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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왕들이여, 우리는 필드에서 만납시다

[마지막회] 겁 많은 쫄보에서 호전적 '작은 고추'로, 변한 성격만큼 변화된 삶

등록|2023.07.15 11:32 수정|2023.07.15 11:32
살면서 단 한 번도 공을 만져본 일 없던 여성이 축구를 시작했습니다. 축구하면서 접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함께하면 이렇게 따뜻하고 재밌다고, 당신도 같이 하자고요. [기자말]
운동에 진심인 사람들의 말버릇이 있다. "나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는 나보다 더 해." 나 또한 방어기제의 일환으로 즐겨 내뱉는다. 언제 쓰냐 하면 PT 트레이너한테 공 좀 그만 차라고 혼날 때, 팀 코치 교사에게 공 좀 그만 차라고 혼날 때, 도수치료사에게 공 좀 그만 차라고 혼날 때(혼나는 인생이라 보면 된다)마다 나는 외친다.

"진짜로 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황소는(또는 연지는 또는 바우는 또는 우리 팀 애들은) 저보다 더 많이 찬단 말이에요!"
 

▲ 볼 돌리기 게임 중 ⓒ 오정훈


한 번은 폴댄스에 한창 삐져 있는 지인이 운동하다가 갈비뼈가 두 번이나 부러진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내심 '나는 저 정도는 아닌데' 안심했는데,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전 저보다 더한 사람 처음 봐요. 제 남편이 맨날 저보고 '과하다'고 혀 차는데, 지은님 존재 알면 좋아할 것 같아요."

왜 운동하는 이들은 서로의 극단성을 보며 안심하는가. 이 마음은 '저 사람보단 내가 낫지'라는 우월감의 일종이라기보다는 '나는 저만큼 하진 않으니 지금의 루틴을 유지해도 되겠지'라는 안심의 방어막이라 보는 편이 더 적절하다. '이 정도로 취미에 빠진 내가 엄청나게 이상한 사람은 아니구나, 나만큼(어쩌면 나보다) 더 이상한 사람이 저기 나타났다!' 하는 동질적 친근감.

물론 이런 마음은 운동하는 사람들끼리나 통용되는 것이다. 한여름에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서도, 한겨울 영하 15도 추위에서도 공을 차러 모이는 우리는 안다, 우리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서로뿐이라는 사실을.

'작은 고추'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 스트레칭 중. ⓒ 이지은


나를 처음 본 사람들은 대부분 '얼굴에 운동이 없는데?'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들이 바로 봤다.

축구를 하기 전 나는 뛰는 것, 땀나는 것, 소리 지르는 것, 몸을 부대끼며 힘을 겨루는 것 등 축구장 안에서 해야 하는 모든 것을 경멸했다. 눈앞에 타야 할 버스가 지나간다? 횡단번호 파란불이 깜박거린다? 뛰느니 다음 타이밍을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욕심이라는 감정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힘을 들여 내 몫을 탐내느니 좀 더 노력하는 다른 이에게 기꺼이 내주는 편이 낫다. 착해서라기보다는 싸우기 싫어서 그랬다. 한정된 에너지를 필요한 데에만 쓰고 싶었다.

이런 내가 지금은 매일같이 뛰어다니고, 구장 안에서 서로를 콜하느라 목청껏 소리를 지르고, 땀을 하도 흘려 가슴 쪽에 땀띠가 나고 상대편의 등만 보이면 내 자리를 넘보지 말라는 심정으로 한껏 밀어버려서 별명이 '작은 고추'가 되었다. 여전히 1대1 승부는 무섭지만, 그럼에도 전처럼 허무하게 지지는 않는다.

빼앗긴 몫을 되찾기 위해 최선을 다해 뛴다. 누군가 나를 제끼면 비틀거릴지언정 바로 다시 달려들어 만회의 기회를 노린다. 내가 비켜준 자리를 내 친구들이 메꾸어야 하는 상황을 만들 수 없기에 내 몫을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
 

▲ 풋살공 ⓒ 오정훈


그러니까 이 모든 움직임은 결국 함께하는 동료들을 위한 것이었다. 축구 없이 혼자 움직이던 때는 잘 뛰지도, 땀을 내지도, 소리 지르지도 않던 내가 너희를 위해서 발바닥이 아플 때까지 뜀박질하고, 땀으로 샤워를 하고, 내가 여기 있다고 너희 옆에 있다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나는 변했고, 이는 너희와 함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습이 꽤 마음에 든다.

축구왕 아닌 축구왕들이 있어서

이 칼럼 연재의 제목을 '언젠가 축구왕'으로 정했을 때는 내 성장만 기대했다.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축구왕은 혼자 될 수 없다. 함께 뛰는 내 친구, 매너 좋은 상대편 선수들, 열정과 애정으로 가르침을 주는 스승들까지 모두의 성장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축구왕'이 아닌 '축구왕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공을 차는 1년여 동안 정말 많은 이를 만났다. 몸 담았던 축구팀과 축구교실, 동네 풋살장에서 만난 인연들과 함께 몸을 부대낀 매치까지, 한 동네 사는 초등학생 2학년부터 고양시에 사는 주부까지, 나를 스쳐 지나간 축구인들을 곱씹어보면 못해도 200명은 족히 넘을 것이다. 그 수많은 이들의 얼굴을 가만히 떠올려본다. 과연 우리가 축구라는 매개가 없었다면 우리가 옷깃 한 번 스칠 수 있었을까?

지금은 내 성장뿐 아니라 당신들의 성장까지 함께 바라게 되었다. 내가 환갑 전에 축구왕이 될 일은 어쩌면 요원하지만, 당신들과 함께 근근이 성장하는 것이 축구왕의 덕목이라면, 어쩌면 가능할 것도 같다.
 

▲ 처음으로 관람한 여자 축구 게임. ⓒ 이지은


오늘이 이 글 연재의 마지막이다. 고맙다는 인사를 한 가지 더한다면, 함께 읽어준 여러분들 덕분에 계속 몸을 놀릴 수 있었다. 부상을 당해 재활할 때도 '축구왕 기사 쓰려면 얼른 나아야 하는데' 생각했으니까. 긴 시간 글을 읽어주고 응원해주며 내 성장에 기꺼이 동참해준 여러분들 덕에 지금의 내가 있다. 지금껏 읽어주어 고맙습니다. 우리는 필드에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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