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돈 받으려 가정위탁? 국가 태도 실망스럽습니다"

복지부, 수급비 사용내역 제출 요구... 가정위탁부모들 부정사용 간주 태도에 반발

등록|2023.05.22 09:36 수정|2023.05.22 10:14

▲ 전국일반가정위탁부모모임에서는 가정위탁 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급여관리점검 반대 뜻을 분명히 했다. ⓒ 은평시민신문


8년째 가정위탁으로 두 아이를 돌보고 있는 이현정씨는 최근 주민센터로부터 황당한 연락을 받았다. 아이들이 받는 수급비가 제대로 쓰이는지 확인에 필요하다며 관련 영수증 제출을 요구받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아동 전담기관에서 방문해 아이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살피고 아이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가정위탁 전반사항을 살폈는데 갑자기 구체적인 수급비 사용내역을 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주민센터의 수급비 사용내역 영수증 제출 요구는 2022년 보건복지부가 '수급자 급여관리(사용)실태 점검' 방침을 바꾼데 따른 것이다. 2021년까지는 위탁가정의 위탁부모로 급여 유영 등의 우려가 없다고 시장·군수·구청장이 판단한 경우에는 급여관리 점검 제외 대상이었다.

보호대상 아동 살피는 현실적인 대책 마련돼야 

이현정씨가 가정위탁에 관심을 갖고 두 아이를 돌보게 된 건 2015년부터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알게 된 한 아이가 위기가정으로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이씨는 아이를 돌볼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가정위탁제도를 알게 됐다.

그렇게 첫째 아이와 2년 정도 인연을 맺게 됐고 아이가 친가정으로 복귀한 뒤 둘째 아이를 만나게 됐다. 이후 첫째 아이 가정이 다시 위기상황을 맞고 다시 돌아오면서 이현정씨는 지금까지 두 아이를 돌보고 있다.

"무조건 뭘 안 하겠다는 게 아니에요. 해마다 연말정산도 하고 카드사용내역도 정리하니까 그런 방법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확인할 방법이 있어요. 그런데도 영수증 하나하나를 제출하라고 하니 답답한 거죠. 그리고 우리가 마치 뭘 바라고 아이들을 돌보는 것과 같은 시선에 정말 힘이 빠져요."

이현정씨가 분노하는 지점은 단지 영수증 제출 요구 때문만은 아니다. 한 아이를 돌보고 성장시키는 지난한 과정을 기록하고 들여다보기 위한 체계와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아니라 단지 지급한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들여다보겠다는 단순한 접근이 위탁가정 부모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사실 수급비 들어오는 건 대부분 아이 학원비로 지출되고 아이들을 위한 저금으로 쓰고 있어요. 아이들을 돌보면서 어떤 금전적인 보상을 생각한 일도 요구한 일도 없어요. 하지만 행정의 이런 태도는 마치 우리가 아이들을 이용해 무슨 보상을 받으려는 시선으로 느껴져서 불편해요." 

영수증 제출 요구의 문제는 위탁가정의 아이를 온전히 그 가정의 일원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오류도 범하고 있다. 한 가정에서 함께 생활한다는 건, 공동생활을 의미한다. 애초에 생필품 등이 구분되어 구입되고 쓰이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아이의 것만 따로 떼어내 지출증빙을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 2021년도 보건복지부 국민기초생활보장 사업에서는 위탁가정이 수급비 관리 점검 제외 대상이었으나(왼쪽) 2022년 들어 연2회 지출증빙을 해야 하는 수급비 관리 대상으로 바뀜(오른쪽) ⓒ 은평시민신문


수급비 부정사용 간주하는 국가태도에 실망

전국일반가정위탁부모모임은 보건복지부의 가정위탁부모 대상 급여관리점검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고 2022년 12월부터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철저한 자격심사를 거처 위탁부모가 되었지만 아이의 수급비를 부정사용할 것이라 간주하는 국가의 태도에 깊은 실망을 느낀다"며 "급여관리점검을 중단하고 현실적이고 본질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부모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A씨는 "'얼마 받아요? 받으니까 하겠지'라는 말이 상처가 된다. 위탁부모들은 수고비 한 푼 받지 않고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데 보건복지부가 '무지에서 비롯된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B씨도 "비혈연관계지만 어느새 내 가족이 되었는데 보건복지부는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의 경계를 치라고 한다. 물건을 살 때마다 일일이 분리하고 영수증도 따로 모으란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에 답답함을 호소했다.

우리나라의 가정위탁보호의 유형은 대리양육가정, 친인척에 의한 위탁가정, 일반 위탁가정으로 분류되고 있다. 대리양육은 친조부모나 외조부모가 위탁아동을 양육하는 경우를 말하며 조부모나 외조부모를 제외한 친인척이 양육하는 경우는 친인척에 의한 위탁으로 분류된다. 위탁아동과 혈연관계가 없는 일반인이 위탁아동을 양육하는 경우를 일반위탁가정으로 분류한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가정위탁보호아동현황에 따르면 2021년 가정위탁보호아동은 총 9923명으로 이 중 1084명이 일반위탁가정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서울은 70가구에서 79명의 아이가 돌봄을 받고 있으며 은평구에서는 10명의 아이가 일반가정위탁 보호를 받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