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미만 사업주는 불쌍하니 봐주자? 그럼 우리는요?"
[현장] '연차' 없어 영상 보낸 '5인미만' 노동자들의 성토대회 "근로기준법 차별 그만"
▲ "연차도 없습니다, 5인미만 회사라서요"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가 4일 서울 중구에서 직장갑질119가 주최한 증언대회에 영상 증언을 하고 있다. 그는 연차휴가를 쓰지 못해 이날 증언대회에 직접 참석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이 적용돼 연차휴가를 쓸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 김성욱
"대표는 제게 '머리로 생각하고 일하냐?'는 등 모욕적인 말을 서슴없이 했습니다... 근로자 수가 적은 데서 일한다고 왜 차별 받아도 문제제기를 못하나요..."
- 커피로스팅 회사 해고 노동자
"아직도 너무 생생해서... 꿈에서도 기억이 지워지지가 않아요. 직장 괴롭힘으로 적응장애 정신질환 진단까지 받았는데... 노동부는 '5인 미만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만 했습니다."
- 사회복지시설 해고 노동자
학원강사, 사회복지시설 복지사, 비영리사단법인·커피로스팅 회사 직원 등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이날 서울 중구에서 직장갑질119가 주최한 '5인 미만 직장인 성토대회'에 참석해 "그간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했다"고 울먹였다.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아 부당하게 해고되거나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도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모든 노동자가 차별 없이 근로기준법에 적용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현재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있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해고 제한도 없고, 부당하게 해고돼도 구제신청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2019년부터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적용 대상에서도 빠져있다. 연차유급휴가, 연장·야간·휴일수당도 없고 최대 근로시간 한도도 없어 저임금 장시간 노동 구조를 벗어나기 어렵다. 국내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300만~35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눈물 쏟은 노동자들 "5인 미만 차별 그만"
▲ 5인 미만 사업장인 한 커피로스팅 회사에서 일했던 해고 노동자가 4일 서울 중구에서 직장갑질119가 주최한 증언대회에 참석해 발언하다 눈물 흘리고 있다. 그는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이 전면 적용돼야 한다고 했다. ⓒ 김성욱
증언대회에 참석한 30대 학원 강사 A씨는 "4대 보험이 장기간 체납된 사실을 알게 돼 원장에게 문제제기를 했더니 얼마 뒤 갑자기 해고예고 통지서를 받았다"라며 "원장은 5인 미만 사업장은 해고가 자유롭다는 얘기만 하면서 '아무 문제 될 게 없으니 한 달 후 그만두라'고 통보했다"고 했다. A씨는 "학원 강사의 경우 학생들 방학에 맞춰 이직을 해야 때가 맞는데, 갑작스런 해고로 이직도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커피로스팅 회사에 다니다 지난 3월 해고된 B씨는 "대표의 언어폭력에 문제제기를 했더니 다른 직원들 앞에서 모욕을 주고 휴가 중 업무를 지시하는 등 괴롭힘이 더 심해졌다"라며 "왜 회사의 상시 근로자수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냐"면서 눈물을 쏟았다.
사회복지사인 C씨도 "보조금 유용 지시를 거부했더니 폭언, 해고 위협 등 지속적인 괴롭힘에 시달렸다"라며 "노동부에도 호소를 해봤지만 5인 미만에 대해선 할 수 있는 게 없다고만 했다. 대체 왜 5인 미만에서 일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차별 받아야 하나"라고 울먹였다. 연차를 쓰지 못해 이날 증언대회에 참석하지 못한 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영상 증언을 통해 "5인 미만도 연차휴가를 쓸 권리를 달라"고 했다.
집장갑질119 장종수 노무사는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상 해고 제한 규정 등이 적용되지 않아 아무 이유 없이 카톡으로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고 해도 해고가 이뤄지고, 이후 부당해고 구제신청도 할 수 없어 불합리하다"고 했다. 장 노무사는 "5인 미만 사업장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도 적용되지 않아 '눈빛이 이상하다'거나 '트레이닝 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이 괴롭힘과 해고 협박을 당하고 있다"고 했다.
"'5인 미만' 기준 근거 없어... 노동자 희생 강요 그만해야"
▲ 5인 미만 사업장인 한 커피로스팅 회사에서 일했던 해고 노동자가 4일 서울 중구에서 직장갑질119가 주최한 증언대회에 참석해 발언하다 눈물 흘리고 있다. 그는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이 전면 적용돼야 한다고 했다. ⓒ 김성욱
최근 여권은 대통령령을 바꿔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 범위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밝혀 주목받고 있다.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달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을 논의하겠다고 했다. 고용노동부 역시 올해 초 비슷한 계획을 발표했다.
다만 여권에선 해고 제한 규정 등까지 포함해 처음부터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하는 대신, 연차나 휴일·야간수당 지급, 직장내 괴롭힘 금지 조항 적용 등부터 순차적으로 적용하자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직장갑질119 이선민 변호사는 "노동부와 국민의힘 노동개혁특위가 최근 5인 미만 근로기준법 적용을 확대하겠다고 했지만 실질적인 진척이 안 되고 있는 것 같다"라며 "근로기준법 '단계적 적용 확대'로 입장이 정리돼가고 있는 것 같은데,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에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이 전면 적용돼야 한다"고 했다.
직장갑질119 이미소 노무사는 "5인 미만을 기준으로 근로기준법 적용을 제외한 데에는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라며 "그저 5인 미만 사업장의 사업주가 불쌍하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자들이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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