗날 불이익을 계산하지 않고 육아휴직을 쓸 수 있고, 아이가 어린 시기에는 탄력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제도의 실질적 시행이 필요하다.
우리의 저출생 문제가 비용 때문만이라고 생각하고, 출산과 양육을 둘러싼 성평등과 노동의 문제들을 외면하며 여성을 출산과 돌봄의 도구로만 여겨서는 국가소멸의 날은 나날이 앞당겨만 질 것이다.
수십 년 째 외국인 가사 노동자를 활용해도 우리와 오십보 백보인 국가말고 남성의 양육 참여를 보장하여 출생율 반등을 이뤄낸 스웨덴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도 많다. 이왕이면 모범생을 따라하는 게 결과도 좋지 않을까. 남성이든 여성이든 국민이 출산과 육아에서 주체가 될 수 있고, 경력의 공백도 줄일 수 있는 국가의 깊은 고민이 반값 외국인 가사 노동자 도입보다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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