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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신과 수치심 좀 아는 당신, 여기 줄 서세요

이반지하의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를 읽고

등록|2023.06.25 20:24 수정|2023.06.25 20:24
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 [편집자말]
이반지하의 새 책이 나왔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주문했다. 책의 이름은 무려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이다. 책에도 얼굴이 있고, 표정이 있다면 이 책은 한껏 고개를 치켜들고 머리카락을 뒤로 휙 넘기는 그런 모습을 하고 있을 것만 같다. 아마 어깨도 한껏 올라갔겠지.

난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 표지를 넘겼다. 이 기대는 근거 있는 기대다. 이반지하의 첫 책인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를 아주 재미있게 읽은 까닭이다. 난 첫 에피소드부터 무너진다. 와하하 웃음이 난다.
 

책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 표지. 책을 다 읽은 후 책장 위에 놓고 찍은 사진. ⓒ 이야기장수


복싱을 배우러 간 이반지하. 때리는 맛에 취하기 시작한다. 유튜브를 찾아보고 맛깔나게 때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그러다 다다른 결론은 자신은 복서가 될 수 없다는 것. 이유는 조금도 맞고 싶지 않고 오로지 패고만 싶은 까닭이다. 모두를 쥐어패고만 싶다.

공감의 웃음이 났다. 세상에서 흠씬 두들겨 맞은 것 같을 때, 아흑 하고 울거나 픽 하고 쓰러지는 게 아니라 휙휙, 손을 휘두를 수 있다면. 얼굴이 빨개지거나 머뭇거리거나 먼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날카로운 논리로, 엄청난 상황 판단으로 상대방을 KO 시킬 수 있다면. 이반지하는 자신만의 쨉쨉 유토피아를 꿈꾼다고 했다. 나도 나만의 쨉쨉 유토피아를 꿈꾼다. '저도요!' 하고 이반지하 뒤에 줄을 선다.

이반지하는 퀴어 아티스트이자 유머리스트이다. 이반지하라는 작가명은 퀴어의 한국말 '이반'과 작가의 생활공간이자 작업공간을 상징하는 '반지하'를 결합한 이름이다. 그의 글을 읽으며 그가 겪은 일을, 그의 생활을 짐작한다.

사실 어찌 다 짐작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가 자신을 '비정상'이라고 지칭하며 자신은 '정상 서포터'라고 하는 부분에서는 픽. 웃음이 새어나왔다. 현실을 고도의 유머로 승화시키는 그는 진정한 유머리스트다.

예술가지만 편의점 알바를 정기적으로 하던 이반지하는 명절마다 아주 핫한 인력이 된다.
 
"만약 우리 모두가 정상이었다면, 모두의 가족이 때맞춰 정상적으로 지탱되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365일 24시간 편의점이 닫히지 않게 유지하면서, 각 정상 가정의 존폐를 주관하는, 되게 보이지 않는 곳이 바로 여기 비정상이셨다 이 말이다.

정상 가정들은 비정상 가장의 서포트 없이는 가족 행사 하나 말끔히 치러낼 줄 모르는 족속들이었다. 올해도 추석이 다가오자 정상들은 비정상의 스케줄부터 먼저 체크하려 들었다. 나는 약간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해본다. 왜 이렇게 일과 가정을 양립 못 하고 이러실까." (35쪽) 

정상이 무엇이고 비정상이 무엇일까. 그 기준은 누가 만드는 것일까. 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한동네에 쭉 살았다. 주변에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내 가치관이 표준이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중국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 와장창 깨졌다. 여러 나라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는데, 각자 자기 나라의 상황을 말해야 할 때가 많았다.

"한국은 어때?"라고 물어보면 난 내 생각을 "한국은 이래"라고 말했고 나의 말은 종종 다른 한국 학생들의 반발을 샀다. "뭐? 한국이 그렇다고? 아닌데?"라면서. 내 세계가 흔들리는 경험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귀하다.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성소수자를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성소수자는 만져지는 존재가 아닌 추상적인 개념으로 존재한다. 혐오로는 아무것도 나아가게 할 수 없다. 성소수자와의 접점이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접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차별과 억압 앞에서 주저앉지 않고 그 모든 걸 유머로 승화시켜 세상을 뚫고 나온 이반지하. 현대미술가이자 작가(퍼포머, 애니메이션 감독이기도 하다)인 이반지하는 예술가로 사는 이상 인생은 개망신과 수치심의 연속일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일을 멈출 수 없다고 한다. 그리거나 쓰지 않는 순간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만 같다고.

개망신과 수치심이라면 나도 좀 아는 터. 몸치가 운동을 한다고 덤비고, 글을 써보겠다며 습작만 6년째 하고있는 내 삶에서 개망신과 수치심은 항상 세트로 따라온다. 나는 또 이반지하 뒤에 슬며시 줄을 선다. 그리고 그처럼 계속하자고 수치심에 굴복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이반지하는 이 일을 멈출 수 없다고 했으니 다음 책도 나올 것이다. 나도 그때까지는 계속 하자고 다짐한다. 개망신과 수치심에 몸을 부르르 떠는 이, 내 뒤에 줄을 서라. 무슨 줄인지 모르겠어서 망설여진다면, 이 책부터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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