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일대 경찰들이 보면 깜짝 놀랄 이야기
경찰도 노동자라고 인식하는 아이들... '우리 모두는 시민'이라는 깨달음을 얻던 날
그룹 '육아삼쩜영'은 웹3.0에서 착안한 것으로, 아이들을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가치로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울, 부산, 제주,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다섯 명이 함께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나는 광화문에서 아이를 키운다. 유아차를 끌던 시절부터 첫째 아이가 중학생이 된 지금까지 산책길에서 가장 많이 마주치는 건 경찰이다.
▲ 2023년 6월 17일 18시 40분 양회동 열사 추모제추모제는 평화롭게 진행되었고 오가는 사람들은 현장을 관심있게 지켜보았다. 주변에서 대기하던 대부분의 경찰이 세종대로 사거리 방면으로 이동한 후의 모습이다. 소수의 경찰이 있었음에도 질서는 지켜졌다. ⓒ 임은희
똑같은 옷을 입은 경찰 집단이 오와 열을 맞춰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첫째 아이가 "볼링핀 같다"고 했다. 볼링 게임도 할 수 있겠다며. 둘째 아이는 형광펜으로 도시에 선을 그어 놓은 것 같다며 웃었다.
'더위는 여름의 산물이 아니라 도시와 밀집에 고유한 인위의 산물'이라 쓴 신영복 선생의 옥중서간을 몸소 체험하고 싶다면 집회 유무에 관계없이 늘 정차 중인 경찰버스 옆을 지나면 된다. 시동이 걸려 있는 경찰버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지열까지 더해진 후끈한 바람이 행인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니까.
광화문을 위해 일하러 나온 경찰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그들을 위한 안정적인 공간은 이곳에 없다. 노조는 위험한 차도에서 집회를 해야 하고 기동경찰은 밤낮으로 이어지는 근무 일정을 소화하며 부표처럼 자동차 노숙 생활을 한다. 서울경찰청 책임자 중 누가 이런 결정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기 좋은 풍경은 아니다.
"오늘의 경찰은 이십 명, 하얀색 다섯 명, 검은색 다섯 명, 경찰색은 두 명, 얼굴 토시는 세 명."
경찰을 구경하는 것이 일상인 아이들이 언젠가부터 경찰을 분류하며 놀기 시작했다. 둘째는 '토시 놀이'를 좋아한다. 아이는 같은 위치에 근무하는 경찰이 바뀐다는 것을 토시를 보고 알아차렸고 몇 가지 규칙을 발견했다.
ㄱ. 흰색과 검은색 팔토시가 가장 많다.
ㄴ. 경찰복과 같은 색의 토시가 존재하지만 사용하는 경찰은 적다.
ㄷ. 얼굴과 팔에 모두 토시를 착용하는 경찰은 깔맞춤을 한다.
ㄹ. 얼굴과 팔에 토시를 착용하고 선글라스를 끼고 양산을 사용하는 경찰도 있다.
ㅁ. 토시, 안경, 양산을 모두 사용하지 않는 경찰도 있다.
ㅂ. 밤에도 어떤 경찰은 토시를 착용하고 있다.
▲ 다양한 팔토시를 착용한 경찰아이가 팔토시를 언급한 이후부터 나도 팔토시를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 임은희
"무슨 집회야? 양회동이 누구야"
지난 17일에는 양회동 열사 추모제가 열려서 평소보다 많은 경찰을 볼 수 있었다. 광화문광장, 청계천, 서울광장에서 다양한 시민 행사가 진행 중이었는데 추모제는 유일하게 차도에 허락된 행사였다. (21일 노동자 양회동 영결식이 노동시민사회장으로 진행됐고, 행진 과정에서 참석자들과 경찰이 충돌하기도 했다.- 편집자주)
경찰들은 인도 양 가장자리에 무리 지어 있었다. 추모제 참가자들은 경찰의 지시에 순응했고 경찰은 지켜보며 대기하는 것 이상의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인도 가장자리에 단정하게 쌓아둔 경찰방패 더미를 지나며 아이가 그날 관찰한 걸 말해준다.
"서울도서관에서 여기까지 190명의 경찰을 셌어. 토시가 없는 경찰은 79명이었어. 선크림을 발랐을까? 여자경찰은 2명이었는데 머리망이 똑같아. 학급티처럼 경찰의 머리망이 따로 있는 걸까?"
▲ 서울광장 주변에 상주하는 경찰차량서울광장에서 진행하는 행사는 달라져도 광장 주변을 둘러싼 경찰차량은 변함없이 존재한다. 차량은 바뀌지만 언제나 4대 이상의 경찰차량이 늘 저 위치에 있다. 대규모 집회가 열리면 광장 가장자리 전체를 경찰버스가 에워쌀 정도로 많아지고 맞은편 덕수궁 앞 차도 역시 경찰버스로 채워진다. ⓒ 임은희
대규모 집회가 예정되어 있으면, 전날 밤에 펜스를 빼곡하게 설치하는 경우가 많다. 이 지역 주민으로 살면서 가장 불편한 것 중 하나다. 집회 참가자들은 당일 펜스를 만나지만 동네 주민들은 전날 밤부터 펜스 방향을 따라 걸어 다녀야 한다.
펜스를 따라 정해진 길을 지나다 보면 자유 의지를 상실한 것처럼 느껴진다. 펜스를 고정하는 케이블타이에 긁히기도 하면 시민 이하의 대접을 받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어떨 때는 정해진 길로만 가야 하는 죄수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다행히 이날 추모제는 펜스를 과하게 설치하지도 않았고 행인과 완벽하게 분리하지도 않았다. 추모제 참가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행진을 준비하고 있을 때 경찰 대부분이 세종대로 사거리로 먼저 이동해 대열을 갖추고 있었다. 주변에서 대기하던 경찰의 수가 현저히 줄었음에도 참가자들은 경찰이 있을 때처럼 행동했다.
행진을 지켜보던 둘째가 물었다.
"그런데 무슨 집회야? 양회동이 누구야?"
"청계천로에 전태일기념관 있지? 전태일은 노동자였는데 일하는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하다 몸에 불을 지르고 돌아가셨잖아. 그게 1970년의 일이고, 2023년에는 양회동이라는 노동자가 그렇게 돌아가셨지. 50년이 지나도 노동자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사회에서 비슷하게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는 행사야."
"노동자를 추모하니까, 경찰도 노동자라서 이렇게 많이 왔구나?"
순간 할 말을 잃었다. 12만 명이 넘는 경찰이 나에게는 공권력이었지만 아이의 눈에는 주말에도 출근한 아빠처럼 먹고 사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시민으로 보였나 보다. 아이에게 집회와 경찰이 많은 시내가 무섭지 않냐고 물었다.
"아니? 1029 분향소 주변에도 경찰이 많잖아. 사람들이 많이 죽어서 슬프니까 지켜주려고 그러는 것 같아."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치받아 올라왔다. 평화롭게 추모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현장을 경찰이 이유 없이 억압하지 않을 것이라는 순진무구한 믿음이 왜 내게는 없을까.
광우병 집회 때 유아차를 끌고 참가했던 수많은 부모들과 참가자를 가차 없이 대하던 경찰들을 본 후에 부모가 되었다. '나도 언제든 집회 참가자가 될 수 있다'는 마음이 강해졌고 경찰은 통제하고 억압하는 이미지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반면 아이는 집회 참가자와 경찰 모두를 아빠와 같은 노동자라는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언론에 나오는 집회 현장의 갈등은 경찰 개인의 판단이 아닌 상급 책임자의 지시에 따른 결과라는 생각을 이날 처음으로 했다. 지시를 이행한 경찰을 비난하기보다는 부당한 지시를 한 책임자를 비판하는 것이 더 어른스러운 사고방식인데, 나는 그동안 충분히 어른스러웠는지를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오늘도 배웠다
▲ 광화문 광장에서 근무 중인 경찰빌딩의 불빛에 섞여 구분이 모호하다. 신경 쓰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지만 경찰은 광화문 어디에나 있다. ⓒ 임은희
광화문에서는 휴식을 취하거나 담소를 나누는 경찰 무리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똑같은 바지를 입고 비슷한 신발을 신은 사람들. 직장가에서 흔하디 흔한 사원증 하나 없이 경찰버스가 상주하고 있는 방향에서 갑자기 나타나 행인 무리에 섞이는 것도 익숙한 풍경이다.
정동길에서 길거리 바이올린 연주를 듣다가 옆에서 감상하던 경찰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한테 저정도 연주 실력이 있으면 비번일 때 대천해수욕장에 가서 알바를 할 텐데"라며 웃었던. 또 다른 경찰들이 대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들으며 '그래 경찰도 먹고살기 바쁜 보통 사람이지'라고 생각했던 것이 떠올랐다.
40대의 내가 가진 경찰에 대한 편견을 바탕으로 경찰을 판단하고 규정하는 것이 어쩌면 시대착오라는 것을 아이들의 말을 통해 알게 되었다.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쌓은 편견은 과거를 설명할 때는 큰 힘을 발휘하나 미래를 위해서는 적당히 내려놓아야 한다.
광화문에서는 매일같이 집회가 열리고 다양한 사람들의 주장을 들을 수 있다. 하나의 문제를 두고도 집회의 성격에 따라 주장이 다르다는 것을 아이들은 안다. 박근혜씨를 대하는 어른들의 생각 차이를 확인하는 일도 그렇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탄핵이 되었다는 것을 아이들은 알고 있다. 뉴스에서 봤고, 촛불집회가 매일 열리던 광화문에 살고 있으니 당연하다. 그런데 2023년을 살고 있는 아이들이 '박근혜를 청와대로 돌려보내라'고 주장하는 어른들을 만나기도 한다. 아이들은 의문을 품고, 혼돈을 느낀다. "이미 탄핵 당한 대통령을 왜 청와대로?" 이런 아이들에게 난 이렇게 말했다.
"사회적으로 결론이 난 일이라 해도 내가 진실이라 믿고 부당하다 여긴다면 타인을 위협하지 않는 수준에서 누구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거야.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어."
아이들과 함께 길을 걸으면서 집회 참가자들이 붙여놓은 다양한 글을 읽고 생각한다. 나 역시 무엇이 옳은 일인지 계속 고민하며 스스로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아이를 통해 또 이렇게 귀한 삶의 지혜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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