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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이라 불리지만... 실상은 콜 처리 기계?

[고물가 시대, 특고노동자는 어떻게 사나 ⑪]

등록|2023.07.07 16:00 수정|2023.07.07 16:29
특수고용노동자가 월 20일 일하고 천만 원 넘게 번다는 보수언론의 보도는 진짜일까?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정책연구원은 지난 5월 8개 직종 특수고용노동자 970명을 대상으로 '특수고용노동자 임금 불안정 실태 조사'를 했다. 그 결과 업종에 상관없이 개수임금제, 공짜노동, 각종 부대비용 및 본인 부담금 발생, 초 장시간 노동 등의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는 게 드러났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특수고용노동자의 실태를 연속 보도한다.[기자말]
대리운전노동자는 전국에 20여 만 명이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이며 플랫폼으로 일감을 받아 일하는 플랫폼 노동자이고, 출퇴근이 자유롭다고 해서 프리랜서 노동자로 불리기도 합니다.

대리운전업체와 고객은 우리를 사장님이라 부릅니다. 대리운전기사 서로 간에도 사장님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고객이 부르는 '사장님'에는 존중이 담겨 있는지 모르겠지만 대리운전업체가 부르는 '사장님'에는 고용관계를 은폐하고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마법이 숨겨져 있습니다.

서로를 사장님으로 부르지만... 대리운전기사의 현실

정부는 대리운전을 자율규제 산업으로 분류해왔습니다. 업체들은 절박한 대리운전노동자의 노무 제공을 통해 이윤을 얻어왔습니다.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20%~35%의 고율 수수료(사납금)와 각종 비용을 부과해 왔습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관리비, 출근비를 떼어가고 프로그램을 여러 개로 쪼개 각각 사용료를 받아 챙기기도 합니다. 기사 한 명 늘어날 때마다 돈이 되다보니 일부 업체들은 '기사 장사'에 혈안이 돼 '대리기사로 월 수입 700만 원을 벌 수 있다', '부업으로 일하고 싶을 때 일하면서 500만 원을 벌 수 있다'는 둥 절박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현혹하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서비스연맹에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리운전기사 각종 비용을 뺀 시간당 순수입이 8390원이고 정규직 노동자라면 받았어야 할 주휴수당, 4대보험, 퇴직금 등을 제하면 4250원에 불과했습니다.

대리운전노동자는 14시간씩 한 달 내내 쉬는 날 없이 일해도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기에 벅찹니다. 그래서 대리운전노동자는 2급 발암물질로 불리는 심야노동과 감정노동의 스트레스가 축적돼 건강이 악화되면서도 병원에 가거나 쉴 수 없습니다(참고 기사 : 시급이 6340원밖에 안 되는 노동자가 있다고?).
 

▲ 플랫폼노동자 최저임금 보장을 요구하는 전국대리운전노조 조합원 ⓒ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전국대리운전노조


얼마 전 동료 한 분이 말기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습니다. 다른 동료 한 분은 운행을 마치고 복귀하던 중 길에 쓰러져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름 모를 대리운전노동자들이 유명을 달리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쉴 수 있는 여유를 조금만이라도 내어줄 수 있었다면, 병원에 가고 치료를 받고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줄 수 있었다면 안타까운 죽음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대리운전기사의 최저생계, 안전을 보장하는 정책 필요 

누군가는 "대리기사가 무슨 최저임금이냐? 일한 만큼 버는 거지"라고 말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대리운전업체의 갑질과 고객 서비스의 이면에서 시들어가는 대리운전노동자의 삶을 위한 최저소득은 얼마여야 하는지 정부와 기업은 말하지 않습니다. 추가 운행, 대기, 노쇼 등 업체나 고객의 횡포로 보상받지 못하는 공짜노동까지 포함하면 대체 얼마를 받아야 할까요?

미국 뉴욕시는 최저표준운임을 보장할 뿐 아니라 우버 기사가 승객을 태우고 있지 않은 시간도 운임을 정할 때 고려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대리운전노동자에게 최저표준운임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 인간으로서 살 수 있게 기본적인 생계를 보장해야 합니다.

2019년 12월 한국 소비자원의 대리운전 안전실태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속도위반이 가장 많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부족한 수입을 채우려 한 콜이라도 더 타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과로와 과속은 대리운전노동자와 고객뿐만 아니라 다른 시민의 안전을 위험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대리운전 차량의 교통사고는 2017년 158건(사망 2명, 부상 288명), 2018년 157건(사망 3명, 부상 314명)이 발생했습니다.

대리운전기사는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필수업무종사자이기도 합니다. 대리운전 이용자는 하루 약 50만 명.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1226명이 사망했다는 통계만 봐도 대리운전이 안전 문제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하는 대리운전노동자가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피곤해도 쉬지 못하고 허벅지를 꼬집으며 졸음운전을 한다면 시민의 안전 또한 위협받게 될 것입니다.
 

▲ 플랫폼노동자 최저임금 보장을 요구하는 전국대리운전노조 조합원 ⓒ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전국대리운전노조


대형 플랫폼 기업과 골목 상권으로 둔갑한 중소 대리운전 업체들은 대리기사를 쥐어짜기 위한 경쟁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들에게 대리기사는 고장 나면 버리는 콜 처리 기계에 불과한 것 같기도 합니다. 실제로 대리기사가 일하다 다치거나 죽어도 대리운전업체는 제대로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리기사들은 7월 1일부터 산재보험이 시행된다는 소식에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일부 대리운전업체 연합이 산재보험료를 대리기사에게 전가하려고 사납금인 수수료를 인상하겠다고 합니다. 수수료 인상이 시행되면 대리기사는 이전보다 더 많이 더 빨리 이동해야 합니다. 과로와 과속으로 대리기사의 건강과 시민의 안전은 더 위협받게 될 것입니다.

정부는 대리기사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해 나서야 합니다. 대리기사에게도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대리운전업체의 갑질 횡포를 근절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서비스연맹 전국대리운전노조 김주환 위원장이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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