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다비를 경유하는 저가항공, 비극의 시작
[아랍에미리트] 배낭이 사라졌다, 여행이 다시 시작됐다
짧은 중앙아시아 여행을 마치고, 저는 다음 여행지로 향합니다. 원래 이번 여행에서는 항공 이동을 최소화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니 원래는 투르크메니스탄과 이란을 거쳐 아제르바이잔으로 향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투르크메니스탄은 코로나19 이후 아직까지 문을 열지 않은 극소수의 국가 중 하나입니다. 이란은 국경을 열었지만, 지난해부터 여성의 히잡 착용 문제로 시위가 이어지고 있지요. 여학생에 대한 화학가스 테러도 발생하는 상황입니다. 아제르바이잔은 육로 국경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결국 비행기를 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마르칸트에서 아부다비를 경유하는 저가항공을 찾았습니다. 경유를 하는 김에 아부다비에서 며칠 관광도 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사마르칸트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계획보다 빨리 아부다비에 도착했습니다. 기분 좋게 비행기에서 내렸고, 아무 문제 없이 입국심사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제 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짐이 분실된 것을 알아차리고 곧바로 공항 카운터에 신고했습니다.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겠다고 해 초조히 기다렸지만, 결국 가방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신고서를 작성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공항을 빠져나왔습니다.
물론 귀중품은 배낭에 두지 않고 따로 작은 가방에 빼 두었습니다. 그러니 엄청나게 큰 피해를 본 것은 아니죠. 항공사에서 얼마나 보상을 해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감당 가능한 손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장기 배낭여행자인 제게 배낭은 생활의 전부였습니다. 배낭 없는 배낭 여행자라니요. 어깨 위에 배낭이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무겁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개중 가장 저렴한 숙소를 잡았는데도, 숙소는 상당히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걸 즐길 여유도 없습니다. 처음에는 신고 현황을 확인할 수 있는 항공사 사이트를 20분에 한 번은 들어가 확인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 배낭은 어디서도 확인되지 않습니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밥을 먹으니 약간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제야 상황을 좀 정리해 보았습니다. 같은 비행기에서 짐을 잃어버린 것은 저 혼자였습니다. 항공사 측에서도 특별히 이유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공항 측에서는 배낭을 찾으면 바로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별다른 연락은 끝내 없었습니다. 잠깐 들렸다 가는 짧은 여행으로 계획해, 아부다비에서 지낼 시간이 길지도 않습니다. 아무래도 다시 짐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당장 필요한 것들을 목록으로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구매할 것들을 정리하다 보니 신기합니다. 어쨌든 저는 짐을 최소화한 배낭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당장 뭘 사야 하지?"라는 질문에 많은 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충전기와 당장 입을 옷가지, 세면도구 정도. 나머지는 당장 없어도 큰 불편은 없습니다.
사실 눈에 보이니 들고 왔을 뿐, 막상 자주 쓰지 않는 물건이 배낭에 여럿 들어있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배낭여행을 하고 있으면서도, 쓸데없는 무게를 어깨에 메고 있었던 셈입니다.
어찌보면 배낭의 무게는 불안의 무게입니다. 제 의지는 아니었지만, 저는 제 불안을 어디에선가 잃어버린 셈이지요. 제 불안이 사마르칸트 공항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인도에서 만났던, 작은 보따리 하나만 들고 여행하던 스님들도 떠올렸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약간은 어깨가 가벼워진 것 같습니다. 물론 마음을 정리하기 위한 정신승리일 수도 있겠지만요.
그런 마음으로 경유지인 아부다비를 하루 동안 여행했습니다. 아부다비는 흥미로운 여행지였습니다. 비싼 물가만 아니었다면 며칠 더 머물러보고 싶은 도시였죠.
아랍에미리트는 연방제 국가입니다. 에미르(Emir)가 다스리는 에미르국(Emirate) 7개가 모여 만드는 나라입니다. 아부다비도 두바이도 이 7개의 에미르국 가운데 하나죠. 이 가운데 아부다비의 에미르가 대통령이 되고, 두바이의 에미르가 부통령 겸 총리가 됩니다. 전제군주제이지만, 또 대통령제를 갖춘 나라가 되는 셈입니다.
전제군주제의 이슬람 국가이지만, 한편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그리 경색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꼈습니다. 이주 노동자를 비롯한 외국인이 많은 영향이 크겠죠. CIA 팩트북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의 인구 중 88.4%는 외국계 인구입니다.
오일머니가 지탱하는 전제군주제와 동시에 그 부가 만들어낸 자유로운 분위기. 아라비아 반도와 이슬람이라는 정체성을 쥐고 있으면서도, 도심 한복판에서는 이곳이 중동의 사막이었다는 생각이 들기 어렵습니다. 그런 흥미를 품고, 가벼운 어깨로 도시 곳곳을 다녔습니다.
물론 그렇게 말했지만, 당연히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습니다. 길을 걷다가도 문득 허전한 어깨를 느끼곤 했습니다. 걱정 섞인 한숨도 여러 번 쉬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배낭은 다시 찾았습니다. 끝내 항공사 웹사이트에서는 신고 현황에 변화가 없었습니다. 짐을 추적하고 있으니 기다려 달라는 메시지 뿐이었죠. 공항 측에서도 연락은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찾아보겠다고 공항 측에 요청했고, 사마르칸트에서 오는 다음 비행기편에 제 가방이 실려 있었습니다.
공항 직원과 짐을 찾는 곳으로 올라갔습니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제 배낭이 바로 눈에 보이더군요. 배낭을 잃어버리고 36시간 만이었습니다. 다시 돌아온 배낭이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찾은 배낭을 갖고 저는 다음 여행지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이번에는 배낭이 분실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배낭이 사라진 동안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배낭은 내 불안의 무게라며 뭔가 깨달음을 얻은 척도 해 보았지요. 하지만 다시 찾은 배낭을 굳이 비우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한 생각은 당황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한 자기합리화에 불과했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왠지 여행이 다시 시작된 것 같은 기분만은 남았습니다. 배낭 없는 배낭 여행자가 다시 배낭을 찾았으니, 생활의 전부를 되찾은 것과 다름 없지요. 작은 가방 하나가 삶의 전부를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그렇게 찾은 배낭을 메고, 저는 다시 서쪽으로 향해 보겠습니다. 다시 서쪽으로 여행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투르크메니스탄은 코로나19 이후 아직까지 문을 열지 않은 극소수의 국가 중 하나입니다. 이란은 국경을 열었지만, 지난해부터 여성의 히잡 착용 문제로 시위가 이어지고 있지요. 여학생에 대한 화학가스 테러도 발생하는 상황입니다. 아제르바이잔은 육로 국경을 열지 않았습니다.
▲ 아부다비로 향하는 비행기 ⓒ Widerstand
사마르칸트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계획보다 빨리 아부다비에 도착했습니다. 기분 좋게 비행기에서 내렸고, 아무 문제 없이 입국심사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제 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짐이 분실된 것을 알아차리고 곧바로 공항 카운터에 신고했습니다.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겠다고 해 초조히 기다렸지만, 결국 가방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신고서를 작성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공항을 빠져나왔습니다.
물론 귀중품은 배낭에 두지 않고 따로 작은 가방에 빼 두었습니다. 그러니 엄청나게 큰 피해를 본 것은 아니죠. 항공사에서 얼마나 보상을 해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감당 가능한 손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장기 배낭여행자인 제게 배낭은 생활의 전부였습니다. 배낭 없는 배낭 여행자라니요. 어깨 위에 배낭이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무겁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 아부다비 시내 ⓒ Widerstand
개중 가장 저렴한 숙소를 잡았는데도, 숙소는 상당히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걸 즐길 여유도 없습니다. 처음에는 신고 현황을 확인할 수 있는 항공사 사이트를 20분에 한 번은 들어가 확인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 배낭은 어디서도 확인되지 않습니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밥을 먹으니 약간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제야 상황을 좀 정리해 보았습니다. 같은 비행기에서 짐을 잃어버린 것은 저 혼자였습니다. 항공사 측에서도 특별히 이유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공항 측에서는 배낭을 찾으면 바로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별다른 연락은 끝내 없었습니다. 잠깐 들렸다 가는 짧은 여행으로 계획해, 아부다비에서 지낼 시간이 길지도 않습니다. 아무래도 다시 짐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당장 필요한 것들을 목록으로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 아부다비 시내 ⓒ Widerstand
구매할 것들을 정리하다 보니 신기합니다. 어쨌든 저는 짐을 최소화한 배낭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당장 뭘 사야 하지?"라는 질문에 많은 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충전기와 당장 입을 옷가지, 세면도구 정도. 나머지는 당장 없어도 큰 불편은 없습니다.
사실 눈에 보이니 들고 왔을 뿐, 막상 자주 쓰지 않는 물건이 배낭에 여럿 들어있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배낭여행을 하고 있으면서도, 쓸데없는 무게를 어깨에 메고 있었던 셈입니다.
어찌보면 배낭의 무게는 불안의 무게입니다. 제 의지는 아니었지만, 저는 제 불안을 어디에선가 잃어버린 셈이지요. 제 불안이 사마르칸트 공항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인도에서 만났던, 작은 보따리 하나만 들고 여행하던 스님들도 떠올렸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약간은 어깨가 가벼워진 것 같습니다. 물론 마음을 정리하기 위한 정신승리일 수도 있겠지만요.
▲ 아부다비의 루브르 박물관 분관 ⓒ Widerstand
그런 마음으로 경유지인 아부다비를 하루 동안 여행했습니다. 아부다비는 흥미로운 여행지였습니다. 비싼 물가만 아니었다면 며칠 더 머물러보고 싶은 도시였죠.
아랍에미리트는 연방제 국가입니다. 에미르(Emir)가 다스리는 에미르국(Emirate) 7개가 모여 만드는 나라입니다. 아부다비도 두바이도 이 7개의 에미르국 가운데 하나죠. 이 가운데 아부다비의 에미르가 대통령이 되고, 두바이의 에미르가 부통령 겸 총리가 됩니다. 전제군주제이지만, 또 대통령제를 갖춘 나라가 되는 셈입니다.
전제군주제의 이슬람 국가이지만, 한편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그리 경색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꼈습니다. 이주 노동자를 비롯한 외국인이 많은 영향이 크겠죠. CIA 팩트북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의 인구 중 88.4%는 외국계 인구입니다.
오일머니가 지탱하는 전제군주제와 동시에 그 부가 만들어낸 자유로운 분위기. 아라비아 반도와 이슬람이라는 정체성을 쥐고 있으면서도, 도심 한복판에서는 이곳이 중동의 사막이었다는 생각이 들기 어렵습니다. 그런 흥미를 품고, 가벼운 어깨로 도시 곳곳을 다녔습니다.
▲ 아부다비 전경 ⓒ Widerstand
물론 그렇게 말했지만, 당연히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습니다. 길을 걷다가도 문득 허전한 어깨를 느끼곤 했습니다. 걱정 섞인 한숨도 여러 번 쉬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배낭은 다시 찾았습니다. 끝내 항공사 웹사이트에서는 신고 현황에 변화가 없었습니다. 짐을 추적하고 있으니 기다려 달라는 메시지 뿐이었죠. 공항 측에서도 연락은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찾아보겠다고 공항 측에 요청했고, 사마르칸트에서 오는 다음 비행기편에 제 가방이 실려 있었습니다.
공항 직원과 짐을 찾는 곳으로 올라갔습니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제 배낭이 바로 눈에 보이더군요. 배낭을 잃어버리고 36시간 만이었습니다. 다시 돌아온 배낭이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찾은 배낭을 갖고 저는 다음 여행지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이번에는 배낭이 분실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 아랍에미리트의 국기 ⓒ Widerstand
배낭이 사라진 동안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배낭은 내 불안의 무게라며 뭔가 깨달음을 얻은 척도 해 보았지요. 하지만 다시 찾은 배낭을 굳이 비우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한 생각은 당황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한 자기합리화에 불과했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왠지 여행이 다시 시작된 것 같은 기분만은 남았습니다. 배낭 없는 배낭 여행자가 다시 배낭을 찾았으니, 생활의 전부를 되찾은 것과 다름 없지요. 작은 가방 하나가 삶의 전부를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그렇게 찾은 배낭을 메고, 저는 다시 서쪽으로 향해 보겠습니다. 다시 서쪽으로 여행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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