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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서 중요한 것은 어쩌면

미국의 사회학자 필 주커먼의 <종교 없는 삶>을 읽고

등록|2023.06.12 16:34 수정|2023.06.12 17:06
넷플릭스에서 사이비종교의 악행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를 봤다. 평소 교회 세습, 타 종교 공격, 현실정치 개입 등 이러저러한 종교적 폐해를 알고 있던 차에 다큐의 내용은 나에게 신앙을 가지는 것이 옳을까? 신을 믿는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라는 물음을 다시 끄집어 올리게 할 정도로 묵직한 충격을 주었다.

사람들은 대개 한 번쯤은 세계와 존재의 근원을 알고 싶어서 아니면 삶의 무게에 눌려서 그도 저도 아니면 현실적 이유로 종교를 가지려 고민해 봤을 테고, 누군가는 신자가 되었을 것이다. 나도 비슷한 이유로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었다. 개신교와 천주교에서 두 번이나 세례를 받은 얼치기 신자다.

개신교 교회에 다닌 데는 유학 시절 아이들의 우리말 습득과 정체성 유지라는 현실적인 이유가 컸다. 보수적인 설교와 문자주의적 성경해석, 교회 내 알력 등을 경험하면서 교회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아 귀국한 후로는 자연스레 교회에 다니지 않게 되었다.

천주교에 입문하게 된 연유는 우리 부부가 힘든 상황을 겪고 이겨내는 과정에서 아내가 먼저 신자가 되었고, 그러다 함께 성당에 다니자고 아내가 권유해서다. 하지만 지금 누군가 하느님을 믿느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고백하건대 확신이 없다. 신을 믿자는 마음이 들다가도 불가지론자로 느껴지고 다시 무신론자로까지 롤러코스터를 탄다.

'완전함을 소망하지만 불완전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나로서는 자연스러운 반응인지도 모른다.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은 신을 믿지 않다가 만일 존재하기라도 하면 불이익이 될 터이니 신을 믿는 것이 유리하다고 했다 한다. 모든 인간은 영성이 있어서인지 파스칼 탓인지 몰라도 신을 믿지 않으면 어딘가 찜찜한 것도 사실이다.
 

▲ 종교 없는 삶 - 불안으로부터 나는 자유로워졌다, 필 주커먼(지은이), 박윤정(옮긴이) ⓒ 판미동


그런데 미국의 사회학자 필 주커먼은 자신의 책 <종교 없는 삶>(박윤정 옮김, 판미동, 2018)에서 신을 믿지 않아도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어쩌면 신을 믿는 사람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그는 주장이 아니라 인터뷰, 통계자료, 연구사례 등 다양하고 실증적인 방법을 통해 근거를 제시한다.

종교가 필요한 이유로 대개 사람들은 도덕적 삶(선한 삶)을 살아감에 있어 도움이 된다는 점을 든다. 종교가 없는 사람은 비도덕적이기 쉽다는 것이다. 주커먼은 기존의 조사와 연구 결과들을 이용하여 이것이 편견임을 보였다.

즉 종교가 없는 사람이 종교가 있는 사람보다 인종차별 성향이 낮고, 시민평등권 운동에 더 찬성하고, 고문 반대 의식이 더 높고, 사형제를 반대하고, 환경보호 인식이 높은 등 보다 민주적이고 유연한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개인이 아닌 사회 차원에서도 일부 예외(베트남, 중국)는 있지만 대체로 같은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신을 믿는 비율이 가장 낮은 나라들이 번영과 평등, 자유, 민주주의, 여권, 인권, 교육 정도, 범죄율, 기대수명 면에서 가장 '건강'하다. 반면에 신을 믿는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들은 높은 빈곤율, 견고한 불평등, 높은 영아 사망률부터 개선하기 힘든 사회적 부패, 깨끗한 물의 부족, 민주주의의 부재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건강을 측정하는 많은 기준으로 봤을 때, 상대적으로 성공적이지 못한 경향이 있다."(p.90)

신을 믿으면 신이라는 '도덕적 나침판'(저자 표현)이 인도하는 대로 살면 되지만 신에 의존하지 않는 무종교인의 도덕성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주커먼은 말한다.
 
"종교 없는 사람들에게 섹스를 자제하거나, 알코올을 피하거나, 권위적인 인물이 시키는 대로 하거나, 내세의 결과가 두려워서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도덕성은 타인들에게 해를 입히지 않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에 가깝다." (p.37)

양심대로 선한 행동을 하면 자신에게 다시 도움으로 돌아온다는 지극히 단순한 논리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에서도 자연스럽게 죽음 너머의 삶이 아닌, 현재의 삶을 잘 살아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그는 지적한다.
 
"종교 없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불멸을 믿지 않고, 죽음이 돌이킬 수 없는 최후임을 냉철하게 받아들인다. 이로 인해 더욱 절실하게 삶을 살아가고, 사랑을 더욱 중요하게 인식하며, 진실성을 더욱 많이 보여주고, 친구나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긴다." (p.339)

그렇다면 무종교주의자인 주커먼은 종교 가진 사람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종교 없는 삶만을 옳다거나 고집하지는 않는다. 종교를 가지면 좋은 점이 많다는 걸 인정한다.
 
"종교는 사람들에게 종종 사랑이 없는 것 같은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고, (중략) 우리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고 느끼게 해주고, (중략) 이타주의와 자선, 선의, 겸양을 고취 시키고, (중략) 삶에서 힘든 변화들을 쉽게 겪어 내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p. 378-379)

결국 종교 있는 삶은 '어떤 태도로 믿느냐'로 귀착된다. 책의 추천사를 쓴 종교학자 오강남은 우리에게 설득력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 <진짜 종교는 무엇이 다른가: 종교의 심층을 탐구한 인물들>(현암사, 2019)에서 모든 종교는 표층(表層)과 심층(深層)이 있으며, 종교를 가진 사람은 심층 차원의 신앙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표층 종교는 '무조건적 믿음'을 강조하여 경전을 쓰여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심층 종교는 '이해'와 '깨달음'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표층 종교는 죽어서 극락이나 천당에 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심층 종교는 경전에 갇힌 문자주의를 벗어나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의미 있게 살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나는 저자가 소개하는 실천적 사상가 함석헌의 종교적 가르침을 심층 신앙의 표본이라 생각한다. 그는 일찍이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했다. 여기서 '생각하는 백성'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한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에서의 '깨어있는 시민'과 통한다.

성찰하고 각성하는 태도는 신앙에도 유효하다. 그러한 태도는 주커먼이 주장하는 무종교인의 태도와 연결된다. 신을 믿는 여부와 무관하게 우리에게는 주커먼의 선택과 함석헌의 선택이 모두 있다.

나는 여전히 존재의 자긍심과 불안 사이에서, 신앙과 무신앙 사이에서 방황한다. 하지만 이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찰하는 마음, 열린 자세 그리고 공감하고 연대하는 태도를 가지는 거라 나는 믿는다. 신을 믿고 안 믿고는 그 후의 문제며, 그때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되는 게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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