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처에서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된 곳
이탈리아의 작은 어촌마을 친퀘테레를 넘어 포르토베네레까지
▲ 친퀘테레의 다섯 마을바다 위 배에서 바라본 친퀘테레 마을들.시계 방향으로 리오마조레, 마나롤라, 몬테로소, 코르닐리아, 베르나차. ⓒ CHUNG JONGIN
500여 년 전, 이탈리아 서북쪽 해안 절벽 기슭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 잡기 시작했다. 오스만 튀르크의 공격을 피해 이곳으로 온 사람들은 가파른 산등성이에 포도와 올리브 나무를 심고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갔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집이 한두 채씩 세워지면서 5개의 마을(Cinque Terre: 친퀘테레)이 생겼다.
마을 각각을 둘러싸고 있는 해안 절벽은 외부 침입을 막을 수 있었지만, 오랫동안 마을을 고립시켰다. 12km라는 길지 않은 해안을 따라 있는 5개 마을은 해안 절벽 위 산길과 바닷길로만 연결되어 있던 까닭에 서로 간의 왕래도 드물어 사용하는 언어조차 달랐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작고 오래되고 아름다운 어촌 마을은 국립공원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연간 250만의 관광객이 해안 벼랑길을 걷고 배를 타고 기차를 타고 찾고 있다.
지난 5월 초 관광객이 본격적으로 몰리기 직전, 우리는 이름조차 생소한 이탈리아 리비에라의 해안 마을 탐험에 합류하였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무색하게 하늘은 청명했고 우리는 서둘러 숙박지인 라스페치아(La Spezia)에서 기차를 타고 가장 북쪽 마을인 몬테로소(Monterosso)로 향했다.
첫날의 일정은 몬테로소를 출발하여 베르나차(Vernazza)를 거쳐 코르닐리아(Corniglia)까지 약 7.5km의 해안 벼랑길을 걸은 후 마나롤라(Manarola)와 리오마조레(Riomaggiore)는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다.
원래는 친퀘테레 마을 모두를 산길을 걸으며 보고 싶었으나, 안전 문제로 코르닐리아에서 리오마조레까지의 두 개 구간이 폐쇄되었다. 어쩔 수 없이 마나롤라와 리오마조레 두 마을은 기차를 타고 가 구경하기로 하였다. 대신, 다음 날 리오마조레에서 포르토베네레(Porto Venere)까지 12km를 걷는 일정을 계획하였다.
몬테로소(Monterosso)
▲ 몬테로소 해변몬테로소는 5개 마을 중 가장 큰 마을로 기차역에서 산길 초입까지 비치파라솔이 해변을 덮고 있다. ⓒ CHUNG JONGIN
몬테로소 기차역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다소 어이없게도 화장실이었다. 산길을 가야 하기도 하였으나 이탈리아에서는 대부분의 화장실 이용이 유료이기 때문에 화장실 사용권이 있는 친퀘테레 패스를 적극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몬테로소는 5개 마을 중 가장 큰 마을로 기차역에서 산길 초입까지 비치파라솔이 해변을 덮고 있었다. 4개의 산길 중 가장 거친 베르나차까지의 길은 계단과 돌길로 오르내림이 반복되었으나 기운이 좋은 아침이었고 절벽 아래 이어지는 절경의 해안선을 감상하느라 그다지 힘든 줄을 몰랐다.
베르나차(Vernazza)
▲ 베르나차점차 다리에 피로를 느끼는 순간 파스텔 조의 건물들과 함께 아름다운 항구가 눈에 들어왔다. ⓒ CHUNG JONGIN
점차 다리에 피로를 느끼는 순간 파스텔 조의 건물들과 함께 아름다운 항구가 눈에 들어왔다. 3.5km라는 거친 산길을 걸은 후 다리쉼을 하려면 마을로 내려가야 하는데, 마을로 가는 길은 좁고 가파른 긴 계단으로 이어졌다.
그런 계단 양쪽에 빽빽하게 하늘을 향한 건물이 즐비하고 그 안에는 호텔, 아파트, 식당, 옷 가게, 과일 가게, 기념품 가게들이 정신없이 혼재되어 있었다. 과일을 몇 개 사 가지고 해안가 광장으로 나갔다.
친퀘테레 5개의 마을 중 베르나차는 가장 관광지 성격이 짙은 고혹적인 마을이다. 교회당이 있고 마을을 지키는 망루(Tower of Castello Dorio)가 있고 포구에는 모래사장과 고깃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주업이었던 어업은 이제 관광객들의 입맛을 돋우는 식재료를 얻기 위한 부업이 되었다.
코르닐리아(Corniglia)
▲ 코르닐리아베르나차를 산 위에서 내려다보며 힘겹게 거친 돌길을 오르내리는데, 절벽 위에 올라가 앉은 마을이 보였다. 유일하게 항구가 없는 코르닐리아다. ⓒ CHUNG JONGIN
베르나차에서의 휴식으로 다리의 피로가 회복되기보다는 꾀가 났나 보다. 코르닐리아로 가는 가파른 오름길은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 베르나차를 산 위에서 내려다보며 힘겹게 거친 돌길을 오르내리는데, 절벽 위에 올라가 앉은 마을이 보였다. 유일하게 항구가 없는 코르닐리아다.
바로 앞에 있을 것만 같았던 마을은 생각보다 멀었다. 코르닐리아는 베르나차에 비해 한적했다. 정보에 의하면 5개 마을 중 관광객이 가장 적고 물가도 가장 싸다고 했다. 우리는 기차역이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식당 올리브나무 아래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나머지 두 구간을 기차로 이용해야 하는 우리에게 코르닐리아는 하이킹의 종점인 셈이었다. 하지만 하이킹은 끝나지 않았다. 마나롤라로 가기 위해 기차역까지 가는 길은 지그재그식 넓은 계단이 수를 세기에도 숨이 찰 정도로 끝없이 이어졌다. 코르닐리아는 예나 지금이나 오가기 고달픈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나롤라(Manarola)
▲ 마나롤라절벽 위 길을 걷는 사람들, 절벽에 갇힌 에메랄드빛 바닷물에서 수영하는 사람들, 자연이 만든 절벽 다이빙대에서 호기롭게 뛰어내리는 사람들, 그걸 구경하는 사람들로 넓지 않은 마나롤라의 해변은 붐볐다. ⓒ CHUNG JONGIN
기차를 탄 이동은 찰나였다. 마나롤라의 절벽 해안가로 나갔다. 절벽 위 길을 걷는 사람들, 절벽에 갇힌 에메랄드빛 바닷물에서 수영하는 사람들, 자연이 만든 절벽 다이빙대에서 호기롭게 뛰어내리는 사람들, 그걸 구경하는 사람들로 넓지 않은 마나롤라의 해변은 붐볐다.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내리기 위해 조심스럽게 약간은 겁에 질려 바위 위로 오르는 젊은이들은 누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것일까? 여자 친구? 아니면 무작위 대중을 향한 무모한 용기?
리오마조레(Riomaggiore)
▲ 리오마조레리오마조레 마을 풍경 ⓒ CHUNG JONGIN
마나롤라에서 기차로 2분.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우리는 친퀘테레의 남단 마을 리오마조레에 닿았다. 일몰이 아름답다지만 일몰을 보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고 지쳐 있었다. 다음 날 포르토베네레 까지 12km의 하이킹을 앞둔 우리는 아이스크림만 먹고 숙소가 있는 라스페치아로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돌아갔다.
리오마조레에서 포르토베네레까지
▲ 포르토베네레마지막 거친 내리막길로 접어들자 조그맣게 보였던 섬이 제법 크게 보이고 중세 성과 그 주위를 도는 빨간 보트가 함께 보였다. ⓒ CHUNG JONGIN
친퀘테레 산길을 완주하지 못한 아쉬움은 리오마조레에서 친퀘테레 남쪽 마을인 포르토베네레까지의 산길에서 채우기로 했다. 리오마조레 트레일 입구에는 우리와 같은 몇몇 등산객들이 모여 있었다.
산길은 우리나라의 둘레길과 비슷했다. 계단과 경사진 흙길 옆의 농가와 계단식 포도 과수원과 올리브 나무밭을 끼고 걸었다. 한참을 걸었다고 생각했으나 산 아래 보이는 것은 여전히 리오마조레 마을이었다. 산길이 남쪽이 아닌 산 안쪽을 돌아 나와서였다. 조금 더 가니 리오마조레만이 아닌 코르닐리아와 저 멀리 몬테로소까지 보였다.
▲ 포르토베네레까지 가는 둘레길산길은 우리나라의 둘레길과 비슷했다. 계단과 경사진 흙길 옆의 농가와 계단식 포도 과수원과 올리브 나무밭을 끼고 걸었다. ⓒ CHUNG JONGIN
잠시 후, 언덕 위 성당에 도착했다. 첫 번째 랜드마크인 Madonna di Montenero였다. 절벽 아래 탁 트인 바다가 보이고 남쪽 멀리 튀어나온 산과 섬이 보였다. 우리의 종착지인 포르토베네레였다. '아직 갈 길이 멀구나.'
▲ Madonna di Montenero에서 바라본 절경절벽 아래 탁 트인 바다가 보이고 남쪽 멀리 튀어나온 산과 섬이 보였다. 우리의 종착지인 포르토베네레다. ⓒ CHUNG JONGIN
오른쪽은 해안 절벽이고 왼쪽은 계단식 포도밭이 있는 벼랑 위 오솔길이 계속되었다. 절벽 아랫마을인 캠피(Campi)를 중간 기착지인 캠필리아(Campiglia)로 알고 가파른 길을 한참 동안 내려가는 헛수고를 하기도 했다.
큰 도로를 만나고 다시 오솔길이 이어지다가 거친 내리막길로 접어들자 조그맣게 보였던 섬이 제법 크게 보였다. 그리고 섬이 점점 커지면서 중세 성과 그 주위를 도는 빨간 보트가 함께 보였다. 7시간여에 걸친 산행을 마칠 시간이 다가온 셈이다.
포르토베네레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산 위에서 보였던 중세식 요새는 이탈리아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호텔과 가게들로 연결되었고, 육중한 돌 아치 입구로 들어서자 친퀘테레 마을의 사촌 같은 무질서해 보이는 골목 시장이 펼쳐졌다.
이제는 배를 타고 우리가 걸었던 길과 친퀘테레의 다섯 마을을 멀리 바다 위에서 감상할 차례였다. 길고 거친 길을 걸었다는 뿌듯함, 쳐다만 보아도 아슬아슬한 절벽 위에 집을 짓고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며 이틀간의 이탈리아 리비에라의 어촌 탐험을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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