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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경보에 놀란 고양이... 반려동물 가족은 이럴 때 어떡하나요

[주장] 재난상황서 밀리는 반려동물의 안전... 대피지원 등 안전대책 담긴 법개정 필요

등록|2023.06.02 15:31 수정|2023.06.02 15:39

▲ 필자 신지혜와 함께 사는 고양이 지오가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다. ⓒ Pop Con


이틀 전인 5월 31일 오전 6시 41분, 요란한 소리와 함께 이름도 생소한 '위급 재난 문자'가 도착했다. 서울 지역에 경계경보를 발령했으니 대피하라는 것이다. '경계경보라니?' 평소 받는 안전 안내 문자와 다르다는 건 단번에 알았지만, 왜 경계경보를 발령했는지,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는 가늠할 수 없었다.

긴가민가할 때, 어느 날부턴가 들리지 않았어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던 사이렌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밖에서 웅얼웅얼해서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방송 소리까지 들리니 심장이 덜컥했다. 2019년 가을부터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 지오(6세 추정)도 처음 듣는 사이렌 소리에 많이 놀란 듯 고개를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아, 북한 때문이구나. 위성 쏠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우리나라 쪽으로 쏜 건가?' 순간 잠이 확 깨고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야하지? 지하철 같은 데를 가야 되나?'

'왜', '어떻게' 빠진 재난문자... 중요했던 건 "고양이도 함께 갈 수 있을까" 
 

서울시 경계경보 문자는 오발령 사항북한이 우주발사체를 발사한 5월 31일 오전 서울시가 발송한 경계경보 발령 위급 재난문자(왼쪽). 행정안전부는 서울시가 6시41분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 사항이라는 문자를 다시 보냈다. ⓒ 연합뉴스


대피 준비를 하라는데, 재난 문자를 다시 읽어봐도 어디로 가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북한에서 뭔가를 이미 쏜 건지, 아니면 쏠 때까지 더 기다려야 하는 건지도 말이다.

어디로 가야하든 그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3년 넘게 같이 산 고양이가 나와 함께 대피할 수 있는지'였다. 대피해야 할 곳이 어디든 사람들이 많이 몰릴 거고, 자연히 반려동물 출입은 제한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화재 때문에 집을 잃은 이재민 중에서도, 제공된 숙소에 반려동물이 들어가지 못해 대피를 포기한 사례마저 있다는 걸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었다.

결국 나는 선택해야했다. 혼자 짐을 챙겨 나서야 할지, 아니면 고양이와 함께 집에 남을지를 말이다. 위험하다는데 고양이를 혼자 집에 남겨둘 수는 없다고 생각이 정리될 즈음, 고양이가 놀랐는지 침대 위로 올라왔다.

등을 쓰다듬으며 고양이를 진정시키는 사이, 휴대폰 재난 문자 알림이 한번 더 요란하게 울렸다. 뒤이어 민방위 사이렌 소리도 반복됐다. 또다시 놀란 고양이는 소리나는 휴대폰을 피해서 침대 옆 캣타워로 피신하듯 올라갔다. 이렇게 겁 많은 고양이를 두고서 혼자 갈 수는 없지 싶었다.   

알림 문자를 확인해보니, 이번엔 행안부가 보낸 '서울시의 경계경보는 오발령'이었다는 내용의 문자였다. 헛웃음이 났다. 고양이와 함께 대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대피를 포기하자는 애틋한 결심까지 했는데 오발령 소동이었다니. 20여 분이 지나 또다시 서울시는 북한 미사일 발사로 위급 안내문자를 발송했고, 경계경보는 해제되었다고 알려왔다. 행안부와 서울시가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것도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

반려동물 가족을 위한 재난 대응 가이드라인이 있다고?
 

▲ 국민재난안전포털에 올라와있는 '반려동물 가족을 위한 재난 대응 가이드라인' ⓒ 화면갈무리


이후 북한이 미사일이 아닌 우주발사체를 쏜 것이라고 보도되고 오세훈 서울시장도 직접 나와 새벽의 경계경보 문자 소동을 해명할 즈음, 나처럼 대피의 1순위 기준을 반려동물로 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제작한 '반려동물 가족을 위한 재난 대응 가이드라인'이 트위터 등 SNS에서 화제가 된 것이다.

여기서 본 가이드라인은 생각보다 촘촘하게 구성돼 있었다.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는 언제든 대피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야 할 사항이 소개됐다. 반려동물 관련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 등을 미리 알아놓고, 목줄이나 이동장 등 이동에 필요한 장비와 반려동물용 재난 키트를 구비해 출입구 근처에 준비해두라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반려동물이 이동장을 편안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평소 훈련이 필요하다는 등의 세심한 문구를 보면서는, 이 가이드라인을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직접 작성했거나, 아니면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서 썼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촘촘히 준비된 가이드라인을 무색하게 하는 슬픈 사실도 동시에 함께 알게 되었다. 봉사용 동물을 제외하면, "반려동물은 대피소에 데려갈 수 없다"고 국민재난안전포털의 재난대피소 지침에 이미 정해져 있다는 내용 말이다. 재난 대피를 미리 준비해봤자 함께 갈 수 있는 대피소가 없다. 이런 현실에서는, 이 반려동물 가족 가이드라인 중에서 '대피 중 기둥에 묶어놓지 마세요'라는 글귀만 유효하게 남게 된다. 반려동물이 위험을 인지하면 알아서 스스로 도망가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반려동물 동반대피 가능하도록... 지원방안 담은 법 개정 돼야

가이드라인을 자신의 SNS에 공유하며 대피소에 반려동물 동반 입소가 불가능하다면 나처럼 대피를 포기하겠다고 말한 이들도 많았다. 반려동물은 보호자에게 동물 그 이상의 의미이며, 반려동물은 보호자 없이 스스로 생존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 필자 신지혜와 함께 사는 고양이가 종이 위에 앉아 집사의 일을 방해하며 놀아달라고 쳐다보고 있다. ⓒ 신지혜


작년에 기록적인 폭우가 서울을 강타했을 때 동작구의 한 50대 여성은 반려묘를 구하려고 반지하 주택에 다시 들어갔다가 참사를 당했다고 한다. 집 안에 물이 차올라도 내 삶의 소중한 존재를 외면할 수 없었을 그 심정은,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이라면 아마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폭우·화재 등의 자연재난이 늘었고, 국제관계도 신냉전시대로 회귀하는 듯 긴장도 높아지고 있다. 재난이 더 빈번해지고 있는 만큼 국민 안전을 위한 대피도 더욱 촘촘한 체계로 달라져야 한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제작한 가이드라인이 반려동물 가족에게 실질적으로 유용하려면, 법이 개정돼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가 반려동물 동반대피소를 비롯한 반려동물 동반자에 대한 지원 방안을 모색하게 할 법안 내용을 재해구호법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재난 시 반려동물의 안전 대책 등 내용이 담긴 재해구호법 개정안은 2021년 9월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대표발의하고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을 비롯한 12명 의원이 함께 발의했으나, 아직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머물러 있는 상태다.

반려동물을 단지 소유물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보호자들에게 반려동물은 하루하루 자신의 삶을 함께 하는 가족과도 같은 존재일 것이다. 그런 반려동물과 함께 대피를 할 수 없어 자신의 안전마저 포기하는 국민이 없도록, 더 늦기 전에 국회 차원의 진지한 논의가 시작되길 바란다.
 

▲ 국민재난안전포털에 올라와있는 재난예방대비시 비상대처요령 중 '반려동물을 위한 재난 대처법' 화면갈무리 ⓒ 국민재난안전포털

덧붙이는 글 필자 신지혜는 기본소득당 대변인이자 2019년 가을부터 집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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