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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맛있다면 '옆사람'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책 <왜 맛있을까>를 읽고

등록|2023.06.28 10:36 수정|2023.06.28 10:36

▲ 고도가 높을수록 습도와 기압이 낮아지기에 음식의 풍미가 약 30퍼센트 정도 상실된다. ⓒ 전윤정


지난달 일본 교토에 다녀왔다. 팬데믹 이후 외국행 비행기를 타는 설렘이 가득했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먹는 기내식을 기대했다. 하지만 하늘 위에서 먹는 기내식은 실망스럽게도 기대한만큼 맛이 없었다. 너무 기대가 컸던 걸까? 아니면 그동안 기내식 질이 떨어진 걸까? 그도 아니면 내 입맛이 변한 걸까?

영국 옥스퍼드 대학 통합감각 연구소장 찰스 스펜스는 저서 <왜 맛있을까>에서 기내식이 맛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고도가 높을수록 습도와 기압이 낮아지기 때문에, 음식의 맛과 풍미가 약 30퍼센트 정도 상실되기 때문이다. 낮은 기압은 휘발성 냄새 분자의 수를 줄게 한다. 음식 냄새가 줄어드니 비행기 안에서는 풍미를 지각하는 능력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미각 아닌 시각과 후각도 맛에 영향

냄새(후각)는 맛을 느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난 팬데믹 3년 동안 코로나에 걸렸던 사람이라면 더욱 공감할 것이다. 코로나의 가장 흔한 증상이 '일시적 후각 상실'이어서, 냄새를 맡지 못하니 음식 맛을 모르겠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많았다.

우리가 음식이나 음료를 삼킬 때마다 휘발성 분자들이 입의 안쪽에서 코의 안쪽으로 규칙적으로 흘러간다. 코로 들어오는 냄새를 통해 우리 뇌가 맛에 대한 기대를 형성한다. 어쩌면 진짜 맛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은 코로 인지하는 냄새일 수도 있다.

후각이 음식 맛의 70~80%를 좌우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많다. 코를 꽉 쥐고 먹으면 양파인지 사과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유명한 실험이 이를 증명한다. 이렇게 음식을 맛볼 때 우리의 여러 감각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가스트로피직스(Gastrophysics)다.

'눈으로 먹는다'라는 말처럼 미각에 영향을 주는 대표적인 감각은 '시각'이다. 나는 '시각'을 통제한 상황을 겪으며 맛을 느낄 때 얼마나 시각에 의존하는지 알았다. 몇 년 전, <어둠 속의 대화>라는 체험 전시에 갔다. '어둠'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시각 이외의 다양한 감각들을 활용해 익숙하지만, 낯선 상황을 체험하는 전시다. 어둠 속에서 자기가 마신 음료수를 맞추는 시간이 있었는데, 콜라와 사이다를 헷갈리는 것은 물론 어떤 과일 주스인지 맞힌 사람도 거의 없었다.
 

▲ 얼마 전 카페에서 귀여운 모양 때문에 주문했던 곰돌이 치즈 무스 케이크. ⓒ 전윤정


1세기 로마의 작가 아피키우스(Apicius)는 "첫 맛은 눈으로 즐겨야 한다"라고 했다. 그 말은 2천 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더 통하는 듯하다. 식당에서 음식이 나오면 반사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음식 사진을 찍는 것이 일반적이다. 개인적 기록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SNS의 영향이 크다.

특히 사진 위주로 올리는 앱 '인스타그램'의 경우 일명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 :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한 음식이 인기를 끈다. 음식의 외양이 특이하면 사람들이 몰리는 맛집 혹은 핫플(핫 플레이스(Hot place)의 줄임말)로 명성을 얻는다. 그러다 보니 음식 맛보다 외양이 더 중요하게 되었다. 이 시대 자체가 음식 맛을 좌우하는 '시각'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

또한 지글지글 고기 굽는 소리, 기름 안에서 바삭하게 튀겨지는 튀김 소리, 견과류의 오도독 부서지는 소리, 샐러드 채소의 아삭한 소리 등 청각도 우리의 미각을 자극한다. 그러나 촉각 또한 맛 경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지?

작가는 비행기 기내식 맛이 떨어지는 원인으로 식기의 무게도 한몫한다고 말한다. 가벼운 플라스틱 숟가락의 촉감이 맛을 떨어뜨린다며, 용기나 식기가 무거울수록 음식을 더 맛있게 느낀다는 실험 결과를 제시한다.

우리도 배달 음식에 따라오는 일회용 용기와 수저를 사용할 때 종종 느낀다. 지인이 배달 음식을 꼭 집에 있는 그릇에 옮겨서 먹는다고 해서 귀찮지 않을까 했었는데, 과학적으로 의미가 있었다. 그릇이나 식기가 무거울수록 포만감이 높아진다고 하니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될 듯하다.

하지만 손으로 먹을 때 더 맛있을 때도 있다. 손의 감각이 그대로 미각에 연결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초밥의 풍미를 그대로 느끼기 위해 손으로 먹는 것을 추천한다(물론 젓가락으로 먹어도 예의에 어긋나지는 않는다). 책에서 예를 들은 햄버거 역시 손으로 먹을 때 더 맛있다. 아무리 비싼 햄버거라도 나이프와 포크로 먹는다면 그 맛이 나지 않을 듯하다.

작가는 여러 감각의 경험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먹느냐'하는 사회적 의미 역시 음식의 맛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식사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음식도 불편한 사람과 먹는다면 맛을 느끼기 힘들다. 반대로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음껏 웃으며 편하게 먹은 음식은 평범하고 소박해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옥스퍼드대의 동료인 로빈 던바 Robin Dunbar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함께 먹는 행위는 뇌의 엔도르핀 시스템을 활성화시키고 엔도르핀은 사회적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식사를 가운데 두고 함께 앉으 면사회적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육체적·정신적 건강, 행복감과 안녕감, 삶의 목표에 큰 영향을 받는다. (중략) 식탁이야말로 원조 소셜 네트워크임을 잊지 마라.""

책 <왜 맛있을까>는 요리학과 감각 과학이 합쳐진 가스트로피직스(Gastrophysics)의 연구결과를 통해 맛을 느끼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면서, 음식 자체보다 음식에 얽힌 여러 경험이 합쳐져 총체적인 맛을 느끼고 기억한다고 결론짓는다.

같은 음식이라도 어떤 감각이 최대한 활성화되었는지, 함께 한 사람이나 분위기가 어땠는지에 따라 맛을 다르게 느끼고 기억한다는 것이다. 여러분의 가장 기억에 남는 식사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그 식사는 '왜 맛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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