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 이즈 어프레이드> 스틸컷 ⓒ 27th BIFAN
아리 에스터는 <유전>, <미드소마> 단 두 편의 호러영화로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오른 감독이다. 한국영화에 깊은 영감을 받았다며 꾸준한 애정을 표현해 온 그는 신작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홍보를 위해 내한을 결정했다. 그의 세 번째 장편영화는 악몽 코미디 장르로 초현실적인 여정을 블랙코미디의 색감으로 담아냈다. 이전 작품들이 호러라는 장르적 범주 안에서 높은 완성도를 선보였다면 이번에는 아방가르드에 가깝다.
이 남자가 겪는 사건은 어머니와 관련되어 있다. 아버지의 기일 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보는 기이한 사건을 연달아 겪는다. 조용히 자고 있던 자신에게 이웃이 층간소음을 호소하더니 짐과 집 열쇠를 훔쳐 달아난다. 카드는 정지되고 동네 사람들이 집안으로 들어와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다. 이런 상황 때문에 가지 못하겠다는 보에게 어머니는 넌 언제나 그래왔다는 식으로 답한다. 보는 어머니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마치 '돈키호테'와 같은 여정을 떠난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이 작품을 소설 '돈키호테'에 비유하며 초현실적인 표현력과 피카레스크의 장르적 묘미에 대해 극찬한 바 있다. 풍차를 마법사가 보낸 거인이라 생각하고 달려든 돈키호테처럼 보는 왜곡된 정신과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때문에 관객들은 보의 시선을 통해 그 여정을 체험한다. 이 왜곡은 제목 그대로 보가 지닌 세 가지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세 가지 두려움
▲ <보 이즈 어프레이드> 스틸컷 ⓒ 27th BIFAN
먼저 어머니에 대한 두려움이다. 도입부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는 보를 낳는 모나의 출산장면이다모나는 뱃속에서 나온 아기가 바닥에 떨어지자 화를 낸다. 이 장면은 왜 모나가 아들을 강하게 통제하는 어머니가 되었는지 짐작하게 만든다. 보는 세상으로 나오는 통로에서부터 안정적이지 못했다. 때문에 모나는 자신의 품에 아들을 가두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보가 순수함과 죄책감을 동시에 지니게 된 이유다.
보는 모나의 과잉보호로 아이와도 같은 순수한 면모를 지닌다. 온전한 어른이 되지 못한 보는 통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죄책감을 느낀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이 머물 공간을 찾지만 매번 실패한다. 영화 초반 물을 조심하라는 심리치료 상담사의 말은 결국 보가 양수와도 같은 어머니의 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두려움을 암시한다.
다음은 남근에 대한 두려움이다. 남근은 예로부터 풍요와 다산, 부귀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모나의 품에서 벗어나 홀로 사는 보는 빈곤과 고독 속에서 지낸다.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통제는 보의 남성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영화 후반부 천장 다락방에 위치한 남근의 모습을 한 괴물의 등장은 다소 노골적이지만 확실하게 이런 점을 보여준다. 다락방은 어린 시절을 상징하며 남근에 대한 공포가 지금의 보를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다.
▲ <보 이즈 어프레이드> 스틸컷 ⓒ 27th BIFAN
마지막은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다. 영화의 메인 포스터에는 네 명의 보가 있다. 어린 시절과 지금의 모습이 현재라면 땅을 일구고 가족을 꾸리는 가상의 보와 노년이 된 보는 상상 속 존재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상상 속 존재에서 알 수 있듯 보는 현재와는 다른 삶을 꿈꾼다. 문제는 과거와 현재의 자신이다. 어린 시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보는 여전히 두려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기묘한 여정이 보의 상상이라면 그가 겪는 실패와 좌절 역시 스스로 내린 결말이라 볼 수 있다. 본인을 통제하는 대상에게서 도망치려 하지만 끊임없이 붙잡히는 모습은 상상 속에서 다른 자신을 꿈꾸지만 결국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공포가 담겨있다.
아리 에스터는 이 작품에 대해 일종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언급한 바 있다. 가족의 품을 떠나 어른이 돼야 한다는 데 누구나 막연한 두려움을 느낀다. 감독은 이 보편적인 정서를 통제욕구가 강한 어머니에게 짓눌린 아들의 죄책감을 통해 흥미롭게 표현해 냈다.
감독은 이 영화가 크게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며 좋아하는 쪽과 싫어하는 쪽이 격렬한 다툼을 벌이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영화를 좋아하는 쪽이 승리를 거두기를 바란다는 그의 소원이 한국에서 이뤄질 수 있을지 그 결과가 주목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키노라이츠 매거진과 김준모 기자의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