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왕자의 추태? '킹더랜드' 해명이 더 위험한 까닭
[주장] K-콘텐츠의 잘못된 타 문화권 묘사, 글로벌한 비판이 필요하다
▲ <킹더랜드> 속 '사미르'의 모습 ⓒ JTBC
넷플릭스 비영어권 드라마 부문 1위 <킹더랜드>가 글로벌한 혹평을 겪고 있다. 미국 영화 비평 사이트 IMDB에는 '다른 문화권에 대한 존중이 없다', '잘못된 인물 묘사에 실망스럽다' 등 부정적인 평가가 이어졌다. 지난 8, 9일에 방송분에 담긴 '문화 왜곡'이 그 이유다.
지난 8일에는 극 중에서 세계 부자 순위 13위인 아랍 왕자 '사미르'를 킹호텔 VIP 고객으로 모시기 위해 주인공 구원(이준호 분)과 천사랑(임윤아 분)이 고군분투하는 에피소드가 그려졌다. 그러나 <킹더랜드>는 '사미르'를 바람둥이에 남자 주인공 구원보다 부족한 캐릭터로 그려냈다. 대한민국 최고 호텔이라면서 어째 '킹호텔'의 VIP 대우는 실망스러운 걸까.
사실 '사미르'는 캐릭터 설정부터 문제적이다. 이를 연기한 배우 아누팜 트리파티는 인도 출신으로 <오징어게임>에서는 파키스탄 외국인 노동자를 연기하여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서남아시아와 북부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아랍권과 인도는 분명히 다른 문화권이지만, 제작진은 아랍왕자 캐릭터를 인도 출신 배우가 연기하게 했다. 이는 문화권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반화된 이미지를 답습한 캐스팅이었다.
첫 등장 장면에서 사미르는 술집에서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구원의 전화를 받는다. 호텔에 도착해서는 처음 본 천사랑에게 추파를 던지며 호감을 표현한다. 정작 중요한 미팅은 '너희 나라 전투기 사주기로 하고 빨리 끝났다'며 무신경한 모습이고 오직 그의 관심사는 천사랑이다. '아랍 왕자', '세계 부자 순위 13위'라는 캐릭터 특징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종일관 가볍게 행동하는 바람둥이다.
사미르는 호텔에서 우연히 궁궐 사진을 보고 대뜸 천사랑과 함께 놀러 가겠다고 말한다. 그곳에서 진행되는 전통혼례 체험을 천사랑과 하고 싶다는 것. 그러자 구원은 사미르에게 '우리는 백의민족이라 중요한 인물은 하얀 옷을 입는다'며 평범한 백성이 입을 법한 복장을 건네며 자신은 왕의 의복을 입는다. 결국, 구원과 천사랑의 혼례 체험에 사미르는 빗자루를 내던지며 화를 낸다.
구원의 말도 안 되는 거짓말에 쉽게 넘어가는 '사미르', 남자 주인공을 멋있게 묘사하기 위해 '사미르'는 그저 도구로서 쓰였다. 게다가 한국 전통문화에 익숙치 않은 점을 이용해 외국인 캐릭터를 골탕 먹이는 장면은 마냥 웃을 수 없다. 자신이 VIP라는 점을 이용해 직원 천사랑과 시간을 보내려는 행동도 그를 더욱 문제적인 캐릭터로 느끼게 한다.
특정 국가의 왕자로 묘사한 게 아니라고?
▲ '이 드라마는 아랍 문화권에 직접적으로 무례하다'는 해외 시청자의 평 ⓒ IMDb
이에 대해 JTBC 관계자는 10일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지역은 모두 가상의 설정이고, 사미르 왕자를 특정 국가의 왕자로 묘사하지는 않았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해외 시청자들은 '아랍 문화가 연상되어 불쾌하다'는 상반된 평이다.
시청자들은 아랍의 전통 의복을 입은 '사미르'가 아랍 문화권에서 적절치 않은 술집에서 노는 장면이 아랍 문화권과 더불어 이슬람의 종교적 측면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또한 '아랍', '무슬림' 등 서로 다른 민족적, 문화적 개념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여러 문화권의 요소를 불분명한 국적의 아랍 왕자 캐릭터에 부여한 것이 잘못된 방식이란 지적이다.
한국 콘텐츠의 잘못된 타 문화권 묘사는 이미 오랫동안 도마 위에 올랐다. 2017년 MBC <죽어야 사는 남자>에서 무슬림 캐릭터들이 이슬람교에서 금기시된 술을 마시고 비키니 수영복을 착용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21년 SBS <라켓소년단>에서는 인도네시아 배드민턴 팀과 팬들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로 도마에 올랐고 MBC <빅마우스>에서는 흉악범을 도발하기 위해 "너 같은 사이코 새X를 낳고 도대체 뭘 드셨냐. 똠얌꿍?"이라는 대사로 논란에 휩싸였다.
한국의 자랑스러운 'K-부심', 앞서 필요한 건
▲ 이슬람 문화 희화화로 비판 받은 MBC 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 ⓒ MBC
K-POP과 K-드라마 열풍으로 한국 콘텐츠가 여느 때보다 세계적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 문화의 인기에 자부심을 느끼기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타 문화에 대한 존중이다. 마치 할리우드에서 동양인을 '공부를 잘하고 머리에 부분 염색을 하는' 스테레오 타입으로 묘사되었을 때 우리가 불쾌한 것처럼 타 문화권 시청자 또한 마찬가지다.
잠깐의 재미를 위해 타 문화권 캐릭터를 희화화하거나 타 문화에 대한 세심한 존중이 없다면, 자랑스러운 K-콘텐츠의 인기는 시들기 마련이다. <킹더랜드>의 '킹' 받는 문화 왜곡을 비판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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