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똑같은 '소사역'도 한없이 특별하게 만드는 힘
[신간 리뷰] 한동혁 만화책 <새는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
"이야기가 담긴 공간을 방문했을 때 제 만화를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지리학자 이-푸 투안은 책 <공간과 장소>(사이)에서 "공간을 '움직임movement'이 허용되는 곳으로 생각한다면, 장소는 '정지pause'가 일어나는 곳"이라고 적은 바 있다. 하키 선수가 아이스링크 장에서 차가운 경기장을 질주할 때 느끼는 자유로운 공간 경험과 쉬기 위해 안락한 집으로 들어가 몸을 기댈 수 있는 정지된 장소가 이런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문장이 항상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은 지속되기 어려우며, 이사나 재개발과 같은 변수로 인해 혼자만 정지해 있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푸 투안도 이런 말을 덧붙이면서 공간과 장소는 세부적이고 다양한 개인의 경험에 의해 변주된다고 적는다.
다시 말해, 공간과 장소는 동일한 형태일지라도 기억하고 싶은 혹은 기억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한 사람의 사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상상이지만 이러한 맥락에서 사람도 어떤 의미에서는 공간과 장소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장소처럼 서로를 의지하며 기대다가 헤어질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떠나니 그렇다.
공간과 장소가 어우러진 9개의 단편 만화
우연히 서점에 방문해 뜻하지 않게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매력적인 책을 만나게 되었다. 웹툰의 형식으로 제작된 굵은 선을 인쇄물로 묶은 만화가 한동혁의 <새는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2022)가 그것이다.
총 아홉 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텍스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공간과 장소가 애틋한 사연과 함께 어우러져 닿을 수 없는 사랑과 불안한 미래를 씁쓸하면서도 잔잔하게 담아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실존적인 감각이 텍스트에 과하지 않게 반영된 것이 매력적이었다.
일반적인 텍스트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 순으로 서사를 흘려보내지만 한동혁의 텍스트는 여러 시간과 캐릭터를 다르게 배치함으로써 이야기가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막고 순환의 형태로 정지해 놓는다. 여러 인물과 시간을 뒤섞어 독자로 하여금 작가가 제시한 장소와 공간에 머물게 만든다.
이러한 감각은 동일한 장소를 경유한 단편이 모인 특수성 때문일 수도 있다. 각각의 단편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동일한 인물일 수도 있다는 착각으로 인해 작가의 삶을 셈해볼 수도 있다. 그러니 텍스트를 끝까지 다 읽어도 무엇인가 찝찝한 느낌이 남아 다시 첫 장을 펼치게 된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이러한 '의도'가 기술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물어볼 수 있고 시간의 변칙을 모든 작품들에 반영하면 가치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작가의 '의도'가 실존적인 소재와 함께 어우러져 독특한 색을 자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매력 때문인지 만화가 한동혁이 그려낸 공간과 장소에 애정이 간다.
이 텍스트는 이런 의도 속에서 제작되었기 때문에 단편 하나만을 놓고 본다면 특별한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 없지만, 작은 단편들이 모이면 점묘법의 형태로 그려낸 커다란 회화처럼 묵직한 힘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직선의 시간 형태가 아닌 순환의 형태로 제작된 이 텍스트의 매력은 아무래도 이런 시공간의 의도적인 배치에서 기인한다.
이 텍스트는 전라북도 군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후, 고향 군산을 꼭짓점으로 여러 지역을 오고 간 10년 정도의 여정을 담고 있다. 독자들은 10년이라고 시간을 떠올리면서 긴 시간의 기록이 이 텍스트에 모두 담겨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는 않다. 작가가 선택한 가장 강력했던 경험을 중점적으로 배치했다고 봐야 한다.
20대의 젊은 청년이 등장하는 이 텍스트에서 '사랑'과 '불안'한 미래가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이런 맥락 위에 놓여 있다. 사랑과 미래만큼 애틋한 것은 없으니 자연스럽게 이 소재와 어울리는 장소와 공간이 반복된다.
개별적 이야기의 보편적 의미에 대해
고향이 누군가에게는 애틋한 장소로 기억되겠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텍스트의 주인공에게는 포근하고 따뜻한 곳으로만 기억되진 않는다. 고향에서 치러진 사촌 여동생의 결혼식에선 "서로가 너무나 얽히고설킨 징그러울 만큼 작은 나의 동네"를 외면하고 싶기도 하고, 고향 군산은 서울로 대학을 진학하게 되었을 때 호기심 있게 서로를 지켜봤던 은진과의 만남을 방해하는 오묘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 단편에서 두 인물은 사랑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군산이라는 공간은 서울로 진학한 한 청년과 이곳에 남아 있어야 하는 한 소녀를 멀어지게 했던 얄미운 장소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지역 '군산'이 부정적인 공간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시간이 한참 흘러 재수가 아닌 반수를 준비하기 위해 잠시 머물러야 했던 고향 군산은 작가에게 쉴 수 있는 배려 깊은 장소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각각의 단편이 품고 있는 고유한 사연으로 인해 우리는 군산의 여러 공간들과 만나게 된다. 연상인 지희와 사랑을 확인하기 위한 공간인 '금강 나포리 철새관찰소', 지친 몸을 쉬기 위해 찾아간 '군산카페 CAFE196'과 '은파호수공원', 수능을 보기 위해 방문한 '군산제일고등학교', 친구의 부친 부고로 부주를 얼마 낼지 고민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담은 '은파장례식장', 새로운 만남을 시도하기 위해 모텔이 많은 '군산터미널'로 친구를 불러낸 것도 호명된 지역 군산의 모습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굵직한 공간과 장소보다도 군산의 수송동과 지곡동은 물론, '마녀 생맥주'와 '불타는 구공탄'과 같은 실제 군산에서 운영되고 있는 작은 술집들도 호명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뤄 짐작했을 때, 만화가 한동혁의 세밀한 경험이 작품 제작에 깊이 스며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기술적인 '의도'와 자기 고백적인 성격으로 인해 꾸며진 이야기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무게감 있고 진중한 텍스트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지어낸 이야기와 자기 고백이 첨가된 이야기 중 어느 이야기가 매력적이냐는 질문에 우리는 박진감 넘치는 SF판타지가 아니라면 작가의 고백이 첨가된 텍스트가 더 매력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이야기는 교환불가능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희귀하니 소장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텍스트는 '군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인간이 한 동네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을 수도 있지만, 취업이나 결혼 혹은 자아실현을 위해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공간을 벗어나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이 텍스트의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군산을 꼭짓점으로 등장인물은 여러 지역을 배회한다. 가령, 본교와 본교 지역 캠퍼스에 의무적으로 다녀야 하는 학교 학칙에 따라 '서울'과 '인천'으로 오고 가며 그곳의 표정을 적기도 하고, 친구들과 만나기 위해 '시흥능곡역'이나 '양수리 신도시', '소사역', '서해선' 등을 배회한 흔적을 적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로 짐작했을 때, 한동혁의 <새는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한 지방 청년이 고향을 떠나 정착하게 되는 과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개별적인 이야기는 지역에서 터를 꾸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의미를 제공한다. 무엇보다도 이야기가 작가의 의도에 따라 순환의 형태로 지속된다는 점은 독자들이 거주하는 장소에 대해 강박적으로 질문하게 만든다.
한동혁의 작가노트인 '공간의 기억'에서 단편 '의도적 구토'에 대한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알몸의 남자와 여자가" 나오는 이야기와 "양평에서 빵을 사먹는 두 남자"의 이야기, "소사역 인근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서로 다른 세 인물의 이야기를 한 계절 속에 묶어 놓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의도 속에서 서로 다른 인물은 동일한 인물로 변주된다는 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의 단편에 서로 다른 인물이 같은 존재로 읽힐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화가 한동혁이 특정한 '인물'을 사랑한다기보다는 공간과 장소를 보다 애틋하게 그리고자 애썼던 것은 아니었는지 추측해 본다.
이런 이유가 아니라면 서로 다른 인물들이 '나'의 재현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하나의 단편으로 묶은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특정한 공간에서 작가는 어떤 감정을 옹호했을까. 이 감정이야말로 진정한 공간을 창출하는 힘이지 않을까.
인용문은 유일하게 텍스트에서 작가노트 형식으로 기록된 부분인데 같이 함께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작가는 코로나19 유행 1년 전 소사역을 떠올린다. 일요일이었고, 주말 동안 하루 종일 친구들과 놀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에 무게를 실었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순간들 보다도 지칠 때까지 놀고 난 후, 집으로 돌아갈 때 느꼈던 "피곤하면서도 어딘가 공허하고 씁쓸한, 그러면서도 나쁘지 않은 그 기분"이 더 마음에 든다고 고백한다. 이런 마음으로 인해 '소사역'은 그에게만큼은 특별한 '소사역'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한동혁은 이런 개별적인 느낌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목적을 잃은 쓸쓸한 시간이 의미 있다고 말함으로써 우리들에게 당신이 살고 있는 '공간'과 '장소'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묻는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한동혁의 만화 <새는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를 추천하고 싶은 것이다. 공간과 장소를 실존적인 맥락에서 접근한 텍스트가 우리 만화사에서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낯설고 신선해 독자들과 꼭 함께 읽고 싶다.
지리학자 이-푸 투안은 책 <공간과 장소>(사이)에서 "공간을 '움직임movement'이 허용되는 곳으로 생각한다면, 장소는 '정지pause'가 일어나는 곳"이라고 적은 바 있다. 하키 선수가 아이스링크 장에서 차가운 경기장을 질주할 때 느끼는 자유로운 공간 경험과 쉬기 위해 안락한 집으로 들어가 몸을 기댈 수 있는 정지된 장소가 이런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공간과 장소는 동일한 형태일지라도 기억하고 싶은 혹은 기억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한 사람의 사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상상이지만 이러한 맥락에서 사람도 어떤 의미에서는 공간과 장소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장소처럼 서로를 의지하며 기대다가 헤어질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떠나니 그렇다.
공간과 장소가 어우러진 9개의 단편 만화
▲ <새는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 표지 ⓒ 한동혁
우연히 서점에 방문해 뜻하지 않게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매력적인 책을 만나게 되었다. 웹툰의 형식으로 제작된 굵은 선을 인쇄물로 묶은 만화가 한동혁의 <새는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2022)가 그것이다.
총 아홉 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텍스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공간과 장소가 애틋한 사연과 함께 어우러져 닿을 수 없는 사랑과 불안한 미래를 씁쓸하면서도 잔잔하게 담아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실존적인 감각이 텍스트에 과하지 않게 반영된 것이 매력적이었다.
일반적인 텍스트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 순으로 서사를 흘려보내지만 한동혁의 텍스트는 여러 시간과 캐릭터를 다르게 배치함으로써 이야기가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막고 순환의 형태로 정지해 놓는다. 여러 인물과 시간을 뒤섞어 독자로 하여금 작가가 제시한 장소와 공간에 머물게 만든다.
이러한 감각은 동일한 장소를 경유한 단편이 모인 특수성 때문일 수도 있다. 각각의 단편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동일한 인물일 수도 있다는 착각으로 인해 작가의 삶을 셈해볼 수도 있다. 그러니 텍스트를 끝까지 다 읽어도 무엇인가 찝찝한 느낌이 남아 다시 첫 장을 펼치게 된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이러한 '의도'가 기술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물어볼 수 있고 시간의 변칙을 모든 작품들에 반영하면 가치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작가의 '의도'가 실존적인 소재와 함께 어우러져 독특한 색을 자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매력 때문인지 만화가 한동혁이 그려낸 공간과 장소에 애정이 간다.
▲ <새는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 ⓒ 한동혁
▲ <새는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 ⓒ 문종필
이 텍스트는 이런 의도 속에서 제작되었기 때문에 단편 하나만을 놓고 본다면 특별한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 없지만, 작은 단편들이 모이면 점묘법의 형태로 그려낸 커다란 회화처럼 묵직한 힘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직선의 시간 형태가 아닌 순환의 형태로 제작된 이 텍스트의 매력은 아무래도 이런 시공간의 의도적인 배치에서 기인한다.
이 텍스트는 전라북도 군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후, 고향 군산을 꼭짓점으로 여러 지역을 오고 간 10년 정도의 여정을 담고 있다. 독자들은 10년이라고 시간을 떠올리면서 긴 시간의 기록이 이 텍스트에 모두 담겨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는 않다. 작가가 선택한 가장 강력했던 경험을 중점적으로 배치했다고 봐야 한다.
20대의 젊은 청년이 등장하는 이 텍스트에서 '사랑'과 '불안'한 미래가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이런 맥락 위에 놓여 있다. 사랑과 미래만큼 애틋한 것은 없으니 자연스럽게 이 소재와 어울리는 장소와 공간이 반복된다.
개별적 이야기의 보편적 의미에 대해
고향이 누군가에게는 애틋한 장소로 기억되겠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텍스트의 주인공에게는 포근하고 따뜻한 곳으로만 기억되진 않는다. 고향에서 치러진 사촌 여동생의 결혼식에선 "서로가 너무나 얽히고설킨 징그러울 만큼 작은 나의 동네"를 외면하고 싶기도 하고, 고향 군산은 서울로 대학을 진학하게 되었을 때 호기심 있게 서로를 지켜봤던 은진과의 만남을 방해하는 오묘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 단편에서 두 인물은 사랑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군산이라는 공간은 서울로 진학한 한 청년과 이곳에 남아 있어야 하는 한 소녀를 멀어지게 했던 얄미운 장소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지역 '군산'이 부정적인 공간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시간이 한참 흘러 재수가 아닌 반수를 준비하기 위해 잠시 머물러야 했던 고향 군산은 작가에게 쉴 수 있는 배려 깊은 장소가 되기도 한다.
▲ <새는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 ⓒ 한동혁
이처럼 각각의 단편이 품고 있는 고유한 사연으로 인해 우리는 군산의 여러 공간들과 만나게 된다. 연상인 지희와 사랑을 확인하기 위한 공간인 '금강 나포리 철새관찰소', 지친 몸을 쉬기 위해 찾아간 '군산카페 CAFE196'과 '은파호수공원', 수능을 보기 위해 방문한 '군산제일고등학교', 친구의 부친 부고로 부주를 얼마 낼지 고민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담은 '은파장례식장', 새로운 만남을 시도하기 위해 모텔이 많은 '군산터미널'로 친구를 불러낸 것도 호명된 지역 군산의 모습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굵직한 공간과 장소보다도 군산의 수송동과 지곡동은 물론, '마녀 생맥주'와 '불타는 구공탄'과 같은 실제 군산에서 운영되고 있는 작은 술집들도 호명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뤄 짐작했을 때, 만화가 한동혁의 세밀한 경험이 작품 제작에 깊이 스며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기술적인 '의도'와 자기 고백적인 성격으로 인해 꾸며진 이야기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무게감 있고 진중한 텍스트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지어낸 이야기와 자기 고백이 첨가된 이야기 중 어느 이야기가 매력적이냐는 질문에 우리는 박진감 넘치는 SF판타지가 아니라면 작가의 고백이 첨가된 텍스트가 더 매력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이야기는 교환불가능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희귀하니 소장할 수밖에 없다.
▲ <새는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 ⓒ 한동혁
하지만 이 텍스트는 '군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인간이 한 동네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을 수도 있지만, 취업이나 결혼 혹은 자아실현을 위해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공간을 벗어나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이 텍스트의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군산을 꼭짓점으로 등장인물은 여러 지역을 배회한다. 가령, 본교와 본교 지역 캠퍼스에 의무적으로 다녀야 하는 학교 학칙에 따라 '서울'과 '인천'으로 오고 가며 그곳의 표정을 적기도 하고, 친구들과 만나기 위해 '시흥능곡역'이나 '양수리 신도시', '소사역', '서해선' 등을 배회한 흔적을 적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로 짐작했을 때, 한동혁의 <새는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한 지방 청년이 고향을 떠나 정착하게 되는 과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개별적인 이야기는 지역에서 터를 꾸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의미를 제공한다. 무엇보다도 이야기가 작가의 의도에 따라 순환의 형태로 지속된다는 점은 독자들이 거주하는 장소에 대해 강박적으로 질문하게 만든다.
▲ <새는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 ⓒ 문종필
한동혁의 작가노트인 '공간의 기억'에서 단편 '의도적 구토'에 대한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알몸의 남자와 여자가" 나오는 이야기와 "양평에서 빵을 사먹는 두 남자"의 이야기, "소사역 인근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서로 다른 세 인물의 이야기를 한 계절 속에 묶어 놓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의도 속에서 서로 다른 인물은 동일한 인물로 변주된다는 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의 단편에 서로 다른 인물이 같은 존재로 읽힐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화가 한동혁이 특정한 '인물'을 사랑한다기보다는 공간과 장소를 보다 애틋하게 그리고자 애썼던 것은 아니었는지 추측해 본다.
이런 이유가 아니라면 서로 다른 인물들이 '나'의 재현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하나의 단편으로 묶은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특정한 공간에서 작가는 어떤 감정을 옹호했을까. 이 감정이야말로 진정한 공간을 창출하는 힘이지 않을까.
"여기는 제 기억 속의 공간입니다. 일단 앉죠. 여기는 작년 이맘때 오후 소사역이에요. 뭐 크게 특별한 장소는 아닌데요. 그냥 제가 일 년 전을 떠올리는 것을 좋아해서요. 대유행 초기였죠. 이날은 일요일이었어요. 어떤 친구네 집에서 주말 동안 놀다가 집 가는 길이었는데. 문득 이 순간은 내게 추억으로 남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좋은 기억이라는 것이 좀 뻔하죠. 술 먹은 기억. 섹스한 기억. 아니면 술 먹고 섹스한 기억. 그런데 저는 실컷 놀다가 집에 들어갈 때의 기억을 유독 좋아해요. 피곤하면서도 어딘가 공허하고 씁쓸한, 그러면서 나쁘지 않은 그 기분들. 저는 그런 기분에 사로잡혀서 여기에 남은 거겠죠. 남아 있는 나와 남지 않은 내가 정말 다른 존재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요. 지하철이 오네요. 서해선으로 환승하려고 많이들 내릴 거예요. 아마 주말 오후의 환승객들은 대부분 나와 같은 심정이겠죠. 모두 방향은 있지만 목적을 잊은 채로, 그리고 저도 마찬가지로요."
인용문은 유일하게 텍스트에서 작가노트 형식으로 기록된 부분인데 같이 함께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작가는 코로나19 유행 1년 전 소사역을 떠올린다. 일요일이었고, 주말 동안 하루 종일 친구들과 놀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에 무게를 실었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순간들 보다도 지칠 때까지 놀고 난 후, 집으로 돌아갈 때 느꼈던 "피곤하면서도 어딘가 공허하고 씁쓸한, 그러면서도 나쁘지 않은 그 기분"이 더 마음에 든다고 고백한다. 이런 마음으로 인해 '소사역'은 그에게만큼은 특별한 '소사역'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한동혁은 이런 개별적인 느낌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목적을 잃은 쓸쓸한 시간이 의미 있다고 말함으로써 우리들에게 당신이 살고 있는 '공간'과 '장소'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묻는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한동혁의 만화 <새는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를 추천하고 싶은 것이다. 공간과 장소를 실존적인 맥락에서 접근한 텍스트가 우리 만화사에서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낯설고 신선해 독자들과 꼭 함께 읽고 싶다.
▲ <새는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 ⓒ 한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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