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에 이렇게 멋진 활터가 있습니다
나는 주몽의 후예... 국궁을 통해 내마음을 수련하다
도서관 치유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입니다. 20대(Z), 30대(M), 40대(X)까지 총 6명의 여성들로 이뤄진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편집자말]
▲ 석호정석호정 전경 ⓒ 김기은
남산 중턱에 국립극장이 위엄있게 위치해 있다. 그곳을 가로질러 주차장 맨 끝까지 걸어가다보면 큰 벚꽃나무가 서 있는데 그 옆에 작은 계단이 보인다. 그 계단을 오르면 "쉬~익! 텅!", "쉬~익! 텅!"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나무들로 둘러쌓인 활터가 보인다. 석호정이다.
매주 일요일이면 나는 석호정 활터에 간다. 나의 취미는 우리나라 전통활쏘기 국궁이다. 이순신 장군도 <난중일기>에 207여 차례 활을 쏘았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국궁은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우리나라 전통 무예다. 서울에 살면서 남산을 수없이 다녀봤지만 이곳이 서울을 대표하는 멋진 활터인 줄 몰랐다.
"활을 쏩니다."
"양궁하세요?
"아니요. 국궁을 합니다. 전통활쏘기예요."
"네? 배우는 곳이 있어요? 국궁하는 곳이 있는지 몰랐어요."
내 주변의 많은 분들이 드라마에서만 봤던 국궁을 내가 실제로 배우고 있다는 것을 너무 신기해한다. 지금 생각해봐도 내가 국궁을 배우고 지금까지 취미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게 큰 행운이면서 복인 것 같다.
너무 우연하게 동네 근처에 실내에서 배울 수 있는 국궁 교실이 있었는데 주말 프로그램으로도 개설이 되어 부담없이 신청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스트레칭으로 시작해서 기본동작 연습만 하다가 스트레칭으로 마무리하는 과정을 계속했다. 같은 동작만 연습하는 게 지루해서 포기하고 싶을 때쯤 활을 손에 쥐여 주었다.
활을 한 손에 움켜쥐며 멋지게 화살을 날리는 영화의 한 장면을 상상하고 있을 때, 현실은 화살이 없는 빈 활로 활 쏘는 자세만 열심히 연습했다. 활 쏘는 자세인 궁체를 바르게 해야 흔들림없이 안정된 자세로 화살을 날려 보낼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3개월 정도의 끈기를 요하는 시간을 보내면 진짜 화살을 장착하고 활쏘기를 할 수 있게 된다. 화살을 시위에 꽂고 활을 쏠 때 "퍽" 하고 벽에 꽂히는 소리와 함께 활의 파워에 놀랐다. 화살이 과녁에 명중할 때는 짜릿한 쾌감마저 들었다. 연습할 때의 지루한 시간은 전혀 생각이 안 나고 활 쏘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되었다.
▲ 과녁실내궁국교실 ⓒ 김기은
실내에서 어느 정도 궁력(시위를 당기는 힘)이 키워졌을 때 전통 활쏘기를 가르쳐 주신 사부님과 드디어 145m 거리 야외 활터에서 활을 쏠 수 있었다. 사대(활을 쏘는 위치)에 서서 나의 순서를 기다린다.
나의 순서가 오면,
"활 배웁니다."
"많이 맞히세요."
이렇게 함께 활을 쏘는 분들에게 격려의 인사를 받고 시작한다. 두 다리는 나무와 같이 땅에 단단하게 고정하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시위를 힘껏 당긴 후 소리없이 과녁을 향해 활 시위를 놓는다. 그러면 화살은 춤을 추듯이 과녁을 향해 날아간다.
내 손에서는 이미 화살이 날아가고 없는데 한참 뒤에 화살이 땅에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145m 거리에 있는 과녁에 활을 쏠 때 화살이 새처럼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왠지 모른 해방감을 느꼈다. 화살이 나인 것처럼 자유롭게 날아가는 것 같았다.
조선 사대부의 부인들이 활쏘기를 즐겼다는데 이런 속시원한 기분 때문인가 싶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가는 것 같았다.
▲ 활전통활 ⓒ 김기은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배운대로 따라하다보니 화살이 과녁 근처에만 떨어져도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중간 숲 속에 떨어지거나 과녁보다 한참 뒤에 떨어지면 화살 찾기가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서 가끔 과녁에 맞추기도 하다보니 또 과녁에 맞추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고 그 욕심 때문에 몸에 힘이 들어가 무리하게 근육을 사용하게 되었다. 화살이 엉뚱한 곳에 떨어지게 되고 활 쏘는 자세도 안 좋아지게 되었다.
활을 꽉 움켜쥔다고 화살이 멀리 날아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주먹에 힘을 줬을까? 결국 팔꿈치 통증으로 병원 치료를 장기간 받아야했다. 몸이 아프고 나니 무리한 욕심은 원하는 것도 얻지 못하고 나의 몸도 상하게 된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활 쏘는 자세에 집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화살은 과녁에 들어가기 마련인데 나는 과녁에만 집중해서 기본마저 망치게 된 것이다. 지금은 다시 활 쏘는 기본자세에 집중하면서 과녁에 욕심내지 않고 차곡차곡 실력을 쌓으려고 마음도, 몸도 다스리고 있는 중이다.
▲ 궁대궁대 ⓒ 김기은
전통활쏘기를 하면서 똑같은 자세와 똑같은 힘으로 활 시위를 당기지만 항상 똑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의 자세를 먼저 집중해서 점검하고 내 마음의 흐트러짐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자연히 일상생활에서 생기는 일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바뀌어 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전통활쏘기는 나의 몸을 건강하게 해주는 스포츠이면서 나의 정신도 건강하게 해주는 수련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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