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군! 단체 만들어 힘을 기르도록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24] "뒤늦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진 ⓒ 보훈처
아아. 제군들이여! 외롭고 위태로움이 이와 같은데, 도대체 무슨 행복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타인은 권리가 본래 있어도 보수하려고 하고 확장하려고 하는데, 우리는 권리가 본래 없었는데도 구할 생각을 하지 않고 또 얻을 방법도 알지 못하니, 어찌 한심하지 않겠습니까?
이상에서 논한 바는 모두 생활에 있어서의 중요한 조항들이거니와, 오늘날 우리들이 가장 먼저 유념해야 하는 것은 '권리' 두 글자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어째서이겠습니까? 권리가 있으면 산업·교육은 착수하는 대로 차례차례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만리 밖의 외로운 처지로서, 위로 비호해 주는 이가 없고 아래로 막아주는 이가 없으니, 무슨 방법으로 권리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고어(古語)에 이르기를, "다리가 100개인 벌레는 죽더라도 엎어지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벌은 미미한 일개 곤충입니다. 그러나 열 마리, 천 마리가 모여 있으면 건장한 군졸들도 두려워 피합니다. 실(絲)은 지극히 부드러운 성질을 지녔습니다. 그러나 백 겹으로 꼬아 끈을 만들면 힘센 장사라도 끊을 수 없습니다. 미물도 오히려 그러한데,하물며 하늘이 양능(良能)을 부여한 인류가 단합하는데 누가 감히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현재 세계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우세한 권리를 점유한 민족은 모두 사회학에서 힘을 얻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영국인은 일찍이 말하기를, "우리 영국인 100인과 타국인 100인을 동시에 한 곳에 이주시켰을 때, 불과 10년이 되기 전에 우리 영국인은 확실하게 하나의 독립된 국가를 이룰 것이고, 타국인은 마치 소반 위의 흩어진 모래와 같아서 우리의 속박을 받게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생존경쟁·자연도태의 시국에 사회단체로 단합하는 것은 그 효과가 이와 같습니다. 제군들은 아는 것입니까? 모르는 것입니까?
제군들은 항상 이르기를, "사람마다 마음이 제각각이라 사실상 단합하기 어렵다." 합니다. 나 역시 이 일이 용이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단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산업이나 교육, 권리를 얻을 수 있는 날이 없게 되어, 사람들은 모두 멸망으로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만약 이와 같은 것을 확실히 안다면 태산을 끼고 북해를 뛰어넘는 것도 사양하지 않을 것이거늘, 하물며 동포가 단합하는 데 무슨 어려운 일이 있단 말입니까?
나폴레옹의 말에 이르기를, "어렵다는 단어는 어리석은 자의 자전(字典)에만 들어있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불가능이라는 말은 프랑스사람이 사용할 말이 아니다."하였습니다. 제군은 각자 굳세게 힘을 내어서 비록 어려운 일이더라도 기필코 해 내고, 불가능이라는 말은 절대 사용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거주하는 지역이 멀면 소식이 통하기 어렵고, 만나서 대면하는 일이 뜸하면 정의가 지속되기 어려우니, 저 현대 문명족의 주거지를 보지 못하였습니까? 시정(市井)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전선(電線)이 서로 이어져 있어 천리 밖에 앉아 있어도 무릎을 맞대고 있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보니, 형세로 볼 때 자연스레 단합하기 쉽습니다. 우리들은 회오리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처럼 방방곡곡에 흩어져 통서(統緖)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안면이 생소하고 소식이 단절되니, 단합하고자 한들 무엇을 통하여 이룰 수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제군께서는 당장 조금 편안하다고 하여 뜻을 이루었다고 여기지 마시고, 생리(生利)가 조금이라도 편할만한 널찍한 구역을 하나 점한 뒤 각자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끌어들여서 군거하는 촌락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적합한 정도의 규약을 의정하여 공동으로 준수해 나간다면, 자연히 마음이 서로 통하고 뜻이 서로 맞아서 마침내 완전한 법적 단체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단체가 한번 이루어지면 능력이 절로 생겨나고, 산업·교육이 장애가 없이 발전하여 장래의 행복이 차례로 손에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아아, 제군들이여! 증험이 없는 말이라고 하여 뱉어서 버리지 마십시오. 천하만사는 모두 일정한 계획이 있어야 하는 법이니, 일정한 계획이 서지 않으면 패운이 바로 닥치게 되는 것이 고금의 통례입니다.
제군은 이 땅으로 건너온 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났으니, 소비한 것이 적지 않고 경험 또한 많을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생활을 연구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만약 이 기회를 놓치고 나면 아마도 제군들이 아무리 떨치고 일어나려고 해도 지력이 없어져 끊어지게 될 듯하니, 뒤늦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천만 깊이 헤아리시기를 삼가 바랍니다. (주석 1)
주석
1> 김시명, <석주 이상룡이 이룩한 신흥무관학교>, 108~110쪽,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2016.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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