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된 재앙 '초저출생', 답이 없지 이유가 없나요?
[리뷰] EBS 10부작 다큐멘터리 <인구대기획-초저출생>
2010년대 중반 한국사회를 휘어잡은 하나의 용어가 있다면 '헬조선'이 아닐까? '지옥'과 '조선'을 합친 이 합성어는 처음엔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사용되다가, 인터넷 바깥으로도 자주 사용되면서 한국 땅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헬'인지 자조하는 대표적인 표현으로 자리 잡게 된다. 실제로 많은 언론들이 특히 청년 세대의 삶이 얼마나 팍팍한지를 강조하기 위해 이 단어를 언급한 바 있다. 직접 이 단어를 쓰면서 알게 모르게 쾌감을 느꼈던 기억도 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단어의 인기는 사그라들었지만, 생명력은 끈질기게 유지되고 있다. 처한 상황이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헬조선만큼이나 잘 쓰였던 단어 중에는 연애와 결혼, 나아가 더 많은 것들을 포기하기 되는 청년 세대를 일컫는 'N포세대'가 있다. 이 역시 상황은 나빠지면 나빠졌지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당시 이 단어들의 유행과 생명력은 한국사회가 위기에 빠졌다는 걸 드러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위기경보는 울리고 있다. 우리, 괜찮은걸까?
0.78, 한국사회가 받아든 청구서
1960년 합계출산율은 6.16명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줄어들었다. 1983년에는 2.06명, 산아제한 정책을 폐지한 1996년은 1.57명으로 곤두박질쳤다. 올해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0.78명. 미래를 연구하는 서용석 카이스트 교수는 합계출산율이 2.1명을 유지해야 인구도 줄지 않고 늘지도 않는, 균형 상태를 유지한다고 지적한다. 이를 기반으로 볼 때 지금의 0.78명은 정말 위기에 봉착한 숫자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이라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 아닌 이상 상당히 비정상적이라는 것이 서 교수의 분석.
그렇게 무너진 인구 재생산 시스템이 끼치는 영향은 복합적이다. 다큐는 초저출생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세상에 주목한다. 초등학교에 갈 아이들이 줄어들고, 자연히 대학 진학자도 줄어든다. 폐교될 학교가 늘어날 것은 정해진 미래다. 병역 의무자가 자연스럽게 늘면서 안보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 2060년에는 경제성장률도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렇다면 청년들은 왜 아이를 낳지 않을까? 이 질문은 사실 여태 많은 미디어에서 '결혼하고 출산하고 싶지만, 여건이 되지 않는 청년들'의 모습들을 지속해서 보여줘 왔기 때문에, 그리 신선하지 않다. 대신 방송은 흥미롭게도 결혼과 출산, 양육의 비용을 경제적으로 계산해봤다. 실제로 얼마만큼 부담이 되는지 숫자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 예비부부의 결혼 준비과정을 보면, 그야말로 '억'소리가 난다. 특히 2억 8천만 원에 달하는 신혼집은 결혼 비용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실제로 아파트 가격이 계속 올라온 시간 동안 합계출산율은 낮아져 왔다는 것이 과연 우연일지. 더 나아가 1인당 GDP 대비 자녀양육비 비율이 7.79배로 세계 1위. 허리가 휠 수 밖에 없다. 영유아 가구에서는 평균적으로 소득의 거의 30%를 양육비로 소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문제를 청년들이 막아야 하나요? 아니, 막을 수 있나요?
앞서 말한 것처럼, 결혼하고 출산하기 어려운 청년세대의 현실을 조명하는 기획은 여태까지 많았다. 그런 기획을 볼 때마다, '우리가 원인을 모르는게 아닐텐데 그래서 대책은 있긴 한걸까?'하는 질문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부분에서 방송이 취하는 태도 역시 의문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인터뷰이들이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생각했거나 아이를 낳을 계획은 있지만 부담이 되는 이들도 아이를 낳게 된다면 두 명 정도는 낳고 싶다는 대답한 대목이 있다. 이를 두고 두려움은 비용적인 측면에서 숫자로 환원되지만, 그 너머에 있는 평범한 행복들은 비용과 숫자로 계산하기 어렵기 때문에 간과되기 쉽다는 결론을 내린다.
맞는 말이긴 한데, 결국 '평범한 행복을 누릴 권리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는 걸 청년들이 먼저 깨달아야 한다'는 알 수 없는 훈계에 와서는 이 방송의 취지가 퇴색되는 느낌도 든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외치게 된다.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 게 그렇게 쉬웠으면 상황이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텐데요! 이 대목에서는 방송에 나온 코멘트를 되돌려주고 싶다.
"'그들에게 필요한 게 뭐지?'라는 시각을 말하는 게 아니라 '저출생을 어떻게 막지?'라는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박현영 소장)
초저출생으로 인해 병역의무자가 줄면 군대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국방부 관계자는 이 문제를 "고차방정식"이라고 표현했다. 국가가 처한 다양한 상황과 맥락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사실 군대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결혼하지 않고 출산하지 않는 이유는 정말 다양하기 때문에,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것 자체가 결국은 고차방정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번 기획이 이 문제를 고차방정식답게 다뤘는지는 의문이 든다. 우리가 정말 사람들이 결혼을 안 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모르는 게 문제인걸까? 오히려 이유는 이미 많이 드러나 있는데 그 대책이 현실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게 진짜 문제 아닐까?
EBS <인구대기획 초저출생>은 다양한 데이터와 해외 사례, 그리고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우리가 마주한 재앙의 실체를 직면할 수 있게끔 친절하게 우리를 안내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정말로 청년들의 생각을 몰라서, 집값과 양육비가 얼마나 비싼지를 몰라서, 그리고 다른 국가의 모범적인 대처를 보고 우리도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몰라서 저출생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지는 진지하게 질문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제는 '왜 합계출산율이 떨어지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진짜로 아이를 낳게 할 수 있나'를 질문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그것이 진짜 고차방정식이 아닐지. 방송이 담은 전문가의 말대로, "비판적인 시각보다는 여러 기회구조적인 부분들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한 시점"(최샛별 교수)이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이 단어의 인기는 사그라들었지만, 생명력은 끈질기게 유지되고 있다. 처한 상황이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헬조선만큼이나 잘 쓰였던 단어 중에는 연애와 결혼, 나아가 더 많은 것들을 포기하기 되는 청년 세대를 일컫는 'N포세대'가 있다. 이 역시 상황은 나빠지면 나빠졌지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당시 이 단어들의 유행과 생명력은 한국사회가 위기에 빠졌다는 걸 드러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위기경보는 울리고 있다. 우리, 괜찮은걸까?
1960년 합계출산율은 6.16명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줄어들었다. 1983년에는 2.06명, 산아제한 정책을 폐지한 1996년은 1.57명으로 곤두박질쳤다. 올해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0.78명. 미래를 연구하는 서용석 카이스트 교수는 합계출산율이 2.1명을 유지해야 인구도 줄지 않고 늘지도 않는, 균형 상태를 유지한다고 지적한다. 이를 기반으로 볼 때 지금의 0.78명은 정말 위기에 봉착한 숫자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이라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 아닌 이상 상당히 비정상적이라는 것이 서 교수의 분석.
그렇게 무너진 인구 재생산 시스템이 끼치는 영향은 복합적이다. 다큐는 초저출생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세상에 주목한다. 초등학교에 갈 아이들이 줄어들고, 자연히 대학 진학자도 줄어든다. 폐교될 학교가 늘어날 것은 정해진 미래다. 병역 의무자가 자연스럽게 늘면서 안보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 2060년에는 경제성장률도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렇다면 청년들은 왜 아이를 낳지 않을까? 이 질문은 사실 여태 많은 미디어에서 '결혼하고 출산하고 싶지만, 여건이 되지 않는 청년들'의 모습들을 지속해서 보여줘 왔기 때문에, 그리 신선하지 않다. 대신 방송은 흥미롭게도 결혼과 출산, 양육의 비용을 경제적으로 계산해봤다. 실제로 얼마만큼 부담이 되는지 숫자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 예비부부의 결혼 준비과정을 보면, 그야말로 '억'소리가 난다. 특히 2억 8천만 원에 달하는 신혼집은 결혼 비용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실제로 아파트 가격이 계속 올라온 시간 동안 합계출산율은 낮아져 왔다는 것이 과연 우연일지. 더 나아가 1인당 GDP 대비 자녀양육비 비율이 7.79배로 세계 1위. 허리가 휠 수 밖에 없다. 영유아 가구에서는 평균적으로 소득의 거의 30%를 양육비로 소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문제를 청년들이 막아야 하나요? 아니, 막을 수 있나요?
앞서 말한 것처럼, 결혼하고 출산하기 어려운 청년세대의 현실을 조명하는 기획은 여태까지 많았다. 그런 기획을 볼 때마다, '우리가 원인을 모르는게 아닐텐데 그래서 대책은 있긴 한걸까?'하는 질문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부분에서 방송이 취하는 태도 역시 의문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인터뷰이들이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생각했거나 아이를 낳을 계획은 있지만 부담이 되는 이들도 아이를 낳게 된다면 두 명 정도는 낳고 싶다는 대답한 대목이 있다. 이를 두고 두려움은 비용적인 측면에서 숫자로 환원되지만, 그 너머에 있는 평범한 행복들은 비용과 숫자로 계산하기 어렵기 때문에 간과되기 쉽다는 결론을 내린다.
맞는 말이긴 한데, 결국 '평범한 행복을 누릴 권리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는 걸 청년들이 먼저 깨달아야 한다'는 알 수 없는 훈계에 와서는 이 방송의 취지가 퇴색되는 느낌도 든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외치게 된다.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 게 그렇게 쉬웠으면 상황이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텐데요! 이 대목에서는 방송에 나온 코멘트를 되돌려주고 싶다.
"'그들에게 필요한 게 뭐지?'라는 시각을 말하는 게 아니라 '저출생을 어떻게 막지?'라는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박현영 소장)
초저출생으로 인해 병역의무자가 줄면 군대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국방부 관계자는 이 문제를 "고차방정식"이라고 표현했다. 국가가 처한 다양한 상황과 맥락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사실 군대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결혼하지 않고 출산하지 않는 이유는 정말 다양하기 때문에,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것 자체가 결국은 고차방정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번 기획이 이 문제를 고차방정식답게 다뤘는지는 의문이 든다. 우리가 정말 사람들이 결혼을 안 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모르는 게 문제인걸까? 오히려 이유는 이미 많이 드러나 있는데 그 대책이 현실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게 진짜 문제 아닐까?
EBS <인구대기획 초저출생>은 다양한 데이터와 해외 사례, 그리고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우리가 마주한 재앙의 실체를 직면할 수 있게끔 친절하게 우리를 안내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정말로 청년들의 생각을 몰라서, 집값과 양육비가 얼마나 비싼지를 몰라서, 그리고 다른 국가의 모범적인 대처를 보고 우리도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몰라서 저출생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지는 진지하게 질문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제는 '왜 합계출산율이 떨어지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진짜로 아이를 낳게 할 수 있나'를 질문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그것이 진짜 고차방정식이 아닐지. 방송이 담은 전문가의 말대로, "비판적인 시각보다는 여러 기회구조적인 부분들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한 시점"(최샛별 교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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