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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을 한결같이 지켜온 사부의 일 준비 방식

사부에게 정원은 성전... "밥 먹고 화장실 다녀와서 먹을 물 챙기라" 말하는 이유

등록|2023.07.26 20:02 수정|2023.07.31 17:59
일본 현지에서 75세 사부에게 정원사 일을 배우는 65세 한국 제자의 이야기.[기자말]
슬슬 몸이 오전 6시 출근에 적응돼 가나보다. 오전 5시에 알람이 울리기 전 눈이 떠진다. 오늘 아침에 알게 된 건데 알람이 울리기 전 핸드폰을 보면 '곧 울릴 알람을 끌까요'라고 문자가 뜬다(여우 같은 놈!). 울리기 전 알람을 껐다.

어젯밤에 바람이 많이 불었는데 벌써 태풍 소식이 들려온다. 장마도 시작된다며 무덥고 습한 날씨를 알린다. 일본은 언제 비가 와도 이상하지 않은 날씨지만 6월 츠유(장마) 때는 평소보다 비가 더 많다.
 

▲ 사부에게 정원은 신앙이다. 60년을 몸바쳐 성전을 지켜왔다 ⓒ 유신준


사부는 변함없이 라디오를 틀어놓고 일하고 계신다. 현장으로 출발 전 작업 도구를 차에 반듯하게 싣고 준비를 마쳤다. 차고 옆에서 긁어 모아 둔 나뭇잎을 태우며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도 호흡을 잘 맞춰 일해야 하니 워밍업 같은 거다.

옛날에는 3시에 일어났어. 밥 먹고 준비하고 4시에 일 나갔지. 그때는 일하러 가면 화장실 다니기도 어려웠어. 주인한테 말하기도 힘들었고. 그래서 반드시 밥 먹고 화장실 다녀서 일 나갔지. 그게 일생 동안 버릇이 돼서 3시에 일어나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야. 내가 밥 먹고 화장실 다녀와서 마실 물 가지고 오라는 건 그때부터 만들어진 일 준비 방식이야.

일을 위해 몸의 생리까지 조절
 

▲ 공간을 남겨 두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다 ⓒ 유신준

   
일하기 위해 미리 화장실을 다녀왔다는 건 일을 위해 몸의 생리까지 조절했다는 것 아닌가. 정원 일에 몸을 바친다? 도대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사부는 나에게 일본 정원사의 특급 모델이긴 하다. 나는 성실하게 그의 방식을 따르며 깐깐한 정원 관리기법들을 흉내내고 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3시 기상에 화장실까지는 납득하기 어렵다.

사부에게 정원은 신앙같은 거다. 60년을 한결같이 정원이라는 성전을 몸 바쳐 지켜왔다. 그건 감히 내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영역이다. 3시에 일어나 화장실까지 마치고 일을 나갔다는 그의 일화는 내게 전설이다. 일생 동안 그가 추구해 온 진실한 삶의 힘이 오롯이 전해온다.

오늘 작업현장은 쿠사노 역 옆의 개인정원이다. 차를 타자마자 내려야 하는 거리다. 대문을 지나면 현관이 왼쪽으로 비켜서 있고 정원이 양쪽으로 나뉘어 있다. 꽤 넓다. 어제 작업한 정원의 3배쯤 된다. 게다가 왼쪽 끝에 담을 겸한 카시나무 생 울타리가 길게 늘어서 있어서 작업량도 상당하다. 카시나무는 수고(나무의 높이)가 10미터에 이르는 갈잎 큰키나무인데 강건해서 쓰임새가 많다.
  

▲ 에어컨이 없던 시절에는 창문을 열어놓고 집안에 시원한 바람을 들였다 ⓒ 유신준

   
일반적인 개인정원들은 중저목들을 적당한 위치에 심고, 중간중간에 철죽을 달덩이로 배치해 놓은 스타일이 많다. 잎이 크거나 작은 것을 섞어 심어 변화를 주기도 한다. 이곳도 비슷하다. 다만 나무들이 너무 빽빽해서 좀 답답해 보인다. 좁은 정원에 욕심을 내면 이런 결과가 생긴다. 공간을 남겨 둔다는 건 누구에게든 쉽지 않은 선택이긴 하다.

오늘은 작업 스타일이 바뀌었다. 바리캉 2대로 각각 개별 작업이다. 이미 다 가르쳐 줬으니 니가 알아서 하라는 거다. 응접실 앞쪽으로 비중있는 나무들은 사부가 하고 뒷쪽에 있는 들러리는 내가 하는 형식이다. 그러니 새끼 정원사다.

전동 바리캉은 재미있는 작업 도구다. 구동방식이 엔진이라면 무거워서 오래 들고 작업하기 힘들텐데 전기라서 손에 딱 맞는다. 대개 잔가지를 다듬는 용도다. 익숙해질수록 부작용이 있긴하다. 손에 들면 뭐든 자르고 싶어 진다는 거다. 강변을 산책하는 중에도 나무들이 비쭉빼쭉 늘어서 있는 것을 보면 반듯하게 정리하고 싶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가끔 보이는 굵은 가지들은 전지가위로 자른다. 전지가위는 잠금장치를 열어서 케이스에 넣어 두는 게 요령이다. 바로 사용할 수 있게 두기 위해서다. 이 경우 가죽 케이스가 잠그는 역할을 대신한다. 오른손을 뒤로 내밀면 바로 잡힐 위치다. 모든 작업도구들이 일하기 용이하도록 잘 맞춰져 있다.

일본에서 정원이 외면 당하는 이유
   

▲ 정원작업이 빡센 일임이 분명하다 ⓒ 유신준

 
새참을 먹으며 사부에게 정원이야기를 들었다. 틈이 날 때마다 내게 필요한 이야기들을 해준다. 일본에서 정원이 외면 당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젊은 사람들의 무관심이라면 다른 하나는 에어컨이다.

에어컨이 없던 시절에는 창문을 열어놓고 집안에 시원한 바람을 들였다. 한여름에는 당연히 정원 나무그늘과 그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반드시 필요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원을 가꾸고 이용했다. 지극히 실용적인 이유였다.

요즘은 여름에 에어컨을 켜고 창문을 닫는다. 시원한 여름을 위해 정원이 필요했는데 실용적인 이유가 사라졌다. 남보기 좋은 장식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실용적 이유가 사라지고 장식 역할만 남았다. 곁에 두는 건 선택의 문제다.

작업량이 많아서 점심을 먹고 늦게까지 일했다. 4시에 끝났으니 10시간이다. 처음으로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가끔 쉬긴하지만 빡센 일임이 분명하다. 정원일의 낭만같은 건 자기 정원을 룰루랄라 손질할 때 얘기다. 일로 하는 정원, 게다가 작업 시간이 길어지게 되면 힘들다. 힘드니 말이 없어지고 라디오를 듣게 되는 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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