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준 대법관과 '침묵의 카르텔'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당부... 교수 영리업무 기준 바로잡기 등 제도 개선 필요하다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의 블로그글을 필자 동의를 얻어 '오마이뉴스'에 게재합니다.[편집자말]
제가 제기한 문제가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선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분명히 그의 행위는 서울대법(사립학교법, 국가공무원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영리업무이고, 변호사법에 따른 비변호사의 유상의 법률사무였음에도 국회는 그에게 면죄부를 줬습니다. 일반적인 지위도 아니고 법률을 최종적으로 해석하는 임무를 갖는 대법관에게, 그런 중대한 하자가 있음에도 그것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정치적 타협을 한 것은, 두고두고 비판 받을 일입니다.
▲ 지난 18일 국회 본회의에서 권영준·서경환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통과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이 문제에 대해 말해야 할 사람과 기관의 침묵이었습니다. 동료 교수들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심정으로 지켜만 봤습니다. 가장 큰 이해 관계자 중 하나인 대한변호사협회(변협)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습니다.
누구에겐 10여 년 전 자식 입시와 관련된 문제를 들추어 내 멸문지화를 만들어냈던 검찰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습니다. 이런 문제라면 당사자 집 앞까지 찾아가 장사진을 치며 보도에 열을 올리던 언론도 자취를 감췄습니다. 저는 이것을 '침묵의 카르텔'이라 부르겠습니다. 카르텔은 이런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실망을 넘어 절망을 느낍니다.
문제제기와 파장... 여기서 멈출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희망을 이야기해야 하는 저로서는, 아니 우리로서는 여기서 멈출 수 없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여기까지 온 것도 적지 않은 소득입니다. 사실 권 대법관의 경우는 무난하게 국회 동의 절차를 거칠 것으로 누구나 예상했습니다. 설혹 서울대 교수가 의견서를 써주고 돈을 받았다고 해도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게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뚜겅을 열어보니 그가 국회 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그것이 가장 큰 변수였습니다. 그것 때문에 청문보고서는 지연됐고, 본인은 자신이 번 돈을 사회환원하겠다는 약속까지 했습니다. 국회의원들도 분명 문제는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물난리에 정쟁을 하는 모습이 표에 도움이 안 된다는 계산이 섰는지 막판에 타협하고 말았습니다. 당사자로선 마지막까지 피말리는 과정이었을 겁니다. 이렇게 된 것은 소셜미디어에서 시작된 우리들의 여론 형성 때문이었습니다.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문제 제기가 이뤄졌고, 여기에 존경하는 몇 분 동료 교수님들이 참여해줬습니다. 이것을 일부 진보언론이 받아 기사화했습니다. 정치권에선 민주당의 일부 의원이 이것을 토대로 청문절차에서 문제를 제기했고, 그것이 결국 국회 동의를 쉽지 않은 상황으로 몰고 갔습니다. 급기야는 일부 보수언론까지 문제의 심각성을 보도하고 사설까지 썼습니다.
이렇게 우리들이 만들어 낸 여론이 실제 정치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소셜미디어 담벼락에 몇 글자 끄적인 것이 이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는 것만도 대단한 일 아닙니까. 저는 가끔 소셜미디어 등에 글을 쓰는 것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일을 경험하면 적어도 당분간 굳건히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권영준 대법관과 정부 그리고 정치권에 호소합니다
▲ 1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본관 중앙홀에서 열린 대법관 취임식에서 권영준 대법관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한 사람은 약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연대하면 강합니다. 특히 저 같은 소위 인플루언서(?)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제가 일으킨 호수의 잔물결 하나가 호수 전체로 퍼져 나가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실망만 하지 않고 또다시 문제를 제기할 것입니다. 실망과 원망만 하지 않고 정성을 다해 호소하겠습니다. 시민들의 연대에 더 큰 기대를 걸겠습니다. 정치도 결국 시민들이 만들어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할 일은 더욱 목소리를 높이는 일입니다. 주인 행세를 더욱 거세게 하는 일입니다. 그것만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그것만이 이 침묵의 카르텔을 깨 진짜 세상을 바꾸는 힘입니다.
이제 권영준 대법관에게 법조 선배로서 한마디 말합니다. 이제 대법관으로서 최선을 다하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염려했던 것이 기우였다는 것을 직무로서 보여주십시오. 단순히 최고의 이론가로 만족하지 말고 그 능력을 선한 일에 씀으로써 역사에 남는 대법관의 꿈을 꾸십시오. 저는 당신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벗이 되길 바랍니다. 그것이 당신이 그동안 이 사회로부터 받은 것을 돌려주는 최고의 사회 환원이라고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관계 당국과 정치권에 호소합니다. 이번 일은 제가 몇 번이나 경고했듯이 대학사회에 적잖은 부정적인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대학교수들이 학문과 교육에 전념하기 위해 제도적 개선이 필요합니다. 이 논의를 서둘러 주십시오. 교수가 해서는 안 되는 영리업무의 기준을 세워 다시는 이런 일이 재현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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