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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작곡가라고 무시한 나를 반성합니다

피악존카의 타란텔라에서 배운 삶의 태도... 어렵고 독특한 것만이 뛰어난 것은 아냐

등록|2023.05.31 21:04 수정|2023.05.31 21:42
부산 지역 시민기자들이 일상 속에서 도전하고, 질문하고, 경험하는 일을 나눕니다.[편집자말]
어느 날, 원장님께서 악보 하나를 가지고 오셨다. 타란텔라(tarantella)였다. 타란텔라는 8분의 6박자 또는 8분의 3박자 계통의, 장조와 단조가 교대로 나타나는 이탈리아 나폴리 지역의 빠른 춤곡이다. 리스트의 타란텔라가 유명하지만 다른 작곡가들도 타란텔라를 작곡했다. 힐끗 악보를 살피니 낯선 작곡가(A. Pieczonka)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피애존카? 피악존카? 도대체 뭐라고 읽어야 하지? 어느 나라 작곡가야?'

궁금해 하면서 끝까지 연주해 보았다. 처음인데도 크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 악보였다. 내심 조금 더 난이도 있는 곡을 연습해 보고 싶던 차라 실망스러워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좀 더 배울 만한 곡을 치고 싶은데, 다음에는 그렇게 말씀드려야겠다.'

쉬운 곡이라 감동이 덜할 줄 알았는데
 

A.Pieczonka의 타란텔라 악보 서두타란텔라 ⓒ 박은정


연습을 시작하면서는 그런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런 반전이 있나. 곡이 귓가와 입안에서 계속해서 맴돌고 머무는 게 아닌가.

알버트 피악존카는 1828년 동프로이센에서 태어나 1912년까지 독일, 영국, 미국에서 주로 활동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다. 내가 연습한 A 단조 타란텔라는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곡이라고 한다.

위키피디아 영문판에 따르면, 교육적으로도 훌륭하고 아마추어 연주자들에게 특히 사랑받는 곡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과연 연주하기 까다롭지 않으면서도 난이도 대비 화려하고 아름답게 들리는 특유의 매력이 있다. 이런 효과 때문일까. 요즘 초등학생들이 콩쿠르에 나갈 때 많이들 연습한다고.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먹고 난 뒤 아이와 함께 연주 영상을 찾아보았다. 도입부의 빠르고 화려한 멜로디는 단숨에 흥미를 돋우기 충분했다. 아이는 내가 연습을 위해 복사해 온 악보를 가져가더니 거실의 디지털 피아노에 앉아 더듬더듬 연습했다. 들으면서 곡의 매력에 빠져버린 것이다.

듣는 즐거움도 크지만 연주하는 입장에서도 쉽게 곡에 익숙해지면서 서서히 완성도를 높여가는 성취감, 더불어 고조되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준다. 도입부의 몇 마디를 예로 들어본다면, 반복적인 멜로디에 오른손 시작 음과 왼손 부분이 한 음씩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온다.

이런 구조는 곡의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반복되거나 변형된다. 같은 화음이지만 옥타브로 더 높이, 더 낮게 음에 차이를 주어 느낌을 달리하거나 강조하기도 한다. 오른손은 같은 음을 반복하고 강약을 달리 하면서, 왼손은 한 음씩 내려가면서 규칙적인 변형이지만 음색이 다채롭고 풍부하며 강렬하게 느껴지게 한다.

마치 반복되지만 미세한 단어의 차이로 더 깊은 감정을 느끼게 되는 시의 문장을 보는 듯 했다. 또 누구나 쓸 법한 단어만 쏙쏙 골라 쉬운 문장을 쓴 것 같은데, 소리 내어 읽을수록 아름답고 감탄스러운 그림책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천재 시인 이상의 시, 데이비드 위즈너의 그림책처럼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냈을까?' 하며 감탄부터 자아내거나 놀라움에 압도당하게 만드는 작품이 있다. 독자들은 그들의 탁월한 상상력, 복잡한 구조, 기발한 창의성에 감탄하며 새로운 지적인 자극에 충격과 즐거움을 느낀다.

하지만 힘들게 해석을 요하지 않고, 반복적인 형식의 아름다움, 공감되는 내용을 통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작품도 있다. 피악존카의 타란텔라는 후자였다. 난이도만을 기준으로, 또 잘 모르는 작곡가라고 선입견으로 무시해버린 것은 아니었는지 나를 돌아보게 됐다.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어도 큰 재미와 감동
 

▲ 힘들게 해석을 요하지 않고, 반복적인 형식의 아름다움, 공감되는 내용을 통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작품도 있다. ⓒ elements.envato


그림책 쓰는 일에 제자리걸음 중이다. 사람의 경험은 한정되고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는 소재는 주로 나의 경험에 머문다. 책과 TV, 여행이나 만남 등에서 늘 소재 찾는 레이더를 돌리고 있지만 떠오르는 건 거기서 거기다.

소재를 열심히 찾다가 '이거 좀 써 볼까?' 싶은 걸 발견한다. 대략적인 스토리보드를 작성하고 인터넷 서점 검색을 해 본다. 혹시나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와 중복되면 안 되니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더니 벌써 누가 써 버렸다. 그것도 내가 생각지도 못한 멋진 상상력으로.

그랬다. 이미 세상에서 다뤄지지 않은 이야기는 없다. 게다가 내가 생각해내는 건 특별하지도 기발하지도 않았다. 매달 참석하는 그림책 쓰는 합평 모임에서도 '어딘가 부족하다, 예상되는 이야기'라는 의견을 주로 듣고 있다.

그러다 보니 빈약한 상상력을 메워줄 대단한 사건을 찾아 헤맸다. 전쟁, 재난처럼 확실한 메시지가 있는 것들을 쫓게 되었다. 쓰고 싶은 것보다 써야 할 것 같은 이야기를 쓰려고 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설교적이고 뻔하고 스스로도 재미가 없다. 쓰는 나도 재밌게 쓰지 못하는데, 읽는 사람이 재미있게 읽을 리가 없다.

피악존카의 타란텔라를 치는 동안, 줄곧 그림책 쓰는 일을 생각했다. 그의 악보는 구성이 복잡하지 않았다. 반복되며 귀에 남는 구절이 다양한 변주를 통해 곡에 통일성과 변화를 꾀하고 있었다. 일정 수준의 아마추어 연주자들, 또는 어린 학생들이 즐겁게 칠 수 있으면서도 난이도 이상으로 아름다운 효과를 느낄 수 있게 곡을 썼다.

새롭고, 복잡한 것, 독특한 것만이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주는 게 아니라는 걸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닌지. 기발해서 무릎을 '탁' 치는 거대한 상상이 아니라도, 이미 수없이 반복된 주제라도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조금 더 아름답게, 읽기 쉽고 재밌게 써 보려고 해도 좋지 않았을까.

반드시 어렵고 모든 부분에서 새로워야 하며, 거창한 무엇일 필요는 없었다. 라디오 속 사연, 독자의 생활형 에세이를 싣는 잡지 글, 그리고 <오마이뉴스>의 사는 이야기에서도 유명한 작가의 거대한 상상력 못지않은 재미, 감동을 얻는다. 진짜 삶에서 뽑아져 나온 진실성과 고유성은 터지는 웃음과 찡한 공감, 생각의 전환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림책을 쓰는 일에서만 그럴까? 어떤 분야에서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거나 설득하기 위해서 거창하고 대단한 것만 제시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가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고, 잘 알고 있는 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잘 전달한다면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작년, 대학원을 다니면서 경영사례 연구 수업에서 TED 강연을 벤치마킹하여 발표를 한 적이 있었다. 다양한 연령대, 직종에 종사하는 학생들이 수업을 듣다보니, 서로 간의 노하우를 공유하는 목적이었다. 수십 명의 학생들 중 가장 반응이 뜨거운 다섯 명을 추려 고득점을 주는 방식이었다.

각자 업무나 경험을 주제로 여러 사례가 공유됐다. 그리고 선택된 최종 다섯명은 전문적인 영역의 정보 전달이나 성과 발표가 아니라 발표자만의 시사점을 담아 공감 가는 사례를 발표한 사람들이었다. 마음을 움직이고 설득하는 데는, 따라하기 어려운 성과의 나열보다 이해하기 쉽고 납득할 만한 경험과 표현으로 충분했다.

처음 그림책에 빠졌던 때로 돌아가본다. 기발한 판타지도, 틀을 깨는 형식, 강렬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성 있는 그림책도 다 좋았다. 하지만 거듭 펼쳐 읽었던 것은 일상적 소재에서 깊은 공감을 주던 이야기였다. 여러 버전으로 반복되어 온, 보편적 감정에 대한 이야기라고 식상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다르게 감동적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어려운 무엇 대신, 지금껏 해 왔고 할 수 있는 것을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 그 일부를 바꿔보고, 다듬어 가며 작은 변화를 고민하다 보면 내가 하려는 이야기도 누군가의 마음을 건드리고 계속 마음에 머무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나에게도 그것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덧붙이는 글 제 블로그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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