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해 70여구 발굴
갈산동 유해 발굴 현장 중간 보고회 진행... 손 묶이고 여럿이 겹친 유해도
▲ 진화위는 30일 서산 갈산동 교통호 유해 발굴 현장을 공개했다. ⓒ 이재환
충남 서산에서 한국전쟁 때 희생된 민간인 유해 발굴 현장이 공개됐다. 70여 년이 지났지만 유해들은 처참했던 순간을 증언하듯이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
30일 서산시 갈산동 교통호 인근에서 유해 발굴 중간보고회가 열렸다. 교통호(방공호) 일원에는 한국전쟁 때인 1950년부터 1951년까지 부역 혐의로 학살된 서산 지역 민간인 유해가 매장되어 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는 지난 5월 10일 현장에서 개토제를 열고 15일부터 본격적인 발굴 작업에 착수했다. 유해발굴은 오는 6월 초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 현장에서는 M1 소총 탄피도 발견됐다. ⓒ 이재환
진화위에 따르면 갈산동 교통호 희생자들은 부역 혐의로 대한민국 경찰과 해군에 의해 희생됐다. 현장에서 M1소총 탄피가 발견된 것도 그 때문으로 보인다.
발굴이 이루어진 곳은 서산 갈산동 176-4번지 일원, 넓이 200m² 길이 60미터 구간이다. 발굴은 총 3개 구역에 걸쳐 진행됐는데 1구역에서는 유골과 함께 M1 소총 탄피, 단추 등이 발견됐다. 2구역에서는 유품과 함께 시신 여러 구가 겹쳐 있었고 3구역에서는 머리를 남쪽으로 둔 유해들이 발굴됐다.
이날 보고회에는 유가족들과 매장지 위치를 증언한 증언자도 함께 했다.
한광석(89)씨는 매장지 위치를 증언해 이번 발굴이 성사되는 데 기여했다. 그는 "당시 16세였다. 73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집 앞 대청마루에서 (교통호가) 보였다. 하얀 가운을 입히고 총으로 쏘는 장면이 보였다. 사람에 맞은 총탄은 울리지 않고 톡톡 소리가 났다"고 증언했다.
유가족 A씨(82)는 "나는 그때 8살이었다. 큰 형님이 이곳에서 돌아가셨다. 19세 때이다. 형님을 포함해 우리 마을 주민 10여 명이 밤에 끌려왔다. 우리 마을은 팔봉면 호리1리이다. 마을 주민들의 증언으로 이곳에 형님이 묻힌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유가족 B씨도 "형님과 작은 아버지가 희생됐다. 영문도 모르고 돌아가셨다. 마흔 다섯 살까지도 빨갱이 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했다. 그 억울함을 풀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호소했다.
이번에 70여 구의 유골이 발견됐지만 아쉬움은 남아 있다. 교통호 일대에 유해가 더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황창순(유가족, 갈산동 유해발굴위원장)씨는 "35구의 유해는 훼손 없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며 "6월 초에 발굴이 마무리 된다. DNA 유전자 검사를 통해 유족들이 희생된 가족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진화위에서 나머지 구간에 대해서도 시굴 조사를 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진화위 관계자는 "이번 현장에서는 돌아가실 당시의 처참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유해 발굴 작업은 진화위에서 직접 하는 것과 지차체에서 하는 방법이 있다. (추가 발굴에 대해) 고려해 보겠다"고 말했다.
▲ 충남 서산 갈산동 교통호.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민간인 유해 발굴 현장이 공개됐다. ⓒ 이재환
▲ 서산 갈산동 유해 매장지에서 발견된 유해와 단추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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