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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출장 내역 요구하자 '빈칸' 보낸 선관위

[행안위] 김웅 의원 요청에 공란으로 대응... 여야 모두 "국회 모독"

등록|2023.06.22 16:56 수정|2023.06.22 16:56

▲ 허철훈 중앙선관위 사무차장이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2023.6.22 ⓒ 연합뉴스


"지금 이게 선관위에서 본 의원실에 보낸 출장 개요에 대한 내역이다."
"오우, 오우…."
 

김웅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띄우자, 주변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김웅 의원의 요구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출한 해외 출장 개요 자료였다. 하지만 화면에 잡힌 3장의 A4 용지는 모두 '빈칸'이었다. 제목의 '년도 컨센서스 일정' 8글자를 제외하면 아무런 내용이 없었다. A4용지를 꽉 채운 표 안은 모두 공백이었다. 22일 오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 도중 연출된 장면이었다.

뉴욕 출장 기간부터 개요까지 모두 지우고 제출
 

김웅 의원은 이날 허철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직무대행을 향해 불성실한 자료 제출에 대해 지적했다. 그는 우선 선관위가 감사원 감사를 거부하고 국민권익위원회 조사를 받겠다고 했다가, 다시 감사원 감사 일부를 수용하는 대신 권익위 조사를 거부한 행태를 꼬집었다. 이어 "그러면 국회 조사는 성실히 응하고 있는지 한번 볼까? PPT 좀 보여주시라"라고 말했다.

그는 "선관위 문제 중에 국민들이 가장 분노하고 있는 게 자녀들의 부정채용 의혹"이라며 "본 의원이 자녀 채용에 대한 전수조사 결과를 보내달라고 요구했다"라고 했다. "거기에 대한 (선관위의) 답이 뭐냐면, '취합된 자료는 위원회 감사 부서에 전달하였다'이다"라며 "아니, 자료를 달라고 하니까 '그 자료가 감사과에 있다'라고 대답을 하는 게 이게 제정신인가?"라고 날을 세웠다.

김 의원은 "선관위에서 정치인들에게 자료 보내달라고 했을 때, 자료 안 보내고 '그 자료는 우리 사무실에 있다'라고 답하면 선관위는 '아, 그러냐'라고 넘어갈 건가? 앞으로 넘어갈 거지?"라고 선관위를 질타했다. 허철훈 직무대행은 별다른 답을 하지 못했다.

김 의원은 "정말 가관"이라며 선관위가 제출한 해외출장 내역을 문제 삼았다. "'블록체인 기술의 최신 성과와 도전'이라는 출장 결과 보고서"라며 "해외출장 내역을 보겠다면 가장 중요한 게 뭐겠느냐? 간 사람, 일시, 장소겠지?"라고 말했다. 이어 그가 내보인 자료는 내용 다수가 지워진 빈칸이었다. "장소 달랑 미국 뉴욕이다. 뉴욕 주인가, 뉴욕 시티인가? 뉴욕 주는 우리 대한민국 남한 면적보다 훨씬 크다"라며 "이렇게 저희한테 자료 보낼 거면 그냥 출장지 '지구' 이렇게 써라"라는 지적이었다.

또한 "출장 기간을 아예 다 지워 놨다. 몇박 며칠인지 안 나온다"라며 "아니 출장 내역을 보내라고 하는 데 가장 중요한 몇 박 며칠, 어디에 갔는지가 안 나오면 이게 지금 자료 제출인가? 이건 조롱하는 거다, 국회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선관위에 이런 식으로 자료 나중에 보내면 그거 받으실 건가? 안 받으실 거지?"라며 "정치자금 영수증 보내주는데, 언제, 금액, 장소 다 지우고 한번 보내볼까? 알아서 그거 판단하실 건가?"라고 추궁했다.

김 의원은 "자, 개요도 다 지워져있다. 도대체 뭘 했는지, 왜 이걸 이렇게 공란으로 열심히 지워서 보냈는지 모르겠다"라며, 이어서 선관위가 제출한 해외출장 일정 자료를 공개했다. 화면에 텅 비어 있는 3개의 표가 등장하자, 동석해 있던 행안위 일부 위원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나왔다.

김 의원은 "뭐가 보이시나? 자유가 보이시나?"라며 "선관위는 국회의원이 궁예로 보이나? 무슨 관심법으로, 제가 여기에서 몇 박 며칠, 어디를 갔는지, 그거 제가 그냥 관심법으로 알아내야 하느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헛웃음을 터트리는 의원도 있었다.

민주당 행안위원장조차 "이건 좀 심한 거 아닌가"

그는 "이게 정말 말이 되는 건가? 진짜 이게 지금 왔다, 선관위에서"라며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교흥 의원을 향해 국회의 자료제출 요구권을 상기시켰다. "이런 자료를 보낸 것은 사실상 제출을 거부한 것이고,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제4조 2항을 위반한 것"이라며 "이런 자료를 보내고 있는 선관위에 대해서는 우리 행안위 의결로 관련자 징계를 요구할 것을 정식적으로 요청드린다"라고 질의를 마쳤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김교흥 위원장은 "이 부분은 여야 간의 간사 협의를 거쳐서 정하도록 하는데"라면서도 "처장, 이건 좀 심한 거 아닌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건 국회를 선관위에서 모독하는 거다"라는 지적이었다.

허 직무대행은 "이 자료는 오늘 제가 처음 봤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라며 "앞으로 자료를 성실히 제출하도록 하겠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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