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소풍 다녀온 대리기사들... 다 '이곳' 덕분입니다
'각자'에서 '서로'가 된 카부기 대리운전기사 공제회
▲ 지난 5월 카부기상호공제회 봄소풍에 부산·울산·경남 대리운전기사 106명이 참석했다. ⓒ 카부기상호공제회
오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혹자는 이들을 가리켜 '뽕 맞은 사람들같이 활동한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뽕을 맞았는지 궁금해 지난 22일 부산으로 향했다.
화려하고 북적이는 부산 서면에 부산이동노동자지원센터가 있다. 센터 문을 열자마자 온기가 느껴졌다. 많은 이들이 오고 간 발걸음이 쌓여 만든 온기였다. 센터에 꽂혀있는 카부기상호공제회 소식지 '희망드림' 4호를 집어 들었다.
카부기상호공제회는 부산·울산·경남지역 대리운전 기사들이 스스로 모여 만든 공제회이다. 2021년 말 90명을 시작으로 올해 370명이 가입했다. 일 년 반 사이에 매우 빠른 속도로 늘었다. 올해 목표 500명도 달성할 수 있을 듯하다. 공제회원이 빠르게 늘어나는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다. 따뜻한 동료애와 실질적 보탬이다.
대리기사 시급 5228원
▲ 소풍에 참석한 회원들이 양손 들어 서로를 열렬히 환영하고 있다.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가족이 함께한 회원들도 있었다. ⓒ 카부기상호공제회
우선 공제회의 기본 혜택을 보자. 월회비 1만 원에 입원, 수술비 150만 원이 보장되고 노동공제연합 '풀빵'에 추가로 가입(월 6000원)하면 150만 원 소액대출도 받을 수 있다. 대리기사들의 열악한 현실을 생각하면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대리기사들의 시급이 5228원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부산연구원 <부산시 플랫폼 노동자 실태와 공적지원 방안>(2020) 보고서에 따르면, 하루 8.4시간씩 월 25일을 일해서 순소득 109만7900원을 번다. 이 순소득을 시간당 소득으로 계산하면 5228원이다. 부산지역만의 특수한 경우일까? 전국으로 확대해 봐도 6716원이다(2019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결과).
월평균 총수입을 보면 250만 원 미만이 80%를 차지하고 월평균 지출비용은 92만 원 정도다.
주요 지출내역을 보면 수수료 45만 원, 합차비(출근비) 10만 원, 보험료 11만 원, 프로그램 사용료 6만 원인데, 대리기사들은 수수료 20% 안에 프로그램 사용료, 합차비, 단체보험료가 포함돼야 한다고 말한다. 대리업체의 부당한 횡포에 어쩔 수 없이 내는 비용이다. 일하지 않은 날에도 꼬박꼬박 나간다.
사업 실패, 해고, 과도한 빚, 매달 조금씩 모자란 생활비 등으로 대리운전기사를 시작하게 된다. 진입장벽이 높지 않고 당장 현금을 만질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투잡으로 시작했다가 전업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 5~10년 이상 경력이 50%를 넘는다. 대리기사의 호시절도 있었지만, 나라의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고 사람들의 돈주머니가 점점 위태위태해지면서 콜은 급속도로 말라간다.
정부가 대부업체가 되려는 세상
급전이 필요한 경우는 언제든 생기기 마련이다. 매달 수입이 있어도 대리기사는 은행권에서 대출받기가 어렵다. 대리기사들이 모여 있는 곳에는 항상 일수 광고명함이 뿌려진다. 카부기상호공제회 김철곤 사무국장이 부산·울산·경남 대리기사들에게 일수를 써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일수를 써본 기사가 50%가 넘고 현재도 일수를 쓰고 있는 기사가 25% 정도라고 한다. 100만 원을 일수로 빌리면 이자가 20만 원이다. 빚은 빚을 부른다. 복리로 계산되는 일수 이자는 2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불어난다. 자가증식도 이런 대단한 자가증식이 없다. 불법사금융 이자가 5000%라는 기사도 있다.
지난해 12월 대부업체 러시앤캐시가 신규대출을 중단하자 법정 최고금리(20%)를 높여야 한다는 기사들이 나왔다. 지난 3월, 50만 원에서 최대 100만 원까지 빌릴 수 있는 정부정책금융상품 '소액생계비대출'이 출시되자 두 달 만에 4만3549건이 접수됐다. 정책서민금융상품인데도 이자가 15.9%다. 처음 이 뉴스를 들었을 때 귀를 의심했다. '이제는 정부가 대부업체가 되려는구나' 싶었다.
이렇듯 소액대출이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카부기상호공제회와 노동공제연합 풀빵의 소액대출과 병원비 지원은 무척 소중하다. 풀빵의 소액대출은 150만 원까지 가능하고 이자율(3%)이 낮은 편이다. 상환기간도 10개월이다. 그리고 대출 심사절차가 까다롭지 않다. 추천인 1명만 있으면 된다.
사금융에서 소액대출을 받으려고 해도 사금융 직원이 대리업체에 전화해 얼마나 일하는지 확인하는데, 풀빵 소액대출은 추천인이 신용이다. 추천인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공제회원으로서 교류와 활동을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공제회에서는 활동이 신용이다.
풀빵 소액대출을 받은 카부기공제회 회원들은 어디에 대출금을 썼을까? 아픈 노모의 병원비, 아이의 꿈을 위한 투자, 급한 생활비 등이다. 지극히 일상적인 이유이다. 급전이 필요할 때 대출금 나오기를 며칠씩 기다리면 애가 탄다. 풀빵 소액대출의 장점은 신속함이다. 이틀 만에 나오니 만족도가 매우 높다.
가슴에 묻을 수도, 꺼낼 수도 없는 사연이 가득한 사람들
▲ 소풍에 참석한 회원 전체에게 나눠준 신발깔창과 마스크 선물세트. ⓒ 카부기상호공제회
기본 공제의 혜택도 좋지만, 카부기공제회의 매력은 따로 있다. '동료가 생겼다'는 유대감이다. 대리기사 13년차 이미영 카부기상호공제회 공동회장의 말을 들어보자.
"대리기사 하면서 심리적으로 위축도 되고 같은 대리기사들한테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일부러 소통하지 않았어요. 작년에 공제회에 가입했는데 사람들이 다르더라고요. 따뜻했어요. 고립된 직업이다 보니 많이 외로웠어요. 급할 때 손 내밀 사람이 없었거든요. 그전에는 아침에 눈 뜨면 '이제 운전하러 나가야 하는구나'라는 생각만 들었는데 요즘은 눈뜨는 게 즐거워요. 동료가 생기니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반가운 얼굴들을 보니까 하루하루가 즐거워요. 외롭지 않아요. 동료가 있고 없고가 너무나 달라요."
이런저런 이유로 여차저차 하여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가슴에 묻을 수도 꺼낼 수도 없는 사연이 가득한 사람들, 사람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대리운전판은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콜 타는 방법부터 외진 곳에서 빠져나오는 방법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같은 대리운전을 한다고, 자주 얼굴을 본다고 동료가 되는 건 아니다. 보통 대리기사들의 관계를 '5분 만남'이라고 한다.
그런 현실 속에서 무더운 여름 대기 중인 기사에게 시원한 얼음물을 건네고, 필요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알려주고, 외진 곳에서 탈출하기 힘든 기사의 SOS 문자를 보면 무료로 태우러 가고, 사고가 나서 일하지 못하는 기사들을 위해 하루 일한 수입을 경쟁하듯 기부하고(동행콜), 혹시 무슨 일이 있나 지속적으로 안부를 묻고, 연락이 안 되는 기사는 직접 집에 찾아가 도움을 주고...
이런 크고 작은 정성들이 모여 끈끈한 정을 느끼게 했다. 동료애가 무엇인지 느끼게 했다. 고립과 불신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선한 마음과 촉촉한 활동이 진짜 카부기상호공제회의 뽕이 아닐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참고서적 : 「대리기사 이야기」 (우한기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