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들어주세요
[제목의 이해] 실감 나고 재밌는 제목을 짓는 법, 의성어 의태어
사는이야기 담당 편집기자로 일하며 더 좋은 제목이 없을까 매일 고민합니다. '우리들의 삶'을 더 돋보이게 하고, 글 쓰는 사람들이 편집기자의 도움 없이도 '죽이는 제목'을 뽑을 수 있도록 사심 담아 쓰는 본격 제목 에세이. [편집자말]
제목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누가 들어오든가 말든가 신경 쓰지 않고 뽑는 제목의 글을 누가 보려고 하겠나. 쉬운 내용은 재밌게, 평범한 내용은 새롭게, 어려운 내용은 쉽게 어떻게든 눈길을 끄는 제목을 뽑아야 하는 게 편집기자의 숙명. 내가 독자 입장이라도 흥미를 돋우는 제목에 눈길과 시간을 줄 것 같다. 모든 독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그러면 대단히 좋겠지만) 적어도 타깃한 독자만이라도 들어와서 봤으면 하는 게 제목 뽑는 일을 하는 사람의 솔직한 심정이다.
오감을 끌어올려
▲ '기분에 따라 골라 먹는 편의점 캔맥주'에 대한 글이었다. 글을 읽는데 마치 먹방 ASMR을 듣고 있는 기분이었다. ⓒ elements.envato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던가. 국어 숙제인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내민 문제가 있었다. 나 역시 이게 무슨 말일까 싶어 한참을 고민했던 문제. 정확한 예시문은 아니나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다들 한번 풀어보시라.
으르렁으르렁 [ ] 말은 재밌습니다.
토끼가 깡충깡충 곁으로 뛰어왔습니다. [ ] 말은 실감이 납니다.
뚫어지게 지문을 응시하다가 내가 빈칸에 적은 말은 [반복되는] 말이었다. 또 하나는 [흉내 내는] 말. 아이에게 혹시 수업 시간에 이런 말을 들어본 적 있냐고 물으니 그런 것 같단다. 정답은, 딩동댕. 교과서를 보니 반복되는 말, 흉내 내는 말, 실감 나는 말 등에 대해 배우고 있었다. 반복되는 말이나 흉내 내는 말은 주로 의성어, 의태어이기 때문에 관련 내용을 더 찾아봤다.
의성어는 '사람이나 사물의 소리를 흉내 낸 말이에요.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의성어나 의태어를 사용하면 더욱 재미있고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어요. 의성어는 '야옹야옹'처럼 반복되는 리듬을 가지고 있어서 말의 재미를 살려 쓸 수 있답니다'라고 하고요. - 네이버 지식백과, 초등 전과목 어휘력 사전
의태어는 '사람이나 사물의 모양이나 움직임을 흉내 낸 말입니다. 의태어를 사용하면 내용을 더 실감 나고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 천재학습백과 초등 국어 용어사전
의성어, 의태어 둘 다 '실감 나고 재미있게' 쓸 수 있는 말이라는 공통점이 보인다. 그러니 글에 여러 가지의 의성어, 의태어가 있을 때는 그냥 흘려 읽지 말자. 제목으로 뽑았을 때 실감 나고 재밌을 수 있으니까.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물론 이유 없이 본문에 넣으라는 말은 아니다). 아래 예시 제목을 보자.
1. 따깍, 코왈 코왈, 포그르르... 입으로 먹는 술이 아니었네
2. 타타타타... 사진 작가들 셔터 소리 빨라지는 곳
1번은 '기분에 따라 골라 먹는 편의점 캔맥주'에 대한 글이었다. 글을 읽는데 마치 먹방 ASMR을 듣고 있는 기분이었다. '맥주 한 잔을 따르는 소리가 이렇게나 다양했나?' 맥주를 귀로 마신다고 해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맥주 한 잔을 먹고 싶어졌으니까. 그렇게 맥주 따르는 소리를 적어 표현한 의성어를 제목으로 뽑아 썼다.
2번은 코로나 시대의 히든 스팟 충남 태안 운여해변에 대한 소개 글이었다. '출사를 나온 사진작가들 사이에선 유명한 곳'이란 대목을 부각시키려고 본문에 없는 의성어지만 '타타타타'라는 카메라 셔터 소리를 끄집어내 제목으로 지었다. 나는 '타타타타'라고 했지만, 누군가는 '차라라락'이라고 소리를 흉내 낼 수도 있겠다.
'사물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맛보고, 코로 냄새 맡고, 손으로 만지듯이 생생하게 표현한 것'을 감각적 표현이라고 하는데(역시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온다), 오감을 동원해서 표현한 내용을 제목에서 보여주거나 들려주면 새롭고 재밌다. 독자를 자극 시키기도 한다. 또 표현을 반복하는 것은 강조의 효과도 있다.
사진을 뚫어지게 보면
▲ 동해안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포항 호미반도 유채꽃밭 모습(2023.3.18) ⓒ 한정환
본문에서 제목으로 쓸 만한 표현이 없다면 사진으로 시선을 돌려 보자. 의외로 제목이 아이매직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실제 나는 그럴 때가 많았다. 이 제목을 한번 보자. 원래 제목은 아래 문장이었다.
올봄 철의 도시 포항을 뜨겁게 달굴 노란 물결, 여기 어디야?
호미반도 경관농업단지 유채꽃밭을 소개하는 기사였는데 사진이 장관이었다. 노랑과 파랑의 선명한 대비. 말 그대로 '하늘은 파랗고 땅은 노랗고...' 지금 포항에 가야만 할 것 같았다. 꽃은 금세 져버리니까. 그 마음을 담아 그대로 썼다.
하늘은 파랗고 땅은 노랗고... 지금 포항에 가야할 이유
'노랑과 분홍의 어울림, 삼척 유채꽃 밭'이라는 제목으로 들어온 글도 있었다. 삼척시 맹방유채꽃 마을을 소개하는 글이었는데 글쓴이도 제목에서 이곳의 색을 강조해서 드러내고 싶었던 듯하다.
▲ 유채꽃밭삼척시 근덕면 매방리와 바닷가(2023.4.4) ⓒ 진재중
나는 바닷가 마을이니 바다까지 더 보여주고 싶었다. 드론으로 찍은 첫 사진이 워낙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제목은 아래와 같다.
벚꽃과 유채꽃, 여기에 바다까지... 황홀한 삼색
독자에게 잘 수신되길 바라는 마음
이렇게 쓰고 보니 제목을 뽑는 일은 하나의 생각만으로는 절대 이뤄질 수 없고,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몇 가지의 생각들이 선택이라는 단계를 거쳐 한 문장으로 압축되는 일인 듯하다. 그 순간을 잘 캐치해야 완성도 있는 제목이 창조되는 것이겠고.
'제목을 다는 것' 그것 역시 넓은 의미에서 짧은 글쓰기로 볼 수 있다면, 우치다 다쓰루의 책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의 이 대목은 참고할 만하다. 글 쓰는 일 뿐만 아니라 제목을 짓는 일에서도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되어서다.
"언어가 지닌 창조성은 독자에게 간청하는 강도와 비례합니다. 얼마나 절실하게 독자에게 언어가 전해지기를 바라는지, 그 바람의 강도가 언어 표현의 창조를 추동합니다."
우치다 다쓰루 선생은 글쓰기에 꼭 필요한 것이 '독자에 대한 경의의 자세'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경의의 자세란, '부탁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들어주세요'다. 글을 쓰는 사람뿐만 아니라 제목을 고민하는 나도 그렇다. 내가 지은 제목이라는 안테나가 독자에게 잘 수신되길 바라는 마음. 제목에 대해 이보다 더 적합한 풀이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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