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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무관학교 창설, 주지사 허가 받아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16] 중국정부의 양해로 당당하게 독립군 양성의 군관학교를 세울 수 있게 되었다

등록|2023.05.28 17:49 수정|2023.05.28 17:49

신흥무관학교 교관들이 거처했던 '고려촌'신흥무관학교 교관들이 거처했던 '고려촌' ⓒ 박도


서간도 지역 독립운동가들의 꿈은 무관학교를 세워 대일전쟁을 통해 왜적이 점령한 국토와 국권을 되찾는 일이었다. 신민회 계열 인사들의 열망은 한층 강렬했다. 자신들이 그곳으로 망명한 기본 이유였기 때문이다. 이상룡 역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마침내 꿈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신흥강습소 등 '위장간판'을 달았으나 이제는 중국정부의 양해로 당당하게 독립군 양성의 군관학교를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이상룡이 유하현 지사에게 보낸 청원이 수용된 것이다.

신흥학교로 말씀드리자면 이는 저희들의 중등학당입니다.(이곳에) 소학(小學)의 설립이 수십 개소를 넘다 보니 매년 졸업을 하는 사람이 통틀어 백여 인이나 됩니다. 소학을 마치면 중등교육을 받지 않을 수 없는데, 이 때문에 전대 청나라 선통 연간에 이 학교를 제2구의 추가가에 설립하였고, 2년 후에 통화현 합니하로 이전했다가, 올 봄에 위치가 적절치 않다는 이유로 제3구의 고산자(孤山子)로 옮겨 왔습니다.

그 성격과 역사는 이와 같습니다. 그리고 체조 한 과목은 곧 세계 만국의 소·중학당에서 통용되는 것으로, 교내의 물품과 서류는 경찰에서 이미 사람을 파견하여 조사 하였으며, 구(區)의 관원 또한 친히 와서 검사하였으므로, 그 사이에 의심을 일으킬 만한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제 듣기로 관령(官令)으로 장차 이 학교를 해산하고자 한다고 합니다.

대국이 이미 우리의 무고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토지 조세와 가옥 임대에 모든 은혜로운 조치를 취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유독 중등교육은 허가치 않아 새로 자라나는 자제들로 하여금 지식을 계발치 못하게 한다면, 이는 공화의 선정에 흠결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각하는 특별히 성념(盛念)을 베푸시어 이런 사유를 간곡하게 성공서(省公署, 성의 관공서)에 아뢰어 주소서. 그리하여 우리 신흥학교가 영원히 존속을 보장받고 한인의 자녀들이 소멸되는 것을 면하게 해주신다면 천만다행이겠습니다. (주석 1)

▲ 신흥무관학교 학생들이 밭을 경작하고 있는 모습 ⓒ 독립기념관



1907년 7월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한 지 5년 만인 1912년 봄, 만주 신안보에서 독립군관 양성을 목표로 신흥무관학교 교사 신축공사가 시작되었다. 극심한 흉년에도 아껴두었던 이석영이 돈을 꺼내고 이상룡 일가 등이 비축했던 돈을 보태어 천혜의 요새지로 알려진 통화현 합니하 신안보(新安堡)의 땅을 매입하였다. 토지 매입이 쉽지 않자 이회영이 동삼성 도독에게, 이상룡이 유하현 지사에게 청원하여 간신히 허락을 받아냈다.

이곳을 신흥무관학교 설립지로 택한 데는 까닭이 있었다. 이곳을 답사한 조선족 학자 강원룡의 기록이다.

주위가 고산준령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남북 10리나 되는 평원이 있고 그 남쪽 끝이 논밭보다 약 30미터 정도 높게 덩실하게 언덕을 이루었는데, 언덕 위엔 20정보 가량 되는 구릉을 이루어 마치 합니하 '평원'을 연상케 했다. 군사적으로도 영락없는 요새였다.(…) 천연 무대와 서쪽 심산이 맞붙어 있기에 실로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말할 수 있다. (주석 2)


주석
1> <석주유고(상)>, 553~557쪽(발췌).
2> 김명섭, 앞의 책, 55~56쪽, 재인용.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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