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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이 꺼낸 '핵폐수'가 중국계 용어?" <중앙> 보도 '대체로 거짓'

[팩트체크] 국내 원자력학계 기피 단어지만 중국뿐 아니라 한국, 일본 학자도 사용

등록|2023.06.22 12:11 수정|2023.06.23 13:32
 

▲ 중앙일보는 6월 20일 온라인판에 '[단독] 이재명이 꺼내든 "핵 폐수"…국제 학술지선 중국계 용어'(위)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다음날 종이신문에는 '이재명이 꺼내든 핵폐수, 국제 학계에서 중국인이 쓰는 용어'(아래)라는 제목으로 바꿔 올렸다. ⓒ 중앙일보


중앙일보 "이재명이 꺼내든 '핵폐수', 국제 학술지선 중국계 용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7일 인천 부평역에서 열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인천규탄대회에서 "울산 민주당 당원이 '핵 오염수'라고 해서 고발당했다 하던데 아예 '핵 폐수'라고 불러야겠다"면서 "핵 물질을 싸고돌았던 지하수는 명백하게 핵폐기물로, (이를) '핵 폐수'라고 했으니 제가 고발당할 차례"라고 말했다.(관련기사 : 이재명 "오염수 말고 '핵폐수'라 부르겠다…싸워서 심판해야" https://omn.kr/24etj)

그러자 <중앙일보>는 20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주말 꺼내 든 '핵 폐수'란 용어가 국제 학계에선 주로 중국인 연구자 사이에서 사용되는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연세대 학술정보원에서 학술지 논문을 검색한 결과, 핵 폐수(Nuclear Wastewater)라는 용어를 사용한 논문(278건)의 저자는 대부분 중국계였다"고 보도했다.([단독] 이재명이 꺼내든 "핵 폐수"…국제 학술지선 중국계 용어)

실제 '핵폐수'(Nuclear Wastewater)가 중국 정부와 중국계 학자들이 주로 쓰는 '중국계 용어'라는 보도 내용이 사실인지 따져봤다.

[검증내용] 중국뿐 아니라 한국, 일본, 인도 논문에서도 '핵폐수' 사용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17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인천지하철 1호선 부평역 북광장에서 열린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규탄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연세대 학술정보원에서 '핵 폐수(Nuclear Wastewater)'란 단어가 들어간 학술지 논문을 검색하면 중국계 저자가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계 학자들이 많이 쓴다고 해서 '중국계 용어'로 볼 수는 없다. 한국, 일본 등 다른 나라 학자들도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그만큼 해당 분야를 연구하는 중국계 학자 비중이 높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는 "국내 원자력 학계에선 핵 폐수 용어에 대체로 부정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의 한 교수는 "맞지도 않고 쓰지도 않는 말"이라고 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원자력 학계가 아닌 환경공학 등 다른 분야 학자들은 '핵폐수'나 '핵폐액'(영어 표현은 'nuclear wastewater'로 같음)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 '스트론튬 함유 핵폐수의 나노여과에 대한 침전 및 착물화의 영향'(Effect of precipitation and complexation on nanofiltration of strontium-containing nuclear wastewater)(황의덕 등 2002)

- 환경공학 분야 국제 학술지 'Science of The Total Environment' 2019년 게재 논문 :  액상 플라즈마 공정에 의한 에탄올아민 핵폐수의 이종 광촉매 분해 및 수소 발생'(Heterogeneous photocatalytic degradation and hydrogen evolution from ethanolamine nuclear wastewater by a liquid phase plasma process)(정경환 등, 2019)

일본에서도 2014년 일본과학진흥협회 지원을 받아 국제학술지 '화학공학저널(Chemical Engineering Journal)'에 실린 '신규 무기물과 흡착제를 활용한 핵폐수의 방사성 세슘 제거(Radioactive cesium removal from nuclear wastewater by novel inorganic and conjugate adsorbents) 논문, 인도 마드라드 크리스찬 칼리지 연구진이 2022년에 쓴 논문 '핵 폐수 처리기에서 방사성 원소 주변의 물 분자의 용매화 탐색'(Exploring the solvation of water molecules around radioactive elements in nuclear waste water treatment) 등에도 제목에 '핵폐수'란 단어가 등장한다.

한국-중국 정부 공식 용어는 모두 '방사성 액체 폐기물' 

'핵폐수'나 '핵오염수'란 용어가 논란이 되는 이유는 우리나라 원자력업계와 원자력학계가 '핵'(nuclear)이란 말이 갖는 부정적 느낌 때문에 주로 '원자력(atomic energy)'으로 번역해 쓰고 있어서다. 'Nuclear power plant'도 정확히 번역하면 '원자력발전소'가 아니라 '핵발전소'다.

국제원자력협회도 원전에서 나오는 폐기 대상 방사성 물질을 '핵 폐기물(nuclear waste)'이라고 쓰지만, 우리나라 원자력안전법은 원전뿐 아니라 병원, 연구기관, 산업체 등에서 나오는 방사성 물질까지 아우르는 '방사성 폐기물'(Radioactive waste)로 규정하고 있다.

'핵폐수' 역시 국내 원자력학계는 '액체 방사성 폐기물'(Liquid radioactive waste)이라고 쓴다. 하지만 중국 정부도 '방사성폐기물관리규정(放射性废物安全管理条例)'에는 '방사성 액체 폐기물(放射性废液)'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영문으로 'Radioactive wastewater'를 사용하는 학술지 논문 저자도 대부분 중국계였다. <오마이뉴스>가 21일 연세대 학술정보원에서 최근 1년간 논문 168건을 분석했더니, 80%에 이르는 134건(79.7%)의 저자가 중국계였고, 한국 12건(7.1%), 인도 5건(2.9%), 이집트 4건(2.3%), 홍콩 2건(1.1%) 순이었다.

<중앙일보> 논리대로 라면 '핵폐수'뿐 아니라 '방사성 폐수'도 중국계 용어인 셈이다.

또 이 신문은 "중국 외교부도 2021년 4월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 직후 낸 담화문에서 '핵폐수(核废水)'란 단어를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핵폐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국가는 중국만이 아니다.

호주, 뉴질랜드, 파푸아뉴기니 등 18개국이 속한 PIF(태평양도서국포럼)도 현재 홈페이지에 '핵폐수(Nuclear Wastewater)'라고 쓰고 있고, 대만 정부도 '핵폐수'나 '삼중수소 폐수'(Tritiated Wastewater)라고 부르고 있었다.(관련기사 : 한·중·러만 '오염수'로 부른다?... 미국이 오히려 예외 https://omn.kr/23yr7 )

 

▲ 태평양도서국포럼(PIF)은 지난 2월 6일 ‘일본의 핵폐수 방류’(Japanese Discharge of Nuclear Wastewater) 팩트시트에서 “PIF 입장은 인간의 건강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평가할 수 있는 충분한 데이터와 정보가 있는 경우에만 핵폐수(Nuclear Wastewater)를 방류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 PIF


"일본 학자가 많이 쓰는 '처리수'는 일본계 단어?" 

최경숙 환경운동연합 시민방사능센터 활동가는 21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핵폐수가 '맞지도 않고 쓰지도 않는 용어'라는 원자력 학계 주장에 대해 "환경단체에서 쓰는 '핵발전소'라는 용어를 원전 관계자들이 싫어하는 것처럼 합의된 용어는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인터넷에 영어로 검색해 보면 '핵폐수'라고 쓴 자료나 논문이 많은데도 그런 식으로 주장하는 건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의) 위험성을 반감시키려는 꼼수"라고 지적했다.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도 "방사성 폐수와 핵폐수는 서로 같은 뜻을 가진 용어"라면서 "(중앙일보 논리대로라면) '처리된 오염수'나 'ALPS 처리수'는 일본 학자들이 많이 쓰는 단어인데, 그럼 일본계 용어가 되는 건가"라고 반박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원자력공학 분야 전문가도 "우리나라 원자력학계에서는 'Nuclear'를 '핵'으로 부르는 데 거부 반응이 있어 '원전'이나 '방사성 폐수'라고 쓰고 있지만 핵발전소나 핵폐수가 더 정확한 표현"이라면서 "반면 중국 학계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전부터 '원자력'을 '핵능(核能)'이라고 써왔기 때문에 '핵폐수'라는 표현에도 거부감이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 부회장인 정재학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22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국제원자력기구 국제안전기준과 국내 법령에는 '액체 방사성폐기물'(Liquid radioactive waste)이라고 쓰고 있고 중국 방사성폐기물안전관리규정에는 '방사성폐액(放射性废液)'으로 쓰고 있다"면서 "영문으로 'nuclear waste'는 가치중립적인 용어지만 한국에서는 '핵'이 위험하다는 걸 암시하는 측면이 있어 ('핵폐수'가) 가치중립적인 공식 용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검증결과] "핵폐수는 중국계 용어" 보도 '대체로 거짓'

'핵폐수'란 용어를 쓰는 중국계 학자 비중이 높은 건 맞지만, 한국과 일본, 인도 등 다른 나라 학자들도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국내 원자력학계에서는 '핵 폐기물' 대신 '방사성 폐기물'이라는 표현을 주로 쓰고 있지만, '방사성 폐수'라는 용어를 쓴 논문 저자도 중국계 비중이 가장 높았다. '핵폐수'가 '중국계 용어'라는 <중앙일보> 보도는 이 같은 중요한 사실을 누락했다고 판단해 '대체로 거짓'으로 판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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