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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보내 군자금 모으고 체코제 무기 구입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30] 이상룡은 신흥무관학교와 접촉하면서 독자적인 준비에 나섰다

등록|2023.06.11 17:22 수정|2023.06.11 17:22

▲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 ⓒ 이항증


이상룡이나 만주에서 무장독립전쟁을 준비하고 있던 독립운동가들은 임시정부가 본부는 상하이에 두고 무장독립전쟁 기관을 만주에 두기를 기대하였다. 양측 사이에 이미 합의된 사항이기도 했다. 그러나 국무총리 이승만은 미국에서 부임하지 않고, 여전히 실현성이 없는 '외교론'에 머물러 있었다.

비록 서로군정서가 임시정부 산하로 편입되었으나 많은 분야에서 자율권을 유지하였다. 임시정부에서 무장전쟁에 이렇다 할 방략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이상룡은 신흥무관학교와 접촉하면서 독자적인 준비에 나섰다.

군사력은 신흥무관학교 출신들과 3.1혁명 후 국내에서 다수의 의기 넘친 청년들이 찾아와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은 의기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성능이 좋은 무기가 있어야 했다. 첩보에 따르면 1차 세계대전 중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 출병했던 체코군이 정세의 변화에 따라 자국으로 돌아가면서 자신들이 사용했던 무기를 팔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상룡은 그동안 이주 한인들의 의연금과, 이런 날에 대비하여 아들 준형을 은밀히 고향으로 보내 남아있는 재산을 팔아오도록 하여 모아둔 자금이 있었다. 손부 허은 여사의 기록이다.

석주어른께서는 당신의 450년 된 고택인 '임청각'을 매각해서 독립사업에 쓰려고 외아들인 나의 시아버님을 한국으로 들여보냈다. 아버님은 20누대의 종손으로서 가문도 내팽개치고 독립운동 한답시고 떠나갔던 사람이 독립달성도 못하고 고향에 다시 들어가려니 얼굴에 소가죽을 덮어 쓴 것 같더라고 나중에도 몇 번 말씀하시는 것 들었다. 종손은 가문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어느 집안도 종손이 망명을 떠나는 법은 없단다.

그런데 석주어른께서는 종손이면서 집안일보다 국가안위가 더 우선이라 하며 떠났으니 문중에서 좋아할 리가 없었다.

문중에서 임청각 매각을 반대했다. 또 일본의 눈치도 봐야하는 난관도 있었다. 문화재라 그랬던가 봐. 어떻게 해서든 팔아 보려고 중간에 사람도 놓아 보았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문중에서 할 수 없이 돈 500원 만들어 주었다. (주석 8)

이상룡은 서로군정서 대원 김준에게 지시하여 김준과 김봉학 등 정예대원 14명이 블라디보스토크에 가서 무기를 구입해오도록 했다.

대원들은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독립운동자들을 찾아가 그들의 도움을 받아 암시장에서 무기를 구입하였다. 구입한 무기의 종류는 소련제 5연발 권총과 단발총, 미국제나 독일제, 그리고 일본제 등의 30년 및 38년식 소총이었다. 또 루거식·남부식·7연발식 권총도 있었으며, 비싼 값이긴 하지만 기관총도 구입할 수 있었다. 탄환도 돈이 되는대로 구입하였다. 이렇게 구입한 무기를 대원들은 1인당 힘이 되는 대로 2~3정씩 소지하고 오던 길을 되돌아 서간도의 군영으로 향했다. (주석 9)

대원들은 중국군과 러시아군의 진지를 피해 수백리 길을 무거운 무기를 메고 깊은 산중을 걸어 무사히 귀환하였다. 이상룡은 아들이나 조카와 같은 대원들의 목숨을 건 노고를 치하하면서, 지청천 사령관으로 하여금 전략을 세우도록 하였다.


주석
8> 허은, 앞의 책, 109쪽.
9> 채영국, 앞의 책, 148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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