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날까지 '응급실 닥터'로 출근하고 싶습니다"
[인터뷰] 서산의료원 응급의학과 신재복 센터장의 응급실 24시
▲ 충청남도서산의료원 응급의학과 신재복 센터장. ⓒ 최미향
인간 총체에서 만날 수 있는 선과 악,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하는 헤르만 헤세. 그를 좋아하는 서산의료원 응급의학과 신재복 센터장. 여전히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응급실에서 그의 24시간은 바쁘기만 하다.
그는 응급실에서 끊임없이 밀려드는 환자들을 대할 때마다 헤르만 헤세를 떠올리며 "생과 사의 골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고, 그 안에서 어떻게 성장하느냐는 것을 깊이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 서산이 초고령화 시대에 진입했다. 응급실에 오시는 분들은 주로 어떤 분들인가?
"평일에만도 하루 100명 정도의 환자들이 오시는데, 그중에서도 주로 80대 이상의 고령 환자가 많다. 물론 독거노인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젊은 사람 중에서는 교통사고가 많고, 다치고 깨지고 이런 사람들이 그 뒤를 잇는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검사하면 뭐라도 나오는데, 그중에서도 독거노인은 보호자를 찾아야만 문제가 해결되는 부분도 많다. 가령 여기서 치료가 안 돼서 다른 병원으로 보내야 할 때, 보호자가 없으면 수용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또 여기서 검사하고 입원하려고 할 때도 보호자 동의 없이 함부로 하기도 어렵다.
뿐만 아니라 대학병원 규모의 설비나 인프라가 안 되다 보니 보호자가 있는 것만큼 빠르고 깔끔하게 진행되지 않아 에너지 소비가 많다. 애로사항이라면 환자들이 이곳을 대학병원 수준으로 생각하고 최종 목적지로 알고 온다. 물론 이곳이 최종 목적지가 될 수도 있지만, 능력 범위를 벗어나면 안 될 수도 있다. 여기서 치료가 안 될 거라고 기대를 낮추고 왔어도 치료가 될 수 있는 부분들도 있다. 어쨌든 그런 괴리감에서 오는 갈등들이 내재되어 있다."
- 의료진과 환자 간에 조금은 갈등이 일어나는 곳이 응급실이라고 하는데.
"의료진과 환자 간의 협조가 잘 이루어져야 되는 곳이 특히 응급실이라고 생각한다. 저희도 조금 더 친절하게 다가가고, 환자들도 응급실에 대한 개념을 좀 더 잘 이해하면 문제 없다.
먼저, 환자가 들어 오면 저희는 '접수부터 하고 오세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사람을 돈으로 본다'라고 한다. '차갑고, 돈 밝히고, 비싸고, 빨리 안 해주고...' 이것은 오해다. 모두 전산화되어 있어 접수를 해주셔야 빨리 검사를 해드릴 수 있다. 순서를 빨리 앞당겨 드릴 수도 있고, 검사 처방과 약도 드릴 수 있는 시스템이다. 여러분을 도와드리려고 하는 것이니 그런 것들에 대한 오해가 풀렸으면 좋겠다. 그나마도 서산의료원은 일반 대학병원이랑 비교하면 친절하게, 정말 빨리, 열심히 도와드리는 편이다. 이런 것들에 대한 인식이 조금 더 바뀌기를 바란다."
▲ 응급실의 24시는 긴장의 연속이라는 신재복 센터장. ⓒ 최미향
- 대부분 회피하는 응급의학과를 선택했던데 이유라도 있는지.
"'의사다운 의사가 무엇이냐?'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수도없이 던졌다. 그러다 기초과학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생각을 굳혀 선택하게 됐다. 이 교수님은 병원에서 임상 환자 보는 것이 아닌 생리학·생화학을 가르치시는, 굉장히 훌륭하신 교수님이셨다. 이분이 한번은 비행기를 탑승했는데 그 안에서 위중한 환자가 발생했다는 '닥터콜'이 울렸단다. '닥터 있으면 와주세요'라고 했는데 정작 본인은 환자를 볼 줄 모르니까 가만히 앉아 계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얘기를 듣고 '내가 생각하는 의사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다시 고민하게 됐다. 그 해답이 바로 전천후 '응급의학과'다. (응급의학과는) 어떤 상황에서도 다 대처할 수 있는 의사들이다. 그것도 특히 위중한 사람들 위주로. 제가 생각하는 의사의 모습에 부합한다.
- 그렇다면 센터장님이 생각하는 '응급의학과'는 어떤 곳인가?
"일단은 중환자랑 싸우는 곳이다. 숨어있는 중환자를 찾아내는 곳이다. 중환자가 아닌 사람 중에 자신이 중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싸우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 우리가 먼저 보고 해결해 드려야 되는 건 중환자, 그리고 본인은 중환자가 아니라고 하지만 중환자인 이들이다. 그리고 '급한 환자니까 빨리 내 새끼 해줘', '우리 부모 해줘', '나 먼저 치료해줘'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고 저 환자가 먼저니까 저 환자를 먼저 해주고 봐주겠다'라고 설득해야 한다.
24시간 진료를 하다 보면 다양한 환자들이 너무너무 많다. 특히 충남도 권역에는 연령층이 주로 고령인 80대, 90대, 100세 분들이 굉장히 많다. 방치되는 환자들, 병을 쌓아놓고 있다 오시는 환자들도 상당수다."
▲ 서산의료원 응급실 입구. ⓒ 최미향
- 응급실에 있다보면 특히 기억에 남는 환자들도 있을 것 같다.
"배가 아프다고 응급실로 들어오신 분이셨다. 검사 결과가 괜찮았다. 그런데 (검사는) 괜찮은데 자꾸 위화감이 생기는게 영 이상했다. 워낙 환자를 많이 보면 그럴 때가 종종 있다. 괜찮다고 보여져도 괜찮지가 않은 것 같은 느낌? 그분도 그런 사람 중에 한 분이셨다.
CT를 권해서 찍었는데 췌장에 이상한 증상이 보였다. 정식 판독을 넘겨도 크게 문제 될 건 없는 것 같은데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어 대학병원에 (CT를) 보냈다. 그곳에서 '초기 암 환자로 빠르게 진행하고 있는 과정'이란 게 발견됐다. 어느날, 초기에 잘 발견해서 치료 받고 계신 그 분이 감사의 의미로 피자를 잔뜩 보냈주셨다(웃음).
치료가 안 된 사례로는 젊은 친구들이 싸우다가 그중 한 친구가 칼로 다른 한 친구를 찌른 사건이 있었다. 119를 불렀는데 늦었다. '조금만 더 해보면 된다'는 생각으로 치료했는데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또, 레지던트 시절에 우면산에 산사태가 일어나 아파트가 매몰돼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했었다. 당시 시신이 버스로 몇 대씩, 몇 백구가 들어왔다. 의사 생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다. 안타까움이 컸다."
- 트라우마 같은 것은 없나?
"다행스럽게도 저는 (응급의학과) 잘 맞는지 괜찮다. 때로 일반인들이 내게 '환자가 죽는다든지, 피를 철철 흘리면 마음이 동하지 않느냐? 힘들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해올 때가 있다. 그런 것에 휩쓸리면 다음 환자를 보지 못한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일을 오래 하는 건 힘들 것 같다. 물론 훈련이 됐다고도 본다. 다행이다."
▲ 천태만상의 모습들이 공존하는 응급실 닥터 신재복 센터장. ⓒ 최미향
- 여러 가지 일들을 겪다 보면 심리적으로 힘들 때도 있을 것 같은데 스트레스는 무엇으로 푸나?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저는 훈련이 제법 잘 되어 있다. 특히 사사로운 감정들에 휩쓸리다 보면 다음 환자를 보지 못한다. 스트레스 해소로는 여행을 자주한다. 중학교 때까지는 외교관이 꿈일 정도였다. 외국인과 말이 통할 뿐만 아니라 함께 있으면 굉장히 편하다. 지금도 짬이 나면 외국으로 많이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블로그에 여행 후기를 올리기도 한다.
혼자 있을 때는 고전을 읽는다. 글 쓰는 것도 워낙 좋아한다. 저는 사실 문과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인데 성적은 이과적인 게 나오다 보니까 의대를 지망한 경우다. 문과가 아니라면 의사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순수과학보다는 그래도 사람을 대면하고 '인간다움을 찾는 방향'으로써는 의사만 한 게 없으니까."
-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최근 동창을 만났는데 업무 만족도 얘기를 하다가 '지금 일이 맞든 안 맞든 대부분의 회사원들은 빠른 은퇴를 하든지, 아니면 자영업 하기를 원한다'는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저는 '왜 하기 싫을까? 나는 며칠 쉬다 보면 또 나와서 일 하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들더라.
'진짜 천직을 만났다'는 생각으로 체력만 허락된다면 평생 하고 싶은 일이 바로 응급실 닥터다. 심지어 누가 '나이 먹어서 언제 은퇴할래요?' 하면 저는 '죽기 전날까지 출근할 것 같은데요'라고 말할 것 같다. 그만큼 힘들긴 하지만 확실히 보람을 느끼며 재밌게, 만족하며 근무하는 곳이 응급실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