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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것도 서러운데 직장도 잃는다고요?

[지역 노동안전 내비게이션] 사업주 직장복귀계획서 제출 제도 도입에도, 어렵기만 한 산재 노동자 원직장복귀

등록|2023.07.03 09:35 수정|2023.07.03 09:35
이런저런 이유로 산재를 신청한 환자들이나 요양 중인 환자들을 만나는 게 나의 일이다. 의미 있고 보람 있을 때도 많지만 종종 무력감에 빠지기도 한다. 몇몇 사례들은 시간이 한참 지나도 마음에 잔상을 남긴다.

우리나라 산재 환자의 직장 복귀율은 수년째 70% 남짓이며, 원직장 복귀율은 50%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매우 지지부진하고 부족한 점이 많지만, 내가 일하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 환자들의 원직장 복귀를 위한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산재 환자 복귀를 위해 의료진이 사업장에 개입을 시도한 지 4년여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2022년 사업주 직장복귀계획서 제출 제도(업무상 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의 사업주가 소속 산재 노동자에 대한 복귀 계획을 작성해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하는 제도)가 정식 도입되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활용한 사업장에서 85.6%의 복귀율을 보였다는 자료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직장 복귀 과정은 쉽지 않다.

산재 환자들이 직장에 복귀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훨씬 높은 담을 넘어야 한다. 나와 우리 팀은 그 담을 넘기 위해 때로는 사다리를 놓고, 때로는 개구멍을 뚫기도 하고, 때로는 담을 부수기 위해 연장을 들기도 하는 조력자 역할을 한다.
 

▲ 노동자의 원직장복귀에 있어 사업주의 영향이 매우 크게 작용한다는 점은 너무 자명하다. 한국에서 여전히 원직장복귀는 어렵지만, 비용이 아니라 권리로 인식하게 될 날이 언젠가 온다고 믿는다. ⓒ "산재환자 원직장복귀의 최신 지견과 우리의 역


지난했던 소규모 반도체 사업장 노동자의 원직장 복귀 시도

최근 1년간 반도체 부품업체에 근무하다 업무상 사고로 요추간판탈출증을 진단받고 요양한 30대 남자 노동자의 직장 복귀를 도왔다. 회사에서 30kg가량의 장비를 들다가 다쳤고, 수술 후 급히 복귀했다가 통증이 심해 다시 요양하게 된 사례였다.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의료진이 회사에 방문하는 것을 사장이 완강히 거부했다. 수개월간 여러 차례 전화하고 설득한 끝에 겨우 회사에 방문해 직무분석을 진행할 수 있었다. 환자는 만성화된 요통을 호소하고 있었지만, 의학적으로 통증 관리 이외에 더 이상의 적극적 치료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일환경 건강센터와 협업하여 요추 부담 업무를 보조하는 웨어러블 장비도 지급할 예정이었다. 생각보다 업무 강도가 높지 않고 작업환경개선도 용이해 노동자가 복귀하는 데에 큰 무리가 없겠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사업주는 면담 도중 "요양 기간 중 이미 대체 인력을 뽑았다", "허리가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복귀하면 동료들이 힘들어하고 팀워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일하다가 다시 아플 수도 있는 것 아니냐"라며 대놓고 난색을 표했다.

노동자가 일했던 공장은 직원 수가 20명도 채 되지 않는 소규모업체였다. 인력을 여유 있게 운영하지 않은 채 수시로 사람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사업주에게 "대체인력지원금"(상시 노동자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산재 노동자 대체 인력을 신규 고용하여 30일 이상 고용을 유지하고, 산재 노동자를 원직에 복귀하여 30일 이상 고용을 유지할 경우, 공단에서 사업주에게 지원금을 지급하는 제도)에 대한 설명도 하고, 일하다 아픈 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설득도 했다.

끈질기게 설명하고, 업무가 가능한지 적응 훈련이라도 해보자고 얘기한 끝에 드디어 "알았다"라는 답변이 왔다. 환자가 회사에 방문하여 복귀를 위한 준비를 시작할 수 있도록 일정 조율도 완료했다. 하지만 환자가 복귀를 위해 회사를 방문할 때 의료진이 동행하지 못한 게 문제로 작용했다.

사업주는 "왜 왔냐"라고 했고, 동료들은 본인을 투명 인간 취급했다고 한다. 사업주는 "일단 산재가 종결되더라도 허리가 100% 나아서 하나도 아프지 않으면 오라"라고 했다. 하나도 안 아프면 오라고? 그런 게 어디 있단 말인가? 오지 말라는 이야기를 그런 식으로 하다니, 분노가 치밀었다.

결국 환자는 회사의 압박을 극복하지 못하고, 사업주의 권유에 따라 요양 종결과 함께 무급 병가 휴직했다(제도적으로 종결을 하는 순간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사라진다).

여전히 어려운 원직장 복귀, 그럼에도 품는 희망

종결되고 한 달 정도가 된 시점에 장해진단을 위해 환자가 방문했다. 종결 후 무료한 날들이 계속되고 있지만 나름대로 일정을 만들어 활동하고, 심리적으로 힘들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하냐 물었는데, 회사에서 "언제든 나으면 다시 채용해줄 테니 일단 사직하는 게 어떻겠냐, 사직해야 실업급여라도 받을 수 있지 않냐"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권고사직은 아니고 자발적 사직으로 하라고 했다고 한다. 회사가 노무사 조언을 받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복귀를 원하지 않는 회사를 상대하는 것이나, 산재 환자를 케어하는 것도 높은 벽인데, '전문가'가 그런 조언을 했다고 생각하니 벽 위에 철조망이 생긴 느낌이 들었다. 분노와 무력감이 동시에 몰려왔다. 전해 들은 이야기이니, 제발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2022년 기준 산재 노동자의 원직장복귀율은 45.3%다. 영세하다는 이유로 인력을 여유 있게 운영하지 않는 소규모 사업장의 특성, 복귀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작업 환경 때문에 다시 퇴사하게 되는 상황 등, 원활한 복귀를 위한 과제는 여전히 많다.

쉽고 편해서 계속한 건 아니었다. 어려운데 해내고 나면 노동자들이, 가족들이 웃으니까, 우리가 뭐라도 하면 한 명이라도 덜 다칠 수 있으니까. 그래서 팀원들과 함께 안간힘을 쓰며 지내온 시간이었다. 난 믿고 싶다. 다른 사람의 삶을 망치는 데 조력하는 전문가는 아주아주 극소수이고, 사업주들의 인식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더디더라도 계속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에 걸렸을 때 당당히 치료받고 환영받으며 복귀하는 분위기, 사업주들이 아주 당연하게 안전보건에 투자하는 분위기가 언젠가는 만들어질 거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김은경 님은 경기남부 근로자건강센터의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이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후원회원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6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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