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 담당 편집기자로 일하며 더 좋은 제목이 없을까 매일 고민합니다. '우리들의 삶'을 더 돋보이게 하고, 글 쓰는 사람들이 편집기자의 도움 없이도 '죽이는 제목'을 뽑을 수 있도록 사심 담아 쓰는 본격 제목 에세이. [편집자말]
갑작스러운 사고, 천재지변, 선거와 같은 정치 이벤트, 사회 이슈가 터지는 날에는 소위 '기사를 쳐내기' 바쁘다. 어떤 제목이 나을지 여러 개의 가짓수를 놓고 고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나올 수 있는 실수를 줄이는 게 나한테는 제일 중요했다.
▲ 사는이야기들은 그냥 흘러가게 두지 않고 마음에 남기고 싶었다. 제목에 더 공을 들이게 된 이유다. ⓒ elements.envato
그 와중에도 고민은 있었다. 모든 영역을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과 동시에 잘 해내지 못한다는 마음 사이에서 나는 때때로 괴로웠다.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일하는 부서에서 내가 그나마 잘하는 것은 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교정 교열, 비문 잡기, 제목 뽑는 일도 편집이지만, 기획도 하고, 글쓰기도 있는데 그 다양한 영역에서 내 무기로 삼을 만한 것이 뭘까? 생각하면 당장 떠오르는 것이 없어 불안했고 불안한 만큼 반드시 뭐라도 찾아내야 할 것 같았다. 왜? 나는 10년차를 넘어가고 있었으니까. 적어도 2~3년차의 고민과 같을 수 없다. 같아서도 안 되고.
일단 나는 어떤 뉴스를 좋아하는지 생각했다. 뉴스 기사 보는 일을 10년 이상 해 왔는데, 내가 어떤 뉴스를 좋아하고 또 좋아하지 않는지 시간을 들여 깊이 따져본 적은 없었다.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 뉴스는 아니었다.
하루도 똑같지 않은 날씨만큼이나 변화무쌍한 게 뉴스다. 오전이 다르고, 오후가 다르고, 저녁이 다르다. 어떨 땐 새벽에도 상황이 변한다. 그 상황이 하루를 지나 이틀, 일주일, 한 달 이상 가는 경우도 많다. 그걸 쫓아가는 일이 나는 하나도 재밌지 않았다. 정치, 사회 기사의 제목을 다는 일도.
그런 기사의 제목에는 내 생각이나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창의적으로 담아내기 어려웠다. 정치인의 발언이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소식을 정확하게, 그저 남들보다 더 빨리, 어떻게든 눈에 띄게, 많이 전할 방법을 찾는 게 더 중요하게 보였다. 뉴스의 속도를 따라잡기가 늘 버거웠다. 그 일을 할수록 내가 소모되는 기분이었다. 그런 소식들은 그냥 흘러가게 두고 싶었다.
반면 사는이야기와 같은 글을 볼 때는 조금 다른 감정이 생겼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글을 검토하면 나도 다정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었다.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어졌다.
독자들이 읽기 쉽고 이해하기 편하게 다듬어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겼다. 더 많은 독자들이 읽었으면 하고 바랐다. 사는이야기들은 그냥 흘러가게 두기 아까웠다. 내 마음에 차곡차곡 쟁여두고 싶었다. 이런 글의 제목에 더 공을 들이게 된 이유다.
제목만 보아도 독자들이 '한번 들어가 볼까?' 하는 마음을 먹게 만드는 독창적이고, 재밌는 그러면서도 내용을 잘 담고 있는 문장이 뭔지 계속 생각했다. "제목 좋네", "이 기사 제목 누가 뽑았니?"라고 칭찬을 들었던 제목들은 대부분 이런 종류의 기사들에서 나왔다. 그럴 때마다 속엣말이 들렸다. '이건 좀 재밌는데?'
그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분야별 전담 편집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메뉴 많은 식당을 떠올려 보라. 그런 집에 가면 나는 의심부터 든다. 이게 다 맛있을까? 기대보다 불안한 마음이 크다. 내가 선호하는 가게는 작지만 심플한 메뉴 두세 가지 있는 집이다. 왜? 가짓수가 적은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더 정성스럽게 만들 것 같아서다.
그런 가게 사장님처럼 일해보고 싶었다. 주력 메뉴 두어 가지만 자신 있게 선보이는. 사장도 고객도 만족할 수 있는. 그 메뉴가 나에게는 글쓰기와 사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두 가지를 관통하는 것이 제목이었고. 그 일을 해 온 시간이 벌써 5년도 넘었다. 그렇다면 이것을 내가 가진 무기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 일을 돌아보며 기록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거다. 그냥 두면 녹이 슬까 봐. 칼을 벼리듯 더 벼리고 벼리는 거다. 날카로움을 잃지 않는 칼처럼 나의 쓸모를 잃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이 글도 써 나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무기도 그냥 주어지는 법은 없으니까.
제목은 소통이었네
▲ 어느 출판사 대표가 '제목의 이해' 첫 번째 글 링크를 전 직원에게 보내 읽어보라고 권했단다. ⓒ elements.envato
얼마 전 한 모임에서 "편집기자님이 제가 지은 제목을 바꾸지 않으면 괜히 나랑 생각이 통했구나 싶어서 기분이 좋고 짜릿해요!"라는 말을 들었다. 제목으로도 글쓴이와 소통할 수 있고, 나아가 독자와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제목의 본질은 어쩌면 소통일지도 모르겠다. 제목만으로도 마음이 통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니 말이다.
광고인 박웅현은 <여덟 단어>에서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쓰면서 소통을 잘하는 법 한 가지를 소개했다.
"사람을 움직이고 싶고, 주변에 영향을 주고 싶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을 지니세요. 그러면 여러분의 소통은 성공적일 겁니다. 여러분은 누구나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졌어요. 소통을 잘하면 주변 사람들이 움직일 겁니다."
내 입장에서 보자면 '사람을 움직이고 싶고, 주변에 영향을 주고 싶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은' 것은 뉴스다.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은 제목을 짓는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다. 소통이 잘되도록 막힘없이 원활하고 부드럽게 그러면서도 활발하게.
그렇다면 제목으로 독자와 소통이 잘 되면 뭐가 좋을까? 내가 경험한 것 이상은 쓸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고 들어주면 좋겠다. 박웅현씨가 썼듯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주변에 영향을 준다'.
'제목의 이해' 첫 번째 글 제목을 기억하시는지? '20년차 편집기자가 제목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https://omn.kr/22ki6)'이었다. 어느 출판사 대표가 전 직원들에게 "이거 봤어?"라며 기사의 링크를 전달, 읽어보라고 권했단다. 그리고 기사에 나오는 '제목이 온다' 강의를 들어보라고 했다고. 그렇게 출판사 편집자 4명이 수업을 함께 듣게 되었다고 전해 들었다. 사람을 움직이고 주변에 영향을 주었으니 독자와 소통을 잘한 제목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뿐만이 아니다. 소통이 잘 된 제목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50대 고학력 여성의 마음을 흔든 구인 공고'나 '사이보그 가족의 밭농사, 이러고 삽니다'는 책의 시작이 된 글이다. 제목을 보고 글을 읽은 출판사 편집자로부터 출간 제안을 받은 경우다. 아무리 눈 밝은 편집자라도 모든 글을 다 살펴볼 수 없다. 눈에 띄는 제목 하나로 우연히 작가를 발굴하는 경우, 그렇게 기회를 잡게 된 작가는 지금도 무시로 많다.
제목으로 인한 소통의 효과 마지막은 '독자가 쓰는 사람이 될 때'다. 제목을 보고 들어와 사는이야기를 읽은 독자들이 '이런 글은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 단골 멘트다. 너무 자주 들어 식상할 정도다.
독자에서 쓰는 사람이 되는 것. 함께 읽고 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언제부터인지 편집기자 일을 하며 그 일을 지켜보는 것이 꽤 좋아졌다. 글로도 제목으로도 잘 소통하고 싶다. 제목의 본질에 충실하고 싶다. 그리하여 나와 내 주변에 근사한 변화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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