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대 생활체육지도학과 '몰아치기 집중 수업' 논란
공주대 뒤늦게 "조사팀 꾸려 조사하겠다"
▲ 국립 공주대학교 정문 ⓒ 유환권 동양일보 기자
대학교수는 자신의 전공분야 과목을 강의하고 연구활동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강의를 위해 교과 과정을 계획하고 조정하며 수업 시간표에 따라 진도를 나눠 교안을 준비한다. 교재도 마련하고 과제도 제시한다. 이런 내용을 담아 강의계획서를 작성해 대학에 보고하고 학생들에게 공지한다.
음식에 비유하면 교수는 요리사요, 강의계획서는 메뉴다. 그런데 손님에게 차려낸 요리가 메뉴의 사진이나 견본과 달리 볼품없고 맛 없고 영양도 부실하다면? 세종 충남 지역의 거점대학이라고 자부하는 국립 공주대학교를 들여다보자.
2001년 공주대 교수가 된 K가 관행의 시작이다. K는 지난 2월 성 비위 사건으로 파면됐다. 그가 교수 시절 일으킨 여러 비위 의혹은 그가 파면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기사에서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교수 직함을 붙인다.
K교수는 1학기엔 수상스키, 스쿠버다이빙 등의 하계 수상스포츠 과목을 맡았다. 2학기엔 스키, 스노보드 등의 동계 스포츠 과목을 강의했다. 한 학기에 4개 정도의 과목을 맡았다. 대부분 3학점 과목으로 주당 3시간씩 15주, 모두 45시간을 강의해야 한다. K교수는 강의계획서에 15주 강의 순서까지 제시했다. 대학본부는 그대로 학내외에 공지했다.
▲ K교수가 제시한 강의계획서, 2018년2학기 스키III(스노보드) ⓒ 박수택
강의계획서를 살펴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2018년도 2학기 1학년 전공선택 <스키III(스노보드)>의 경우 15주 강의계획을 제시하고 그 위 '교과목표'에는 '2학기 종강 후 3박4일 또는 4박5일간 집중수업으로 실시할 것이다'라고 적었다. 실제 강의는 했을까?
같은 학기 <스키보드와 건강> 과목을 보자. K교수는 목요일에 7~9교시를 예산캠퍼스 체육105실에서, 금요일엔 7~9교시를 천안캠퍼스 체육101호실에서 각각 출장 강의하겠다고 대학본부에 보고했다. 공주대가 천안, 예산 캠퍼스에 강의실을 배정하고 출장비까지 지급했음은 물론이다. K교수는 출장비와 강의료를 받아 챙기고 실제로는 강의하러 가지 않았다.
▲ 2018년 2학기 생활체육지도학과 출장강의 현황, 주황색 부분이 K교수 부분 ⓒ 박수택
2018년 당시 1학년에 재학한 A 학생도 "2018년 2학기 교양 '스키보드와 건강' 과목을 수강했는데 학기 중에는 수업하지 않았다. 학기 마치고 스키장에서 3박 4일 집중 강의를 했다"고 말했다.
지난 2020년 1월 오마이뉴스 보도로 K교수의 부실 수업 사실이 처음으로 드러났지만 공주대는 유야무야 넘어갔다(관련 기사 : '공주대의 이상한 3박4일' 벼락치기 수업' https://omn.kr/1mdfq). 공주대는 금전 관련 징계시효는 5년이라면서 보도 이후 8개월이 지난 2020년 9월에 초과 강의료 1474만5천원과 여비 216만원만 회수하고 마무리했다.
K교수의 행위와 대학 측의 조치에 대해 법률 전문가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백수회 변호사는 장기간에 걸쳐 교수가 대학 측을 기망해 부당한 재산상의 이익을 챙겼다면 상습사기에 해당해 형사상 가중처벌 대상이라고 밝혔다. 범죄 행위로 인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시효는 10년이다.
백 변호사는 대학의 관리 감독 책임도 크다고 지적했다. 대학의 책임자인 총장을 비롯해 관계자가 K교수의 사기성 행위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거나 방치했다면 사기의 공범이나 대학에 대한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될 수 있다면서 특히 국립대학인만큼 사안을 엄중하게 봐야 한다고 말한다.
5년에 한정한 '부당이득금'을 토해낸 뒤에도 K교수의 '3박4일 집중수업'은 계속됐다. K교수가 지난 연말 성비위 사건으로 형사재판을 받는 사실이 지난 3월에 드러났다.
K교수의 비위와 공주대의 관리 감독 부실 의혹을 취재하는 기자에게 공주대 측은 소위 '집중수업'은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공주대는 '스쿠버다이빙, 스키 강좌 등 특정 계절에 집중 수업이 필요한 교과목의 경우 학사지원과에 사전 승인을 받은 후 운영'하고 있다면서 생활체육지도학과 외에 간호학과, 체육교육과도 집중수업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집중수업'의 운영근거로 <공주대학교 학칙 제53조, 제54조>를 제시했다(아래 도표). 학칙을 보면 '수업일수는 학년마다 30주 이상(학기마다 15주 이상'으로 하고 다만 '수업을 집중하여 실시하는 교과목의 경우 수업일수를 달리할 수 있다(제53조 수업일수)'고 규정하긴 했다. '교과 운영상 필요한 경우 교과목별로 수업을 집중하여 실시할 수 있다(제54조 학사과정의 수업방법)'는 것이다.
그런데 '집중수업' 조항이 2018년 2월 22일에 개정된 학칙 제954호부터 들어간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보다 앞서 2016년 12월 23일에 개정한 학칙 제899호의 53조 (수업일수), 54조(학사과정의 수업방법)와 그 이전 여러 차례 개정한 학칙에는 K교수 식의 소위 '집중수업' 규정이 없다. 2018년 1학기부터 개정 학칙에 따라 학기말 몰아치기 집중수업을 할 수 있다고 쳐도 K교수가 2001년에 공주대에 와서 2017년도까지 줄곧 '집중수업'을 해 온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수업이, 학기말에 몰아쳐서 해요. 통상 집중수업을 매년마다 했다...제가 기억하기로는 매주 수업을 안 한 것으로 알아요. 20년이 지났지만, 수업, 강의계획서가 있는데 며칠날 몇시부터 몇시까지 한다, 그리고 이걸 안 하면 보강수업을 해야 되는데 안 한 걸로 제가 기억을 해요." - 2000년도 입학생 O씨의 증언
▲ 공주대가 제시한 '집중수업' 근거 학칙 규정 ⓒ 박수택
공주대는 다시 집중수업 진행의 근거로 2016년 12월 교육부(대학학사제도과)가 작성한 <창의혁신인재 양성을 위한 대학 학사제도 개선방안> 문건을 찾아서 제시했다. '집중 이수제 도입... 교과의 특성에 따라 블록 수업, 집중수업 등 수업 운영 형태의 다양화' 표현이 들어있기는 하다. 그러나 같은 쪽에 '각 교과목은 학점당 15시간 이상으로 편성하여야 하고 교수는 학점당 15시간 이상 교육과정을 운영하여야 함(교수의 의무) / 학점당 이수시간(15시간 이상)은 엄격히 적용하여 교육의 질을 담보'라고 명시돼 있다. 2018년 이후에도 K교수가 학점당 15시간 규정을 얼마나 지켰는지, 공주대는 학사관리를 제대로 했는지 교육부가 나서서 엄정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
K교수의 집중수업에서 또 다른 문제점은 사적인 '수업료' 징수다. 교양과목으로 수강한 타 학과 학생은 물론 생활체육지도학과 학생들도 실험실습비가 포함된 등록금을 냈으면서도 K교수의 학기말 2~4박 집중수업 때 따로 25~30만원을 내야 했다. K교수의 H조교가 자기 이름의 개인 계좌로 돈을 받았다.
앞서 기자에게 K의 집중수업을 증언한 2000년도 입학생은 2002년에 자신도 힉기말에 참가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로써 K교수의 '집중수업'은 적어도 20년 이상 지속됐으며 한번에 3백 명이 25만원씩 냈다고 치면 7500만 원이다. 20년 동안 1, 2학기에 각각 이런 관행을 지속한 것으로 볼 때 학생들에게 걷은 돈은 대충 잡아도 3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 2017년 2학기 스키 집중수업을 수강한 타 학과 졸업생의 증언 ⓒ 박수택
공주대는 집중수업료 징수가 별 문제가 아닌 듯이 답변했다. '학과에 확인한 결과 실습 운영을 위한 제반 경비로 집행된 것으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비용 가운데 교통비도 들어있다고 하는데 학생들은 학교 버스를 이용했다고 말한다. 공주대가 학과의 '수업' 이동에 학교 버스를 제공하고 비용을 청구했는지, 해당 학과는 학생들에게 받은 집중수업료에서 버스 사용료를 대학 본부에 납부했는지 확인해 볼 대목이다. K교수는 집중수업도 자신이 진행하지 않고 학과 조교와 수 명의 전공 학생들을 강사로 내세웠다고 재학생, 졸업생은 입을 모은다.
▲ 공주대가 보내온 집중수업료 관련 답변 ⓒ 박수택
공주대에 K교수의 행위가 법령과 교칙에 위배되며 학생들의 수업권을 침해하고 개인의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방편으로 악용했는지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 소위 '집중수업'의 전모를 면밀히 조사할 용의가 있는지 물었다. 공주대는 답하지 않았다.
기자가 교육부에 공주대의 집중수업 문제를 질의한 지 1개월 8일째인 이달 2일 교육부는 공주대의 회신을 전해왔다. '집중수업에 따른 실습비는 규정에 따른 등록금에 해당하지 않으며 징수 근거가 없다'고 공주대는 답변했다. K교수가 학과장 자리를 20년 가까이 독점하다시피 하며 집중수업을 구실로 조교 개인계좌로 걷어온 돈이 불법 잡부금에 해당함을 공주대가 뒤늦게나마 인식한 셈이다.
공주대 감사 담당 부서인 총무과 측은 기자의 취재 문의에 신임 임경호 총장에게 사안을 보고하고 조사팀을 꾸린 뒤 다음달에 생활체육지도학과 H조교 등을 통해 조사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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