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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폭' 굴레를 깨고, 건설 노동자의 일상 되찾아줍시다

17일 광화문에서 건설노조·사회단체 함께하는 '고 양회동 열사 범시민추모제' 개최

등록|2023.06.13 16:17 수정|2023.06.13 16:27

▲ 지난 5월 22일 조선일보 건설노조 관련 왜곡보도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강성남 전 위원장 ⓒ 채원희


"어이 학생 이리 와 봐."
"가방 열어봐."

80년대 독재 정권 시절 지하철역 입구에서 경찰이 불심검문하는 풍경입니다. 원칙도 법도 없이 그냥 부르면 가방을 열어야 했고 사회과학 서적이나 학생운동권 유인물이라도 나오면 경찰서로 끌려가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험할 꼴을 당해야 했습니다. 당시 청년의 기억 속에 80년대는 '야만의 시대'이었습니다.

지난 오월 화창한 날에 두 아이의 아빠인 건설 노동자의 부고를 접했습니다. "정당하게 노조 활동을 했는데 '업무방해죄, 공갈'이라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라는 고인의 말이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불법, 협잡, 착취 등 온갖 부조리가 판치는 현장에서 '노가다'가 아니고 '건설 노동자'로 당당하게 일하고 있던 두 아이의 아빠는 하루아침에 '조직폭력배' 취급을 받으며 검찰에 불려갔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동료를 등지고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죽음으로 답했습니다.

무자비한 정치권력과 언론의 오만한 힘 앞에 얼마나 큰 억울함과 절망감으로 숨이 막혔으면 그랬을까요? 양회동 열사의 죽음 앞에 무거운 마음으로 2023년 세상을 봅니다. 믿고 싶지 않지만 또다시 '야만의 시대'입니다.
 

▲ 5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파이넨스센터 앞에서 민주노총 건설노조 ‘양회동 열사 간이 분향소’가 운영되고 있다. ⓒ 이희훈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를 죽음으로 몰아간 비극에는 언론의 책임이 큽니다. 취임 전부터 노동조합에 대해 왜곡된 시각을 보였던 대통령이 건설노조에 '조직폭력배'라는 선정적인 프레임을 씌우자 경제지와 보수언론은 지난 수개월간 건설 노동자가 '왜 노조를 만들었는지' 그리고 '왜 채용 요구가 단체교섭의 핵심 요구안인지' 등 중요한 현장 취재는 외면한 채 오로지 정부와 검·경이 의도를 갖고 만들어낸 노조 혐오 정서를 경쟁적으로 부각하는 데에 혈안이 되었습니다.

결국 불법과 착취가 만연된 건설 노동 현장을 바꾸기 위해 교섭과 투쟁으로 얻어 낸 소중한 결과들이 '공갈, 협박, 강요' 등 척결 대상으로 둔갑했고, 대통령이 직접 지휘한 '건폭 몰이' 광풍 속에서 '건설 노동 현장은 노조 활동을 빙자한 조직폭력배가 활개 치는 곳'이라는 프레임이 언론에 의해 완성됐습니다.

건폭 몰이 부조리극의 마무리는 노동자의 죽음을 음모적으로 다뤘던 신문이 하고 있습니다. '원칙 세우니 건설 현장에 평화 왔다'라는 기사로 건설 현장에서 노동 착취와 불법의 부활을 '건폭 없는 평화'로 황당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위한 평화일까요?

학교에선 노동법을 가르치지 않고 노조 조직률은 12.5%에 불과하며 헌법에 보장된 파업권은 무시당하는 현실에서 시민은 노동조합 얘기를 언론을 통해 접합니다. 그러나 왜 노동자가 높은 곳에 올라가는지, 무슨 요구를 하는지는 언론을 통해 알 수 없습니다. 그저 노동자와 노동인권을 폄훼시키는 과장되거나 왜곡된 부정적 이미지만을 접하게 됩니다.

인간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소유하려는 자본의 시대에 인간다운 삶을 살고, 안정된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유일하게 법으로 보장된 것은 노동조합입니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사회적 역할만큼 존중받고 책임 있게 삶을 지켜갈 수 있는 사회가 존재적 생존 방식이 가능한 사회입니다.

'노가다'에서 건설노동자로 당당하게 살겠다는 건설노조의 의지를 응원하고 싶습니다. 힘들더라도 건설노동자가 언론과 검·경, 정치 권력이 씌운 '건폭' 프레임을 깨고 다시 건설 현장의 진정한 평화를 지키며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삶을 사랑한다면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건설노조의 손을 잡아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는 6월 17일 오후 5시 광화문에서 범시민추모제를 합니다. 우리 함께 모입시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전 언론노조 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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