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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갈리던 평단-관객, 이 영화로 '대동단결'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실망스러운 만화원작 실사영화 <드래곤볼 에볼루션>

등록|2023.07.01 10:27 수정|2023.07.01 10:27
2023년도 어느덧 절반의 시간이 흘렀지만 전국의 극장가는 여전히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에 개봉한 영화들 중에서 전국 관객 300만을 넘긴 작품은 단 4편에 불과하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2023년에만 349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순위 5위에 올라있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 물의 길>은 작년 12월 14일에 개봉했기 때문에 2023년 개봉작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올해 국내 흥행 순위에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을 찾을 수 있다. 흥행 순위 TOP4에 올라 있는 영화들 중 두 작품이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이다. 지난 1월 4일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아재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며 468만 관객을 동원했고 3월 8일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도 일본 애니메이션 역대 최초로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세계흥행 3억2300만 달러의 놀라운 성적을 이어가고 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사실 2020년 세계흥행 1위가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5억600만 달러)이었을 정도로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세계적으로 높은 완성도와 재미를 인정받고 있다. 이에 할리우드와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도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판권을 사와 실사영화로 만들곤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일본만화 원작의 실사영화들 중에는 2009년에 개봉했던 <드래곤볼 에볼루션>같은 '실수'도 나오곤 했다.
 

▲ <드래곤볼 에볼루션>의 북미포스터에는 동양배우 주윤발과 박준형의 얼굴이 삭제됐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유독 고전하는 일본만화원작 실사영화들

2003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연재됐던 동명의 일본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독창적인 각색과 재해석으로 현재까지 원작을 훌쩍 뛰어넘는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일본만화 원작의 실사영화들이 <올드보이>처럼 극찬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분별한 원작파괴와 떨어지는 완성도로 인해 원작만화의 매력을 제대로 담지 못했다고 혹평을 들었던 작품도 적지 않았다.

<매트릭스> 시리즈로 유명한 워쇼스키 자매는 지난 2008년 한국에서도 <달려라 번개호>라는 제목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일본 애니메이션 <마하 GoGo>를 실사화한 <스피드 레이서>를 만들었다(국내에서는 가수 겸 배우 비의 할리우드 진출작으로 더욱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1억2000만 달러의 많은 제작비를 투입한 <스피드 레이서>는 세계적으로 9300만 달러의 흥행성적에 그쳤고 워쇼스키 자매는 아직도 흥행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13년에는 스파이크 리 감독이 연출하고 지금은 <어벤저스>의 타노스와 스칼렛 위치로 스타가 된 조쉬 브롤린과 엘리자베스 올슨이 주연을 맡은 할리우드판 <올드보이>가 개봉했다. 독특한 사실은 스파이크 리 감독의 <올드보이>는 일본 원작만화가 아닌 박찬욱 감독이 만든 한국영화 <올드보이>를 리메이크를 했다는 점이다. 할리우드판 <올드보이>는 오대수의 장도리 액션을 재연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흥행참패를 막지 못했다.

원작만화로 12권의 단행본이 출간됐고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네 편에 걸쳐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던 <데스노트>는 지난 2017년 넷플릭스에서 제작을 맡으며 미국에서 실사영화로 리메이크됐다. 하지만 12권에 해당하는 만화를 1시간40분으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심한 삭제와 원작파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넷플릭스 영화 <데스노트>는 미국의 영화평론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관객점수 24%에 머물렀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2017년 드림웍스에서 실사화한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은 주인공 쿠사나기 모토코 역에 스칼렛 요한슨이 캐스팅될 때부터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다. 영화에서는 일본인이었던 주인공이 사이보그가 되면서 백인이 됐다는 설정을 포함시켰지만 원작 팬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긴 역부족이었다. 물론 영화의 완성도나 재미 역시 원작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실망스런 성적에 머물렀다.

굳이 실사화할 필요 없었던 전설의 만화
 

▲ 성별구분도 못하던 원작의 손오공은 영화에서 여자친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무술실력을 뽐내는 철없는 10대 청소년으로 각색됐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드래곤볼 에볼루션>은 1984년부터 1995년까지 연재되면서 단행본 42권이 발매됐던 토리야마 아키라 작가의 만화 <드래곤볼>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드래곤볼>은 일본 현지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만화로 세계적으로 2억 부 이상이 판매부수를 기록한 일본 만화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이다. <드래곤볼>은 정식 연재가 끝난 지 2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다양한 버전의 후속작 및 외전이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드래곤볼 에볼루션>은 공포영화 <데스티네이션> 시리즈와 이연걸 주연의 <더 원>을 만들었던 중국계 미국 감독 제임스 왕의 네 번째 연출작이다(공교롭게도 제임스 왕 감독은 <드래곤볼 에볼루션>을 끝으로 할리우드에서 감독 커리어가 끝났다). <드래곤볼 에볼루션>은 방대한 <드래곤볼>의 세계관 중에서 손오공(저스틴 채트윈 분)이 피콜로 대마왕(제임스 마스터스 분)을 물리치고 드래곤볼을 모아 소원을 이루는 초반 부분을 다루고 있다.

장편만화를 영화화하다 보면 각색과 재해석은 있을 수밖에 없고 이는 관객들도 충분히 이해하는 부분이다. 개성 있는 각색은 실사 영화만의 독창적인 매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드래곤볼 에볼루션>은 원작의 기본 설정을 무시할 정도로 원작파괴가 심했다. 특히 남녀의 성별을 구분하지도 못하는 순수한 소년이었던 손오공은 여자친구 치치(제이미 정 분)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할아버지에게 배운 무술로 일진들을 혼내주는 청소년으로 그려진다.

<드래곤볼 에볼루션>은 손오공의 등장부터 소년기 마지막 이야기인 피콜로 대마왕과의 사투까지 이어지는 긴 스토리를 85분의 짧은 시간으로 압축하다 보니 엄청나게 많은 부분을 삭제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드래곤볼 에볼루션>에는 손오공의 소년기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크리닝과 천진반, 차오즈, 오룡, 푸알, 레드리본군, 피라후, 야지로베, 우마왕 같은 주·조연급 캐릭터들이 모두 삭제됐다.

<드래곤볼 에볼루션>은 좀처럼 의견이 일치하지 않기로 유명한 평론가들과 관객들을 대동단결(?)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드래곤볼 에볼루션>은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15%, 관객점수 20%를 받았고 N포털사이트에서도 평론가 평점 2.94점, 관객평점 3.22점을 받았다(10점 만점). 특히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피콜로와 손오공의 마지막 전투 신은 원작의 속도감과 박력, 그리고 긴장감을 전혀 살려내지 못했다.

해리 포터-피터 파커가 되지 못한 손오공
 

▲ 야무치 역의 박준형(오른쪽)은 <드래곤볼 에볼루션>이 할리우드에서 찍은 마지막 영화가 됐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우주전쟁>에서 톰 크루즈의 아들로 출연하며 주목받은 캐나다 출신 배우 저스틴 채트윈은 <드래곤볼 에볼루션>에서 주인공 손오공 역에 낙점됐다. 만약 영화가 흥행했다면 채트윈은 <해리 포터>의 다니엘 레드클리프나 <스파이더맨>의 토비 맥과이어처럼 검증된 시리즈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드래곤볼 에볼루션>의 흥행실패로 속편 계획은 무산됐고 채트윈도 다시 평범한 배우로 돌아갔다.

<드래곤볼 에볼루션>을 감상한 관객들이 가장 놀랐던 지점은 바로 손오공의 스승이자 <드래곤볼>의 신 스틸러 무천도사를 '영원한 따거' 주윤발이 연기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손오공에게 필살기인 '에네르기파'를 전수한 무천도사는 피콜로를 다시 봉인하기 위해 마봉파를 사용하지만 실패하면서 사망한다. 피콜로를 물리치고 7개의 드래곤볼을 모은 손오공은 무천도사를 살려 내기 위해 신룡을 불러 소원을 사용한다.

<스피드 레이서>에서 야쿠자 운전수로 짧게 출연했던 한국계 미국배우이자 지오디의 맏형 박준형은 <드래곤볼 에볼루션>에서 야무치 역으로 출연했다. 원작에서 손오공의 첫 번째 라이벌이자 '공식 전투력측정기'였던 야무치는 <드래곤볼 에볼루션>에서는 손오공 일행을 함정에 빠트렸다가 동료가 되는 조연캐릭터로 나왔다. 안타깝게도 영화에서는 야무치의 액션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아 시그니처 무술인 '낭아풍풍권'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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