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실 문 밀고 들어갔다" 첫 남성 육아휴직자, 그 이후...
[리뷰] EBS 다큐멘터리K- 인구대기획 초저출생 4부 <조용한 혁명: 일, 가정, 시간>
▲ EBS 다큐프라임 - 초저출생 4부 <조용한 혁명: 일, 가정, 시간> ⓒ EBS
프랑스, 독일, 스웨덴 이들 국가들의 공통점이 뭘까? 20세기 중반까지 이들 나라는 출산율 하락으로 소문난 국가들이었다. 프랑스 사람들이 애를 안 낳는데 라는 말은 미디어를 통해 한 번쯤은 들어보지 않았을까? 그랬는데 프랑스 1.8명(2022년), 독일 1.58명(2021년), 스웨덴 1.52명(2022년)으로 출산율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 그동안 '둘만 낳아 잘 기르자'며 인구 억제 정책을 하던 우리나라는 0.78명(2022년)이라는 저출생도 아닌 초저출생의 시대를 맞고 있다. 이들 나라와 우리나라의 '갭'은 어디에서 설명될 수 있을까?
10부작 초저출생 시리즈 중 4부 <조용한 혁명: 일, 가정, 시간>(6월 22일 방송)은 우리 사회 초저출생 문제를 접근함에 있어 그간 여성의 경력 단절이라는 문제에 집중했던 패러다임에 문제를 제기한다. 말 그대로 우리 사회에 '혁명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다큐는 주장한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들이 모였다. 그들의 삶이 어떻게 배분되고 있는지 빨간색의 일과 노란색의 육아 돌봄으로 구성해보기로 했다. 세 아이를 키우는 영식씨, 자영업자인 영식씨는 하루 15시간을 일한다. 거의 빨간색이다. 그 빨간색에 점처럼 붙여진 노란색 스티커, 세 아이 육아를 전담하는 아내가 피치못해 도움을 청하면 달려간다는 영식씨, 하지만 그마저도 손님이 오시면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10개월 딸을 키우는 워킹맘 송이씨는 어떨까? 오후 6시가 되면 아이는 연장 보육반으로 옮긴다는 송이씨, 그녀는 직장에 있어도 늘 마음이 편치 않다고 한다.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그녀, 지금 자신의 삶이 자신은 물론, 아이한테도, 심지어 회사한테도 좋은 건 아니라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모들의 일, 거기에 점점이 박힌 노란 스티커, 그건 우리 사회 부모들 가슴에 뚫린 구멍과도 같다고 다큐는 말한다.
2019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 남편들 일과 중 집안 일이나 자녀 돌봄의 비중이 0.8%로 나타난다. 반면, 아내들은 39%에 달한다. 아이가 아플 때 눈치보지 않고 달려나갈 수 없는 사회, 임신, 출산, 육아로 일을 그만두려고 고민하게 되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연구에 따르면, 출산율과 성평등은 U자형 계곡 형태 곡선의 관계를 보인다고 한다. '이행의 계곡 이론(The valley of transition)', 이전과는 다른 상태로 나아가는 과정 중 과도기의 제도적 불균형으로 인해 빚어지는 고통의 바닥이 바로 우리 사회 초저출생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출산율 상승세를 타고 있는 유럽의 국가 프랑스, 독일, 스웨덴에서 그 원인을 찾아보니 여성의 취업률 상승과 함께, 남성의 육아 참여도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즉 남성은 일, 여성은 돌봄이라는 전통적인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성역할의 분담이 변화되어야, 그래서 남성과 여성이 일하고 아이를 돌보는 데 있어 경계가 없어야 출산율이 변화된다.
아이를 같이 키울 수 있는 사회돼야
▲ EBS 다큐프라임 - 초저출생 4부 <조용한 혁명: 일, 가정, 시간> ⓒ EBS
다큐는 <언젠간 잘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라는 책을 낸 이른바 '신인류 직장인' 이동원씨를 소환한다. 수원에서 소문이 자자하다는 유별난 아빠라는 이동수씨는 2017년에 이어, 이번에 두번 째 육아 휴직 중이다.
둘째를 낳고 다시 시작된 육아 휴직, 덕분에 온 가족이 여유롭게 아침 식사를 한다. 딸의 등원 준비는 아빠 담당, 육아 휴직 덕에 아빠와 딸은 제일 친한 친구가 되었다. 처음 육아 휴직을 했을 때 주변에서 괜찮냐고, 걱정했다는데 육아 휴직을 통해 마이너스 통장이 생겼지만, 그래도 30대 때 가장 잘한 일을 육아 휴직이라 장담하고 다시 육아 휴직 중이다.
2023년에도 여전히 쉽지 않은 육아 휴직, 그렇다면 처음 육아 휴직을 한 남성은 어땠을까? 1996년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육아 휴직을 한 교사 김인호씨를 찾아가 본다.
1995년 법으로 남성 육아 휴직이 가능하게 되고, 사고를 당한 아내가 세 번째 아이를 낳고 돌볼 상황이 여의치 않자 김인호씨는 저돌적으로 교장실 문을 밀고 들어갔다고 한다. 이제는 퇴직을 해서, 네 아이와 함께 텃밭을 가꾸며 지내는 김인호씨는 육아 휴직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아이였지만 아이가 내가 돌봐야 할 대상인 줄 몰랐단다. 아픈 아내 대신 아이들을 돌보며 인생관마저 변화되었다는 김인호씨, 그래서일까 네 아이들에게 아빠는 무슨 일이든 다 얘기할 수 있는 친구같은 존재이다.
공무원 중 첫 육아 휴직을 한 이건표씨, 아내 없는 독박 육아를 한 첫날, 밥 숟가락에 눈물을 떨구기도 했다는데. 그래서 그는 가사노동비가 300만 원은 책정되어야 한다고 글을 쓰기도 했단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엉덩이를 뽀송하게 해주면 방긋 웃던 아기, 그건 20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절대 바꿀 수 없는 경험이라고 하면서도 되려 미안하다 덧붙인다. 자기는 안정된 공무원이라 가능했던 거라고.
김인호씨나, 이건표씨의 경우에서 보여지듯이, 우리 사회에서 아빠의 육아 휴직은 휴직을 해도 잘리지 않는 안정적인 직업군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또한 아내가 지지하고, 아내의 경력 단절이 없을 경우에 가능하다. 1996년에 시작된 아빠의 육아 휴직, 그렇다면 2023년까지 몇 명이나 되었을까?
2022년 3만 7885명의 아빠가 육아 휴직을 했다. 엄마들의 65.2%가 육아 휴직을 한 반면, 아빠들은 4.1%만이 휴직을 했다. 무엇보다 부정적인 직장 내 분위기가 크다고 한다(34.8%). 거기에 임금의 80% 정도에 해당하는 150여만 원을 지원받아도 소득 감소를 감당해야 하는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27.6%). 승진에 있어 불이익도 현실적이다(20.8%).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육아 휴직하는 남성은 TV에서나 봤다는 게 현실이다.
▲ EBS 다큐프라임 - 초저출생 4부 <조용한 혁명: 일, 가정, 시간> ⓒ EBS
무엇보다 여전히 육아는 여성의 일이라는 의식이 앞선다. 육아휴직을 신청하거나, 육아 부담을 적극적으로 나누려는 아빠들에 대해 회사에 열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조앤 윌리암스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여전히 기업이 이상적 근로자를 직장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으로 여기는 문화가 변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하는 아빠를 돌봄에 책임이 없는 사람으로 여기고, 이상적 엄마를 항상 아이 곁에 있는 사람으로 여기는 의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가정에 적대적인 회사와 사회가 있는 한 여성들은 '됐어, 이제 더는 못 참아! 아이를 낳지 않겠어'라는 결정에서 물러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연평균 근로 시간이 OECD 평균 200시간 보다 많은 우리나라, 법정 근무시간 주 52시간, 주 5일제를 기준으로 하루 10시간을 직장에서 보내는 한국인들, 출퇴근 시간까지 합하면 하루 12시간 정도를 집을 비운다. 18개월 아이를 어린이 집에 12~13 시간 맡기는 현실이 변화되지 않는 한 출생률의 변화는 기대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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