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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여성이여, 혼자 어디까지 가봤나요?

[낼 모레 육십, 독립선언서] 나를 책임지는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도 바로 나

등록|2023.06.12 16:34 수정|2023.06.12 17:04
벌써 3년쯤 됐을까, 홀로 부산행을 감행한 적이 있었다. 주체할 길 없는 답답한 마음에 아침 일찍 기차역으로 향했다. 부산 역에서 택시를 타고 "태종대로 가주세요"했는데, "혼자 오셨어요?" 묻는다. 뭐가 부끄러웠는지 거기서 친구가 기다린다며 얼버무렸다.

태종대를 오르고, 흰여울마을에 들러 차도 한 잔 했다. 그리고 서둘러 돌아왔다. 남편이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간 김에 며칠 쉬지 그랬냐는 지인들의 말에, 그 정도면 됐다고 했지만 무엇보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내 스스로 애써 지키려 했었던 것같다.
 

▲ 태종대 ⓒ 태종대 국립공원관리소


혼자 살기 내공을 따지는 몇몇 코스들이 있다. 그 중에 혼자 밥 먹기가 중요한 통과 의례란다. 하지만 그게 통과 의례라면 나는 이미 오래 전에 건넜다. 마흔 무렵이었나 처음 문화센터 강의를 나갔을 때였던 듯하다.

대학 시절 과외를 갔다가 내 꼬르륵 소리를 듣다 못해 배우던 학생이 빵을 가져다 줬던 이래, 나는 수업을 하기 전에 배를 채워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아마도 죽집이었을 것이다. 늘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 음식을 차리던 내가 나를 위해 메뉴를 고르고, 식구들을 생각하며 약간은 죄책감을 느끼며, 그러면서도 나를 위한 선물처럼 첫 술을 뜨던 기억이 떠오른다.

물론 일주일에 한 번 사먹는 거랑, 매 끼니 나를 위해 차리는 밥상은 다른 차원이지만, 그 사람들이 혼자는 못한다는 식당에서 밥 사먹기를 일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음은 영화보기? 이 역시도 오랫동안 영화 리뷰를 써오던 내게는 그저 직업적 프로세스로 여겨졌다.

심지어 남들이 잘 보지않는 영화를 주로 찾아보던 나는 그 커다란 영화관을 홀로 '독차지' 하고 보느라 무서웠던 적이 종종 있다. 외려 가끔 다른 사람들과 영화를 보게 되면 함께 보는 사람들의 반응을 신경 쓰는 수준이었달까.
 

▲ 국제 갤러리 ⓒ 국제갤러리


나 스스로 나를 위로하고 달래다 

혼자 밥도 잘 사먹고, 혼자 영화도 잘 보고, 나는 혼자 사는 데 준비된 사람이었나? 하지만 사람이 막상 자존감이 떨어지면 늘상 씩씩하게 해내는 것들에 대해서도 주눅이 들게 되기도 한다. 처음 가정이라는 울타리로부터 '프리'해졌던 시절이 그러지 않았을까. 아침에는 빵 만들고 오후에는 글쓰기로 고분분투하던 시간, 그 시절이 주던 중압감과 답답함으로부터 나를 좀 달래줄 그 무엇이 필요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주 6일을 일하던 시절, 오전에 빵을 튀기고 돌아와 잠을 자야하던 시간, 다짜고짜 나는 서울행을 택했다. 삼청동 국제갤러리부터 학고재, 안국역의 공예박물관까지 작품들을 섭렵했다. 갤러리라는 공간이 주는 고즈넉한 분위기도 좋아하지만, 작가가 한 점 한 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그린 그림 앞에 서면 숙연해진다.

많은 화가들의 개인 전시회에 가면 하나의 주제를 놓고 끊임없이 되풀이하여 그린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몇 년, 몇 십년, 때론 평생에 걸쳐... 그런 누군가의 진득한 열정 앞에 들끓던 내 자신의 마음이 겸허해지는 것이다.

어디 그림뿐인가. 어느날 지하철을 탔다가 만나게 된 광고, 지역민이라면 단 돈 만원도 안 되는 금액으로 두 시간의 귀호강을 즐길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적 음악을 알게 해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찾기 시작했던 시립 오케스트라 공연이었는데, 새삼 나에게 '만원의 행복'으로 찾아왔다.

어스름한 저녁, 지하철에서 내려서도 한참을 걸어가야 하던 공연장, 그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렜다. 공연장에서 퍼져나오는 나무 향이 숲 속 피톤치드 저리가라였다. 드디어 시작된 공연, 라디오를 통해 듣던 클래식의 음색과는 다른 날 것의 소리들이 그대로 전율이다.
 

▲ 공연장 ⓒ 인천 아트센터


흔히 우울증을 위한 루틴 중에 음악, 그 중에서도 클래식을 들으라는 해법이 있다. 아마도 그건, 자꾸 내 속으로만 끌어내려가는 나의 마음을 세상 속으로 인도하라는 팁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두 시간 여의 공연을 듣다보면, 어느 새 남의 마음은 음악이 무색하게 내 마음 속 갈래갈래 길을 헤매이고 있기도 한다. 그래도 내 눈 앞에서 펼쳐지는 수 십 명의 단원들이 하나의 곡을 향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또 다른 숙연함과 겸허함으로 나를 인도한다.

개인의 독주가 연주자 개인의 기량을 위한 헌신을 느끼게 한다면, 오케스트라 연주는 그와는 다른 경험을 준다. 수십 명이 모여 한 곡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단원 중 누군가는 오래도록 기다리다 단 한 번의 소리를 내기도 하고, 또 다른 마이너 파트의 연주자는 아주 단조로운 화음만을 연주해야 하기도 한다. 그런 저마다의 '단편적'인 시간들이 모여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완성되는 것이다.

연주회는 곡 자체를 만든 작곡가에 대한 이해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 눈 앞에 늘어앉은 수 십 명의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건 자꾸 내 자신만의 회오리속으로 휘말려 들어가던 내 마음을 달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래도 답답하면? 생활이 주는 막막함은 나를 좀먹는 걸 넘어, 관계에 대해 자꾸 서운하고 섭섭함을 느끼게 했다. 더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생각하던 어느 날, 삼 년 전 그날처럼 길을 떠났다. 아침 일찍 무작정 버스를 타고 동해로 떠났다. 가고자 했던 곳도 아니었지만, 무작정 찾아간 바다, 그곳에서 나는 하루종일 그저 앉아 있었다. 바다를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삼년 전 부산에 갔던 나는 갑갑한 마음에 흰여울 마을을 거닐다 타로를 보러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때 타로를 보시던 분이 내게 '내려놓으라'고 했었는데, 되돌이켜 보면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나는 몰랐던 듯하다. 아니, 그 '내려놓는' 데 지난 3년의 시간이 걸렸던 거 같기도 하고. 다시 바다에 앉으니, 그 부산의 바다가 떠오르며 여전히 내가 부등켜 안고 있는 것들이 보였다.

혼자 산다는 건, 공간적으로, 혹은 관계적으로 홀로 지낸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제 내 자신을 책임지는 주체가 내 자신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 말은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어야 하는 사람이 바로 다름 아닌 나라는 뜻이다.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고, 홀로 여행을 떠나며 그렇게 나는 나를 스스로 돌보는 방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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