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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탁가정 엄마들의 호소... "수급비 영수증 내라고? 탁상행정"

정부, 수급비 영수증 제출 요구... 위탁가정 "부정사용 한다고 간주, 국가태도에 실망"

등록|2023.06.19 15:51 수정|2023.06.26 15:14
서로 아이 근황을 묻고 은근슬쩍 아이 자랑을 하며 웃는 세 사람의 모습에서 특이점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오랜 만에 만난 친구들이 한 보따리 수다를 풀어내며 그간의 답답함을 덜고 앞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 평범한 모습이었다.

이현정, 황순미, 황인하.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을 굳이 찾자면 이들은 보호대상아동을 가정에서 보호하고 있는 위탁가정의 엄마들이다. 아이들 돌보게 된 사연은 각각 다르지만 울고 웃는 사이 어느덧 아이들은 새로운 가족이 됐다. 이들은 "내가 낳은 아이는 아니지만 한 번도 내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한 일은 없다"며 약속이나 한 듯 같은 목소리를 전한다.

다음은 지난 5월 31일 서울 중구 어린이재단 회의실에서 만난 위탁가정 부모들의 목소리를 정리한 내용이다.

아이들 도울 방법 찾다 알게 된 '가정위탁'
 

▲ 가정위탁으로 아이돌봄을 하고 있는 황순미(왼쪽), 황인하(가운데), 이현정(오른쪽)씨. 이들은 더이상 가정위탁을 개인희생에 기대지 말고 국가가 나서서 관련 제도를 만들고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 박은미


이현정씨가 가정위탁에 관심을 가진 건 지난 2013년이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알게 된 아이가 위기가정에 놓이게 됐고 뭔가 도울 방법이 없을까 찾다 가정위탁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게 만난 아이는 2년 정도 돌보다 원가정으로 복귀했고 가정위탁으로 두 번째 아이를 만나게 됐다. 이후 첫째 아이의 가정환경이 다시 어려워지자 이현정씨는 주저 없이 다시 아이를 받아들였다.

가정위탁제도는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보호 양육을 희망하는 가정에 위탁해 가정적인 분위기에서 건전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다. 아이와 친부모와의 재결합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입양과는 다른 제도다.

황인하씨는 경기도의 한 보육원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돌보던 아이와 가정위탁으로 인연을 맺게 됐다. 유난히 온순해서 더 마음이 쓰였던 아이, 크리스마스 전날, 퇴근준비를 하면서 아이가 첫 크리스마스를 쓸쓸히 보내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고 그 마음이 결국 가정위탁으로 이어졌다.

당시 아이의 생모는 1~2년 후에는 반드시 데리러 올 테니 입양은 보내지 말아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남겼다. 여유가 있는 형편은 아니었지만 황인하씨는 그 때까지라도 아이를 돌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당시 백일도 되지 않았던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 2학년으로 훌쩍 성장했다.

입양에 대한 관심이 있었지만 실행까지는 엄두를 내지 못하던 황순미씨도 우연히 가정위탁 제도를 알게 됐다. 입양하지 않고도 아이를 돌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고 바로 실행에 나섰다. 필요한 교육을 받고 가정위탁을 시작했다. 그게 지난 2014년의 일이다. 그 때 만난 여섯 살 아이는 지금 중학교 2학년이 됐고 두 번째 위탁아이는 다섯 살에 인연을 맺어 지금은 초등 2학년이 됐다.

숨어있던 아이들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 
 

▲ 미끄럼틀 (이미지 : 픽사베이) ⓒ 은평시민신문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아이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만으로 시작한 가정위탁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마음의 상처와 결핍을 안고 있는 아이들을 안정시키고 성장시키는 일이 쉽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활달하고 붙임성도 있고 인사성도 밝은 아이 훈이(가명)는 보육원에서도 조금만 신경 쓰면 정말 멋지게 성장할 것이라는 말을 전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황순미씨 집에서 함께 생활을 시작한 훈이는 막상 지켜야 할 예의범절이나 해야 할 인사는 오히려 하지 않는 상반된 모습을 보여줬다. 그간 아이의 행동은 관심 받고 주위 시선을 끌기 위한 인사였기 때문이다. 밝은 모습 이면에는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아이의 상처가 숨겨져 있었다.

또래라면 아무렇지 않게 탈 수 있는 미끄럼틀도 훈이에게는 두려운 대상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안 타봤기 때문이다. 황순미씨 부부는 아이 손을 잡고 괜찮다고 안심시키며 함께 미끄럼을 타기 수없이 반복하면서 함께 두려움을 극복해 나갔다. 신나게 물놀이 할 걸 기대하고 떠난 바다에서도 아이는 선뜻 물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래밭에서만 놀다 오기도 했다.

"아이들은 항상 우리들을 테스트하죠"

이현정씨가 전하는 또 다른 이야기다. 부모가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서로의 부딪힘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 때마다 아이들은 "이래도 나를 사랑하고 나를 예뻐해 줄 것인가?" 계속 어른들에게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이현정씨는 "아마도 버려졌다는 두려움 때문에 이런 식으로 확인하는 것 같다"고 전한다. 아이들이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밖에서는 알 수 없는 '전쟁 아닌 전쟁'을 매일 치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럴 때마다 온 가족이 달라붙어 또 다시 아이를 훈육하고 달래고 감싸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포기하지 않고 이끌어줘서 고맙다" 인사 건네는 아이들
 

▲ 위탁가정 아이가 그린 그림 ⓒ 은평시민신문


"아이들 키운 얘기, 책으로 써도 몇 권은 나올 거예요."

이현정, 황순미, 황인하.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같은 말을 했다. 가정위탁으로 만났지만 같이 먹고 자고 함께 생활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어느 새 또 다른 가족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증상을 보이기도 하고 지능발달이 더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 때마다 이들은 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다시 일으켜 세우기를 무수히 반복했다.

"이번 어버이날에 아이가 편지를 썼더라고요. 엄마가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이끌어줘서, 공부를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게 됐다고요. 그래서 이제 하고 싶은 게 생겼대요."

이야기를 전하는 황순미씨의 표정이 환해진다. 예쁜 편지지도 아닌 공책 한 귀퉁이에 적은 짧은 글귀를 받아 들고 "오히려 아이가 잘 버텨주고 따라와 준 덕"이라며 그 성장의 공을 아이에게 돌렸다. 하지만 '책으로 써도 몇 권은 나올 이야기'에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함께 버틴 '어른들의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을 것이란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위탁가정을 바라보는 왜곡된 말과 상처

그야말로 아이들과 '지지고 볶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이겨내고 있었지만 위탁부모들이 겪는 어려움은 따로 있었다. 바로 위탁가정을 바라보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행정 지원체계의 부재다.

"근데 그거 언제까지 하는 거야, 얼마 받아, 언제 내 보낼 거야 등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아요. 그 때마다 너는 니 새끼 내보내니? 지내다 보면 내 새끼랑 똑같다고 답변했는데 그들이 건네는 질문 자체가 웃기니까 이제는 잘 안 만나게 되더라고요."

황순미씨는 언제부터인가 가정위탁을 이해 못하는 이들하고는 멀어지게 됐다고 했다.

"애쓴다, 고생한다 이런 말 들으려고 시작한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가정위탁 제도를 운영하면 누가 하려고 나서겠어요?"

이현정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아이들 앞으로 지급되는 수급비가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확인하겠다며 관련 영수증 제출을 요구했다.

"이렇게 영수증 하나하나를 정리해서 제출하는 방식 말고도 아이들 앞으로 나오는 수급비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확인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 않나요?" 

그동안은 아동 전담기관에서 방문해 가정위탁 전반사항을 살폈는데 갑자기 분기별 영수증을 제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는 지난 2022년 보건복지부가 '수급자 급여관리(사용)실태 점검' 방침을 바꾼데 따른 것이다. 2021년까지는 위탁가정의 위탁부모로 급여 유용 등의 우려가 없다고 시장·군수·구청장이 판단한 경우에는 급여관리 점검 제외 대상이었다.

"처음 가정위탁을 시작했을 때 아이 앞으로 나온 수급비가 50만 원 정도였어요. 수급비 내역을 따로 정리하고 영수증을 첨부하라고 해서 난색을 표했더니 어떻게 썼는지 내역이라도 정리하라고 해서  대충 정리했더니 아이한테 들어가는 돈이 70만 원 이상은 되더라고요. 몇 달 그렇게 정리하니 이제 그만하라고 하더라고요."

10여 년 전, 황순미씨의 경험이다. 대부분의 위탁 가정은 아이 돌봄에 따른 추가 지출을 부담하고 있다. 아이가 주눅 들지 않도록, 최대한 많은 사랑을 주려 애쓰기 때문이다. 영수증 제출 요구가 얼마나  위탁가정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편적인 사례다.

"아무리 탁상행정이래도 이럴 수가 있나 싶어요. 아이들이 잘 지내고 있나 궁금하면 언제든지 와서 보세요. 학교도 한 번 가보고 선생님도 만나서 급식은 잘 먹는지 물어보고요. 아이 한 명 돌보는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드는지 모르나요?"

"영수증?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나 싶어요. 제가 보육원에서 일할 때는 월급 받고 아이 돌보는 게 제 역할이고 당연했지만 아이를 잘 돌보겠다고 하던 일도 그만두고 가정위탁을 시작했는데 무슨 직원한테 업무지시 내리나요? 가정위탁 엄마들이 직원은 아니잖아요?"

이현정, 황순미, 황인하씨는 가정위탁 제도 운영의 모순을 같은 목소리로 지적하고 나섰다. 남들에게 칭찬받기 위해 시작한 가정위탁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아이들 앞으로 나오는 수급비를 부정사용할 것이라고 간주하는 국가태도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그 종이쪼가리 숫자만 맞으면 되는 건가요?
 

▲ ⓒ 은평시민신문


"문제는 영수증이 아니에요. 가정위탁 제도의 허술함이 문제에요. 저는 뭐가 뭔지도 잘 모르고 가정위탁을 시작했지만 관련 제도가 정비되지 않으면 가정위탁 활성화는 힘들어요. 주위에서도 나도 어떻게 하면 가정위탁을 할 수 있느냐 물어보는 사회를 만들어야 해요."

황인하씨는 우리 사회가 가정위탁을 바라보는 인식도 부족하고 가정위탁 부모에 대한 예우도 부족한 건 문제라고 지적한다. 현재는 아이 앞으로 나오는 수급비 이외에 위탁가정에 대한 지원정책은 거의 전무한 상태다.

"위탁부모 선배들은 수급비가 나오는지도 잘 모르고 그저 아이들을 품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죠. 그래서 아이들 수급비가 나온다고 하니 고맙다는 생각만 가진 거예요. 위탁가정은 이런 일을 하고 이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또 이런 게 필요합니다, 이런 얘기를 못한 거죠. 하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해요."

"위탁 가정에 지지와 용기를 주지는 못할망정 그 종이쪼가리가 뭐라고. 그 숫자만 맞으면 우리가 아이들을 잘 키우는 건가요?"

위탁부모들은 "영수증 모으기가 귀찮다"는 게 아니라 우리사회가 위탁가정을 대하는 태도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금과 같은 위탁제도는 위탁부모의 희생을 강조하고 소진시킬 뿐 공공 육아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무리할 즈음, 위탁부모들은 정치인들에게 꼭 이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나라 경제수준 높아졌잖아요. 이제는 아이들이 더 이상 보육원에서 안 자라도 되잖아요. 그러니까 가정위탁 제도를 활성화시켜서 아이들이 가정에서 안정감 갖고 성장하고 그 역할을 하는 부모들에게도 적절한 예우를 하면 좋겠어요. 저희는 아이들을 잘 성장시켜서 다시 사회에 보답하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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