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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법관, 검찰총장 앞에서 "중앙정보부 같은 운명 될 것"

'유튜버' 박일환 전 대법관, 대검 초청 강연에서 "검찰이 너무 1차 수사에 나서면..." 쓴소리

등록|2023.07.05 16:38 수정|2023.07.05 16:38

▲ 박일환 전 대법관이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초청강연에서 ‘사회의 변화와 법의 역할’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일환 전 대법관이 이원석 검찰총장과 대검 간부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검찰이 너무 1차 수사에 나서면 중앙정보부와 같은 운명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시행령에 의해 소위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이 된 상황에서 검찰의 직접 수사권 행사에 비판적인 견해를 밝힌 것이다.

그는 또한 1990년대 검찰이 반대했지만 구속영장실질심사 제도가 도입돼 인권 보호가 강화됐던 상황을 자세히 언급했다. 대법원의 압수수색영장 대면 심리 추진에 대한 검찰 반대를 겨냥한 것으로 읽힌다.

박 전 대법관은 5일 오전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DFC)에서 '사회의 변화와 법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대검 주최 초청 강연으로, 이원석 검찰총장과 대검찰청 간부 등 대검 직원 수십여 명이 참석했다.

1978년 판사를 시작해 2006~2012년 대법관을 지낸 박 전 대법관은 현재 구독자 14만5000명을 가진 채널 '차산선생법률상식'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옛날에 검사를 지게꾼이라 했다"

박 전 대법관은 이날 시대 변화에 따른 민법 판례 등의 변화를 소개했다. 그 과정에서 "옛날에 검사를 지게꾼이라고 했다"면서 검찰 얘기를 꺼냈다. "업·폭·절, 즉 업무상과실치사상(교통사고)·폭력·절도가 형사사건의 70%를 차지했다. 사법경찰관이 (사건 기록을) 가져다 놓으면 (검사는) 다시 법원에 옮겨주는 지게꾼이라는 농담 비슷한 표현을 썼다"면서 "제가 검찰 시보할 때 상해 (진단) 4주가 나오면 일단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라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는 영장실질심사로 옮겨갔다. "옛날에는 그냥 경찰서에서 조사해서 (사건 기록이) 검찰청에 오면, (검사는) 읽어보고 간혹 기각하고 남은 건 법원에 보낸다. 법원은 그것만 보고 (구속영장을) 발급했다"라고 지적했다.

"윤관 대법원장(1993~1999년 재임 - 기자 주)이 외국에서는 구속영장을 발부할 때 피의자가 판사 앞에 가서 자기 사정을 얘기할 기회를 가지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아서 영장이 너무 많이 발급되는 것 아니냐면서 연구해보라고 했다. 영장실질심사를 해보자고 하니, 검찰에서 반대가 많았다."

그는 "그때 당시에 (1년에) 14만 명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면서 "(영장실질심사가 시행중인) 지금은 (구속영장 청구 대상자가) 4만 명이다. 획기적으로 변화된 것"이라고 밝혔다.

박 전 대법관의 이 발언은 최근 대법원이 압수수색영장 남발을 막기 위해 대면 심리를 추진하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은 수사 상황 노출, 수사 지연 우려 등의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현재 인권 보호제도로 자리를 잡은 영장실질심사가 1990년대 도입 당시 검찰이 반대한 상황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이 너무 1차 수사에 나서면... 중앙정보부와 같은 운명될 것"
 

▲ 이원석 검찰총장이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박일환 전 대법관의 초청강연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검찰에 대한 공개 쓴소리는 질의응답 시간에 더 분명해졌다. 강연 말미 향후 검찰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묻는 질문이 나오자, 박 전 대법관은 1960년 4.19 혁명 직후 잠시 존재했던 법무부 산하 중앙수사국 얘기를 꺼냈다.

그는 당시 경찰을 두고 "총 가진 기관이 수사까지 가져가서 너무 국민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반성적인 고려에서 (경찰) 수사권을 박탈했다. 그래서 중앙수사국을 만들었다"라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사람까지 다 뽑았는데, (5.16 쿠데타 이후) 중앙정보부를 만들면서 (중앙수사국은 수사권을) 뺏겨버렸다. (중앙정보부는) 3~4공화국 18년간 정보도 하고 수사도 했다. 장단점이 있었다"면서 "그때 검찰은 크게 역할을 못했지만, 1980년대 이후 중앙정보부가 힘을 못쓰니까 검찰이 법대로 하자(면서 수사 주체로 나섰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수사기관의 변천사를 간략히 짚은 박 전 대법관은 이렇게 말했다.

"(현재) 검찰에 있는 선배들, 법무부 장관 하신 분들께 여쭤보면, 검찰이 너무 1차 수사에 나서면, 결국 나중에 똑같은 운명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것을 어떻게 적당하게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는 "수사를 누가 하느냐는 것인데, 국무위원이 아닌 부처는 책임이 없다. 국회에서 탄핵할 수도 없고, 해임건의도 할 수 없다. 국무위원이 책임질 수 있는 (부처의) 소속이 돼야 한다"면서 "미국처럼 법무부에 수사기관과 검찰기관을 둘 것인지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그는 "지금 현직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것은 꼭 그것이 맞다거나 옳고 그르다는 문제가 아니고, 어느 것이 더 우리나라에 적합하고 국민들 인권을 더 보호해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면서 "이런 기관을 만들어서 일반 사건은 자치 경찰 등에서 (수사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 전 대법관은 지난해 12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도 중앙수사국 이야기를 꺼냈는데, 검찰의 1차적 수사권 행사에 비판적이었다. 그는 "(1980년대) 중앙정보부 수사권이 약해지면서 검찰이 수사의 주체가 됐다. 그러나 검찰이 1차적인 수사를 하면 할수록 많은 인권침해의 우려가 증폭됐다"면서 "견제할 기관은 법원밖에 없는데, 법원은 공소제기된 사건만 재판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 대표적인 사례로 서울중앙지검에서 벌어진 피의자 상해치사 사건을 언급했다.

그는 "근본적으로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나누는 것이 옳지 않나 (생각한다)"면서 "(그렇게) 나눈다고 하더라도 기소권 가진 사람이 수사를 하지 않고는 최종적인 기소·불기소 결론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에 그 범위 내에서 보충적인 수사권을 행사하는 것도 옳지 않나 생각을 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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