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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계도지, 건강한 지역신문 발전 재원으로 활용해야"

서울지역 계도지 체제 개선을 위한 집담회... "언론 건강성 위협하는 계도지 바뀌어야"

등록|2023.06.07 09:31 수정|2023.06.12 09:32

▲ ⓒ 은평시민신문


쉬운 개혁은 없다. 기존의 고리를 끊어내고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내는 일은 늘 장벽에 부딪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동안 관언유착이라는 비판을 받아 온 계도지 문제 해결도 풀어내기 만만치 않은 언론개혁 과제다. 특히 서울의 계도지는 100억 원을 훌쩍 넘는 예산을 집행하면서도 예산집행 근거가 미약하고 행정이 언론을 길들이는 방편으로 활용되고 있어 시급한 언론개혁과제로 손꼽힌다.

하지만 서울 25개 자치구 별로 집행되고 있다는 점, 중앙지와 지방지, 지역지 등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예산집행 기준이 없다는 점, 군사독재 시절부터 50여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며 끈끈한 관언유착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는 점에서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웠다.

그런 면에서 지난 1일 전국언론노조 회의실에서 열린 '서울지역 계도지 체제 개선을 위한 집담회'는 반가운 소식임이 분명하다. 이날 집담회는 전국언론노조와 민언련, 미디어오늘, (사)바른지역언론연대 등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이어온 서울 계도지 문제를 공개적으로 꺼내고 해법 마련을 위한 첫 발을 내딛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 용혜인 국회의원은 "계도지 관행은 풀뿌리 가치를 훼손시키고 언론의 건강성을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 은평시민신문


용혜인 국회의원(기본소득당)은 집담회 개최 축하 영상을 통해 "계도지 관행은 지자체와 지역 언론의 관계, 지자체와 지역 정치인들의 관계를 오염시킨다는 점에서 풀뿌리 가치가 훼손되고 언론의 건강성이 위협받게 된다"고 말했다. 또한 "계도지 예산집행은 지방재정 지출 원칙에도 맞지 않다"며 "지금의 계도지 방식이 아닌 건강한 지역 언론의 보호와 지속가능성을 위한 지원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집담회를 시작하며 윤창현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은 "계도지 문제는 민감한 문제라는 걸 알면서 지금까지 회피해 왔다"며 계도지 문제를 '차가운 감자'에 비유했다. 해결할 수 있지만 한쪽으로 밀어놓고 오랜 시간 외면해 온 걸 표현한 말이다. 이어 "지금은 언론이 누군가를 계도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닌 시대"라며 "오늘 집담회를 통해 그간 미뤄온 묵은 과제를 풀 수 있는 중요한 진보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전대식 전국언론노조 부위원장은 2000년 초반 진행된 경남과 전북 등 계도지 폐지사례를 소개하며 "시민사회단체와 공직사회, 지역 언론 등이 한 목소리로 계도지 폐지를 요구하고 정치인이 이에 답하면서 성공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 2020년 서울 25개구 계도지 현황 ⓒ 은평시민신문


계도지 예산, 언론사 평가와 활용 수단으로 이용되는 현실 지적 

장슬기 <미디어오늘> 기자는 '서울의 계도지 현황' 발표를 진행하며 서울 각 구청에서 계도지 예산을 활용해 구정 홍보를 유인하고 있는 사례를 통해 계도지의 문제점을 짚었다.

장 기자는 "금천구의 경우 '구정보도 실적 및 언론사별 구 정책 홍보의향 등을 검토해 신문사별 구독부수를 조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금천구의 경우 언론사를 평가하며 "<서울신문>은 자치구 평균 1426부 대비 여전히 부족", "<내일신문>은 현장취재 등 정책 홍보에 우호적", "<한겨레신문>은 현장취재 등 실적 증가", "<문화일보>는 홍보 실적 상승" 등 주먹구구식 계도지 예산 편성 과정을 소개했다.    지난해 강북구청의 계도지 예산 삭감 사례도 소개했다. 100억 원이 훌쩍 넘는 서울 계도지 예산의 절반은 <서울신문>이 차지하고 있는데 강북구청이 <서울신문> 예산을 삭감하자 서울신문 사장과 부장·취재기자 등이 구청장을 찾아가 '재선해야 하지 않느냐'며 삭감 철회를 요구하는 등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장슬기 기자는 "강북구청이 이를 거절하자 <서울신문>은 강북구청장 비판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다른 지자체와 달리 구청장 인터뷰나 구청 홍보기사를 싣지 않고 있다"며 "계도지의 기능을 잘 보여준 사례"라고 강조했다.

계도지 예산으로 배포되는 신문은 중앙일간지, 지역주간지, 지방지 등 종류가 다양하다. 그만큼 다양한 신문사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계도지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물밑경쟁도 치열하다. 특히 서울신문이 호반건설로 넘어간 이후 그간 준공영신문으로 대우받던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장슬기 기자는 "한겨레신문도 서울생활 섹션 별지 '서울&'을 내면서 계도지 시장에 참여하고 있고 조선일보는 서울지역 자치구에 공문을 보내 '서울 섹션'을 발행하겠다며 계도지 예산 배정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서울 구청장이 24곳에서 8곳으로 줄어들면서 보수지와 경제지 계도지 확장이 지속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건강한 지역신문 발전 재원으로 활용 위한 세심한 접근 필요

이용성 민언련 정책자문위원장은 '계도지 개혁과 지역신문 조례'에 관해 발표를 진행했다. 이 위원장은 "2003년 지역신문 개혁과제 중 계도지 폐지도 포함돼 있었고 계도지가 사라져야 지역신문의 난립과 합리적 경영이 가능해진다는 평가도 있었다"고 전했다. 계도지 문제가 갑작스럽게 등장한 것이 아니며 특히 지역 언론계의 환경을 황폐화시키고 있다는 걸 의미하고 있다. 
 

▲ 은평구가 구독중인 계도지 신문 중 일부 (사진 : 정민구 기자) ⓒ 은평시민신문


2012년 서울에서도 계도지 폐지를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 바로 '기초의회 발전을 위한 한걸음 모임'이라는 서울 구의원들의 모임에서 계도지 문제를 해결하고 건강한 지역신문 양성을 위해 나섰지만 지역지의 집중 공세 계도지 폐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용성 위원장은 "이들은 자치구 조례가 아닌 서울시 조례 제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지만 계도지가 없는 서울시의 상황은 개혁의지를 반영하기 어려웠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2010년 이후 경상남도와 부산시는 지역신문 조례를 제정해 지역신문 지원을 시작했으며 충청남도는 미디어센터 조례를 만들었다. 경남과 부산시, 충남은 계도지가 사라진 지역으로 지역신문조례 제정으로 투명하고 공정한 기준이 작동하는 지역 언론 환경에 나선 것이다.

인천시는 지역신문 구독지원 조례안을 만들었지만 지원대상과 절차의 불명확성, 자치단체가 지역 언론을 통제하려한다는 공무원노조의 반대 등으로 보류되기도 했다.

이용성 위원장은 "서울 계도지 예산이 건강한 지역신문 발전 재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지역신문지원조례 내에 구독 지원을 포함시키는 방식 등이 검토되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 ⓒ unsplash ⓒ 은평시민신문


계도지 예산을 미디어 바우처 정책 활용으로 

그렇다면 계도지를 개혁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2000년 초반, 경남의 사례처럼 계도지를 폐지한 후 관련 조례를 제정해 건강한 지역 언론 육성에 나설 수 있을까?

참여자들은 서울의 계도지 개혁방향은 경남 사례와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 계도지에는 중앙지, 지방지, 지역지 등이 섞여 있고 건강한 지역신문이라고 할 수 있는 매체도 소수인 환경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언론 관련 예산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100억 원이 넘는 계도지 예산을 적절히 활용해 행정은 계도지 비판으로부터 벗어나고 언론은 저널리즘 추구라는 목적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언론노조 이준형 정책전문위원은 시민미디어 접근권을 확장하는 방안으로 계도지를 개혁하자고 제안했다. 2020년에 화제가 된 '미디어 바우처' 아이디어를 활용해 보자는 것이다. 미디어 바우처 핵심원리는 공적 재원으로 미디어를 지원하고 그 선택권을 시민에게 주자는 것이다. 공적 주체는 재원은 제공하되 언론사에 간섭할 수 없고 시민은 좋은 기사를 찾아 읽으면서 미디어 리터러시 향상의 기회를 얻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 위원은 "지자체에 대한 감시와 견제, 지역 현안들에 대한 정보가 시민들에게 전달되면서 지역민주주의 차원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가능한 지자체부터 만들고 선례를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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