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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목숨값으로 분양 받은 아파트인데... 하자가 있어요"

[여자가 바라본 여성 이야기] 영화 <드림팰리스>

등록|2023.06.02 14:28 수정|2023.06.02 14:28

▲ 영화 <드림팰리스> 스틸컷 ⓒ 인디스토리


한국 사회에서 '집'은 안온한 보금자리를 넘어 재테크, 계층의 구분점이 되었다. 어느 지역 어떤 브랜드의 아파트에 사느냐, 전세냐 자가냐 임대냐에 따라 격차가 구분된다. 시들지 않는 부동산 경기, 그중에서도 아파트에 얽힌 사회 문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영화는 2010년 전 국민을 떠들썩하게 했던 실화를 모티브로 했다. 수도권 아파트 미분양 할인 때문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이사를 막았던 일화다. 기존 입주민과 할인 분양받은 새 입주민은 아파트를 두고 옥신각신했다. 힘을 합쳐 해결할 생각 보다, 편을 나누게 된 이유를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까?

남편의 목숨값으로 장만한 내 집
  

▲ 영화 <드림팰리스> 스틸컷 ⓒ 인디스토리


산업재해로 남편을 잃은 혜정(김선영)과 수인(이윤지)은 진상 규명을 위해 투쟁했던 동지다. 하지만 혜정은 길고 지루한 싸움을 그만두고 합의했다. 2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유족들은 배신자라고 눈총 주지만 남편이 실수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아들 동욱(최민영)에게도 떳떳하다.

힘든 시간을 이겨낸 혜정은 새 출발 하려 한다. 합의금으로 분양받은 아파트에 입주한 날, 본의 아니게 녹물이 나온다. 분양사는 아직 입주가 덜 된 상태라 이 집 사정만 봐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각 세대 하자를 모아 업체를 선정할 때까지 일단 참아보란다. 당장 먹고 씻을 물이 안 나오는데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건지 분통 터지는 상황. 혜정은 급한 대로 입주자 회의를 통해 상황을 수습하려고 마음먹는다.

이쪽도 난감한 상황이다. 하자 있는 아파트란 소문이라도 퍼지면 집값 떨어진다며 함구하란다. 참다못해 사기 분양이라며 큰소리치니 분양사는 주변에 소개하면 인센티브 챙겨주겠단다. 어떻게든 입주를 마쳐야 보상받을 것 같은 분위기. 혜정은 울며 겨자 먹기로 집을 팔아 보려고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결국 할인 판매에 들어간 분양사의 농간으로 입주민들은 반목하고 대립하게 된다.

탄탄한 각본, 폭발하는 연기력
  

▲ 영화 <드림팰리스> 스틸컷 ⓒ 인디스토리


영화는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두 여성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담았다. 신축 아파트의 하자 앞에 내 이익을 위해 남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진퇴양난이 이어진다. 사람 데려오면 인센티브 준다는 말에 돈도 벌고 상황도 해결하고 싶었던 게, 누군가의 큰 상처가 되어버린다. 도미노 같은 연쇄적인 상황은 혜정과 수인의 가족, 주변인들과 단단히 맞물려 있다. 한 사건은 죽음을 부르고 그 죽음은 또 다른 죽음으로 전염된다.

하지만 이들이 박 터지게 싸우는 동안 실질적인 원인 제공 집단은 등장하지 않는 기묘한 현상이다. 부동산 공급정책에 실패한 정부와 무리한 분양가를 책정한 건설회사의 책임은 뒤로한 채 애먼 소시민끼리 얼굴 붉히고야 만다.
  

▲ 영화 <드림팰리스> 스틸컷 ⓒ 인디스토리


<드림팰리스>는 한국에서 좀처럼 찾기 힘든 중년 여성의 투톱 영화다. 아파트 미분양 사건과 주민 갈등, 산업 재해 유가족의 갈등을 다룬 무거운 주제지만 김선영과 이윤지는 혼신의 연기를 펼친다. 졸지에 생때같은 자식을 홀로 키우고 집 하나 달랑 남겨진 여성은 충돌과 화해, 연대를 이루다 못내 찢어진다.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함께 했던 때, 방범창을 사이에 두고 분노와 사죄의 마음이 닿지 못한 상황은 명장면이다. 의도치 않게 선인이자 악인이 되는 복합적인 인물이 세세하게 묘사된다. 김선영 배우는 한국 영화에서 중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드물다며, 앞으로 기꺼이 많은 배역으로 소비되고 싶다는 애틋한 말을 전했다.

특히 '집'을 통해 드러낼 수 있는 문제점을 파고든다. 공동체 안에서 분열의 불씨가 되는 개인의 이기주의, 대기업과 개인의 싸움 등. 현실적 상황이 날 서 있다. 비록 '드림팰리스'는 부실시공이었지만 각본과 연기는 견고한 명품임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어느 순간 둥지, 그 이상이 되어버린 인생의 지표 같은 집. 엔딩 크레딧이 뜨면 집에 관한 어떤 정의를 각자 내리게 될지 몹시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장혜령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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