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염 사러 1시간 30분을 돌았습니다
알타리 김치를 담그려는데 마트에 소금이 없다니
밤부터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었다. 일요일이라 도로가 번잡할 걸 알지만 집을 나섰다. 비 오는 날 다니는 것보단 덜 번거로울 것이란 생각에. 시내에 볼일이 있었다. 장바구니를 챙겨 차에 오르니 남편이 "마트에 가게?"라고 물었다.
"오늘 길에 들릅시다. 우유가 똑 떨어졌어."
매일 아침 요구르트를 먹는다. 요구르트 만드는 기능이 있는 제빵기를 이용하면 몇 일분을 두고 먹을 수 있다. 볼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장을 보러 갔다.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농협 하나로 마트로. 1, 2층은 매장, 3~5층은 주차장으로 인근에선 꽤 큰 편이다.
우유와 두부, 계란 정도만 사 올 생각에 혼자 매장으로 내려갔다. 미리 적어 둔 물건을 사고 한 바퀴 더 둘러봤다. 그러다가 몇 가지를 더 샀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내 장보기도 그렇다.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굳이 갔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있는 것처럼. 때로는 묶어 파는 물건을 욕심부려 구입하고, 꼭 필요하다 싶어 구입했는데 소용에 닿지 않는 일도 있었다.
카트엔 당당한 우유와 두부 옆에 목록에 없던 고등어와 애호박, 양파가 구석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뻘쭘하니 앉아 있었다. 계산대 쪽으로 나오고 있는데 앞사람이 진로를 방해했다. 간신히 비집고 지나오면서 힐끗 쳐다봤다. 뽀얗게 다듬어진 고랭지 알타리. 그 순간 알타리와 나 사이에 강력한 전류가 통했다.
내 손은 어느새 자연스럽게 알타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매끈하고 통통하니 잘 생겼다. 게다가 가격까지 마음에 들었다. 카트에 담으려는 순간 멈칫했다. 가져가면 사서 고생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거부할 수 없는 이유가 생각났다. 다음주에 아들이 온다고 했다. 설에 다녀간 후 일주일에 한두 번 목소리만 들려주는 유정한 녀석.
자취를 하고 있으니 뭐라도 챙겨 주고 싶은 엄마 마음이었다. 고민 따위는 가라. 냉큼 두 단을 카트에 담았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은 알타리를 다듬고, 씻어 자르는 번거로움은 안중에도 없었다. 풀을 쑤고 김치 양념을 만드는 모든 과정은 생략되고 말았다. 오직 때깔 좋고 먹음직스럽게 잘 익은 알타리 김치만 떠올랐다. 사냥에 나선 전사들이 멧돼지라도 잡은 것처럼 만족스러웠다.
계산대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렸다. 천일염을 사야 했다. 남은 양으로 알타리를 절이기에 부족할 듯싶었다. 5킬로그램 짜리를 살 생각이었다. 카트가 무거워져 운전하기가 마뜩잖았다. 낑낑대며 소금이 놓여 있는 곳으로 갔다. 없었다. 평소 가격대가 다른 세 종류의 소금이 진열되어 있음을 분명히 아는데 매대가 텅텅 비어 있었다.
이게 뭔 일이래. 1킬로그램 봉지가 진열되어 있던 윗 칸으로 눈을 돌렸다. 이번에도 없었다. 그때서야 생각이 났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인한 불안감 때문에 천일염을 사두는 사람이 많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덧붙여 소금 가격이 많이 올랐다는 얘기까지. 매대가 텅 빈 걸 보고서야 안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사람이 많이 찾는 대형마트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집 근처 다른 매장에 들렀다. 천일염만 없었다. 난감했다. 알타리 무를 샀으니 김치는 담가야 하는 데. 할 수 없이 집을 지나쳐 인근 읍 소재지로 갔다. 그곳에 큰 마트와 식자재 마트가 나란히 있었다. 30분을 달려 도착한 마트의 천일염 매대 역시 텅텅 비어 있었다. 허탈했다.
얼굴이 달아오르며 등줄기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바로 옆의 식자재 매장으로 가는 짧은 순간이 천리나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있다. 있어. 평소 사용하던 제품이 있었다. 소금을 보고 이렇게나 반가울 일인가. 1시간 반 만에 천일염을 샀다.
여태껏 소금 귀한 줄 모르고 살았다. 소금이란 말의 어원이 소(牛)나 금(金)처럼 귀한 물건, 작은 금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데 너무 흔해서 소중하다는 걸 잊고 지냈다. 지금 사람들이 걱정하는 천일염은 바닷물을 햇볕과 바람에 증발시켜 만든다. 우리나라에선 천일염의 쓰임새가 많다.
간장, 된장을 담그거나 김치, 젓갈류, 생선을 절일 때도 주로 사용한다. 나 역시 김치를 절일 때 천일염을 쓴다. 천일염의 주 생산지는 전남 신안군 일대이다. 사람들의 불안이 가중되는 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건강한 먹거리, 믿을 수 있는 식품을 원하는 국민들의 소박한 바람이 무시되지 않았으면 한다.
90분을 돌아다니며 어렵게 구한 천일염으로 알타리와 오이 깍두기를 담갔다. 가을에도, 내년에도 아무 걱정 없이 국내산 천일염으로 배추김치와 알타리 김치를 담글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 길에 들릅시다. 우유가 똑 떨어졌어."
우유와 두부, 계란 정도만 사 올 생각에 혼자 매장으로 내려갔다. 미리 적어 둔 물건을 사고 한 바퀴 더 둘러봤다. 그러다가 몇 가지를 더 샀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내 장보기도 그렇다.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굳이 갔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있는 것처럼. 때로는 묶어 파는 물건을 욕심부려 구입하고, 꼭 필요하다 싶어 구입했는데 소용에 닿지 않는 일도 있었다.
카트엔 당당한 우유와 두부 옆에 목록에 없던 고등어와 애호박, 양파가 구석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뻘쭘하니 앉아 있었다. 계산대 쪽으로 나오고 있는데 앞사람이 진로를 방해했다. 간신히 비집고 지나오면서 힐끗 쳐다봤다. 뽀얗게 다듬어진 고랭지 알타리. 그 순간 알타리와 나 사이에 강력한 전류가 통했다.
▲ 알타리김치어렵게 구한 천일염으로 담근 알타리김치 ⓒ 도희선
내 손은 어느새 자연스럽게 알타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매끈하고 통통하니 잘 생겼다. 게다가 가격까지 마음에 들었다. 카트에 담으려는 순간 멈칫했다. 가져가면 사서 고생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거부할 수 없는 이유가 생각났다. 다음주에 아들이 온다고 했다. 설에 다녀간 후 일주일에 한두 번 목소리만 들려주는 유정한 녀석.
자취를 하고 있으니 뭐라도 챙겨 주고 싶은 엄마 마음이었다. 고민 따위는 가라. 냉큼 두 단을 카트에 담았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은 알타리를 다듬고, 씻어 자르는 번거로움은 안중에도 없었다. 풀을 쑤고 김치 양념을 만드는 모든 과정은 생략되고 말았다. 오직 때깔 좋고 먹음직스럽게 잘 익은 알타리 김치만 떠올랐다. 사냥에 나선 전사들이 멧돼지라도 잡은 것처럼 만족스러웠다.
계산대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렸다. 천일염을 사야 했다. 남은 양으로 알타리를 절이기에 부족할 듯싶었다. 5킬로그램 짜리를 살 생각이었다. 카트가 무거워져 운전하기가 마뜩잖았다. 낑낑대며 소금이 놓여 있는 곳으로 갔다. 없었다. 평소 가격대가 다른 세 종류의 소금이 진열되어 있음을 분명히 아는데 매대가 텅텅 비어 있었다.
이게 뭔 일이래. 1킬로그램 봉지가 진열되어 있던 윗 칸으로 눈을 돌렸다. 이번에도 없었다. 그때서야 생각이 났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인한 불안감 때문에 천일염을 사두는 사람이 많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덧붙여 소금 가격이 많이 올랐다는 얘기까지. 매대가 텅 빈 걸 보고서야 안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사람이 많이 찾는 대형마트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집 근처 다른 매장에 들렀다. 천일염만 없었다. 난감했다. 알타리 무를 샀으니 김치는 담가야 하는 데. 할 수 없이 집을 지나쳐 인근 읍 소재지로 갔다. 그곳에 큰 마트와 식자재 마트가 나란히 있었다. 30분을 달려 도착한 마트의 천일염 매대 역시 텅텅 비어 있었다. 허탈했다.
▲ 천일염마트에서 구매한 천일염 ⓒ 도희선
얼굴이 달아오르며 등줄기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바로 옆의 식자재 매장으로 가는 짧은 순간이 천리나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있다. 있어. 평소 사용하던 제품이 있었다. 소금을 보고 이렇게나 반가울 일인가. 1시간 반 만에 천일염을 샀다.
여태껏 소금 귀한 줄 모르고 살았다. 소금이란 말의 어원이 소(牛)나 금(金)처럼 귀한 물건, 작은 금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데 너무 흔해서 소중하다는 걸 잊고 지냈다. 지금 사람들이 걱정하는 천일염은 바닷물을 햇볕과 바람에 증발시켜 만든다. 우리나라에선 천일염의 쓰임새가 많다.
간장, 된장을 담그거나 김치, 젓갈류, 생선을 절일 때도 주로 사용한다. 나 역시 김치를 절일 때 천일염을 쓴다. 천일염의 주 생산지는 전남 신안군 일대이다. 사람들의 불안이 가중되는 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건강한 먹거리, 믿을 수 있는 식품을 원하는 국민들의 소박한 바람이 무시되지 않았으면 한다.
▲ 오이 깍두기텃밭에서 재배한 오이와 부추로 담근 김치 ⓒ 도희선
90분을 돌아다니며 어렵게 구한 천일염으로 알타리와 오이 깍두기를 담갔다. 가을에도, 내년에도 아무 걱정 없이 국내산 천일염으로 배추김치와 알타리 김치를 담글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 스토리에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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