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비즈니스'라니... <조선>의 깔끔한 정정보도를 기대한다
[取중眞담] 월 80만원도 못 받고 산에서 구르며 유해 찾았는데...
▲ 지난 24일 <조선일보>가 보도한 "위원회 지원금 챙기고, 위원회 요직차지... 비즈니스가 된 과거사" 기사 ⓒ 조선일보
5월 24일자 <조선일보>에 '위원회 지원금 챙기고, 위원회 요직차지... 비즈니스가 된 과거사'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기사는 "잘못된 과거사를 바로잡고 피해자를 치유한다는 대의명분을 앞세우지만 실제로는 돈 또는 일자리가 숨은 목적으로 의심된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면서 사례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가 지난해 상반기 벌인 '유해발굴 용역사업'을 언급했다. 기사 내용은 이렇다.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한 시민 단체 출신 인사가 포함됐고, 이력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출신이라고 기재한 연구원도 둘이나 있었다. 기획재정부 예규에 따르면 이들에게는 월 120만~330만 원이 지급된다. 여권 관계자는 "과거사 관련 위원회는 야권 인사들이 과거부터 포진해 있어 운영 방식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 자리를 계속 나눠줄 수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요약하면 '무자격자에게 유해발굴을 맡겨 일자리 나눠주기 의도가 짙다'는 지적이다.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기사 쓴 <조선>
▲ 제72주기 제23차 대전산내학살사건희생자 합동위령제가 2022년 6월 27일 오후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민간인학살 현장에서 열렸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하지만 기사의 주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우선 이 용역은 '유해발굴 용역사업' 아닌 '유해매장 추정지 실태조사 용역사업'이다.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초 한국전쟁기 군인과 경찰 또는 인민군 등 적대세력에 의해 집단희생된 민간인 희생자 유해와 권위주의 통치시기 인권침해사건으로 희생된 민간인희생자의 유해매장 추정지를 조사하는 사업을 공모했다.
각 사건별로 민간인 희생자 유해가 어떤 경위로 어디에 매장됐는지, 매장 유해수는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매장지 범위는 어떤지, 발굴은 가능한지, 발굴지까지 접근은 가능한 지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하는 일이다.
매장추정지 조사사업은 유해발굴 전문가만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전쟁시기 민간인희생사건과 인권침해사건에 대한 역사적 이해, 지역에 대한 이해, 인터뷰 기법 등 조사 실무에 대한 경험자를 필요로 한다. 진실화해위가 이 사업을 관련 조사 경험자들에게 맡긴 이유다.
사실 '맡겼다'라기 보다 '청했다'는 게 적확하다. 진실화해위가 유해매장추정지 조사를 의뢰한 곳은 전국 381곳에 달한다. 조사 및 최종보고서 제출시한이 지난해 1월 부터 7개월 정도였다(올해 7월까지가 아닌 지난해 7월까지였다).
사업비는 1억 4500만 원인데, 여기에는 조사연구에 필요한 18명의 인건비, 교육비, 교통비, 자료구입비, 수천 쪽에 이르는 보고서 편집 및 제작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 이 때문인지 진실화해위에서 여러 차례 사업공모를 했지만 사업을 하겠다는 신청자가 없었다. 일의 양은 많지만 사업비가 턱없이 적었기 때문이다. 또 이를 조사할 만한 경험 있는 사람을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결국 1기 진실화해위에서 유해발굴 실무를 전담했던 부경대 노아무개 교수가 책임감으로 나섰다. 그는 평소 민간인학살사건과 인권침해사건에 대한 조사와 취재를 오랫동안 해온 경험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실비 수준이지만 그래도 진실규명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니 나서야 되지 않겠냐"고 청했다. 18명의 조사팀은 이렇게 구성됐다.
그런데도 <조선>은 '용역 연구진 18명 중 11명이 유해발굴 이력이 없는 비(非)전문가 출신'이라고 지적했다. 또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한 시민 단체 출신 인사가 포함됐고, 이력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출신이라고 기재한 연구원도 둘이나 있다"고 지적했다.
비전문가 출신? "조사 경험 풍부한 연구원들"
<조선>이 언급한 민족연구소를 비롯한 시민단체 출신은 민족문제연구소 아산지부에서 일하는 홍아무개씨와 홍성 시민단체에서 일한 유아무개씨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사에서 홍씨는 충남 아산지역 민간인학살사건 35곳의 지역을 전담조사했다. 이 중에는 진실화해위가 의뢰하지 않은 곳도 있다. 조사과정에서 새롭게 찾아낸 곳이다.
유해매장추정지를 확인 조사하기 위해서는 각 사건별로 유가족 등 관계자 등을 만나 사건 개요를 확인해야 한다. 무엇보다 매장지 위치를 특정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목격자 등을 수소문해 산등성이를 오르내리며 현장를 확인해야 한다. 또 매장지를 알 만한 사람을 찾아다니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현장 대부분은 산골짜기다. 대상지별로 최소 서너 번은 오가야 유해매장 경위, 유해수량, 유해매장 범위, 발굴가능성 등을 추정할 수 있다. 산에서 구르는 건 부지기수고 그야말로 이 산 저 산을 찾아 헤메는 일이 허다하다.
홍씨의 경우 35곳의 대상지 조사를 위해 모두 100여 차례 이상 현장을 누볐다. 그나마 지역에 살며 수년 동안 아산지역에서 유해발굴 자원봉사를 하며 피해지역을 홀로 조사한 경험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진실화해위는 그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지난 3월과 4월 아산시 배방읍 성재산 일대와 염치읍 새교리에서 64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이곳은 앞서 아산시 등에서 유해발굴을 시도했지만 정확한 매장 위치를 찾지 못해 몇년 동안 애를 끓이던 곳이었다.
<조선>이 시민단체 출신의 비전문가라고 꼽은 홍성 시민단체의 유아무개씨는 충남 홍성과 서산, 예산,당진 지역 20여 곳을 돌며 유해매장 추정지 조사를 벌였다. 그는 민속자료 조사원으로 수년째 활동 중이라 그만큼 조사업무 경험이 풍부하다.
또 그는 홍성 시민단체에서 일하며 충남지역 민간인희생사건 피해자들의 진실규명 활동을 지원해 왔다. 유씨 또한 해당 조사과정에서 진실화해위가 의뢰하지 않은 유해매장추정지를 여러 곳 추가로 찾아내는 성과를 남겼다. 그는 지금도 추가 유해매장추정지를 찾는 일에 공을 들인다.
홍씨와 유씨가 조사 기간인 7개월 동안 받은 인건비는 월 78만 원 정도였다.
21년간 전국 곳곳 방문한 연구원, 비전문가로 매도한 <조선>
▲ 제72주기 제23차 대전산내학살사건희생자 합동위령제가 2022년 6월 27일 오후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민간인학살 현장에서 열렸다. 사진은 제단에 헌화 분향을 한 뒤 오열하고 있는 유족. ⓒ 오마이뉴스 장재완
<조선>이 '비전문가 출신'의 대표적 사례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출신이라고 기재한 연구원'을 꼽은 것은 오히려 부실 취재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충북지역 유해매장 추정지를 조사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인 박아무개 연구원은 지난 21년 동안 민간인학살진상규명을 위해 전국 곳곳을 방문했다. 특히 16년 동안 충북지역 2000여 곳 마을에서 6000여 명의 유가족과 목격자를 만나 그들의 증언을 듣고, 묻고, 기록했다.
그는 그 결과물을 <오마이뉴스> 연재기사를 통해 수년째 소개하고 있다. 그의 활동에 관련 전문 학자들이 '중요한 업적'이라고 입을 모아 평한 이유다. <조선>이 박 연구원이 유해매장추정지 조사 연구원으로 비전문가인지 아닌지가 궁금했다면, 간단한 기사검색만으로 그의 차고 넘치는 업적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유해매장추정지 조사연구에 유해발굴 관련 이력여부가 필요한 건 아니었지만, 연구진 18명 중 18명 전원이 유해발굴 현장을 찾아다니며 자원봉사를 한 이력도 있다.
<조선>이 수개월 동안 실비 수준의 비용으로 사명감으로 헌신한 연구원들에게 큰 돈벌이를 비전문가에게 특혜를 준 것처럼 쓴 것은 명백한 '오보'다.
다만 오보를 부른 '유해매장 추정지 조사'를 '유해발굴 용역'으로 잘못 이해한 오해가 '의도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조선>의 깔끔한 정정보도를 기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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