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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지 보고 왔습니다, 그런데 더 기억에 남는 건

[북중접경지역 6박 7일 답사기] 다시 오지 않을 순간들의 기록

등록|2023.07.27 11:08 수정|2023.07.27 16:46
[기사 수정: 27일 오후 4시 45분]

내가 다니는 대학원은 북한대학원대학교다. '북한'이 들어간 이름 탓에 택시를 타면 종종 질문 공세를 받곤 하지만, 실상은 매우 건전(?)하다. 남북교류·협력 등 남북관계·​북한주민을 중점 연구하는 전문대학원이다(전공은 사회문화언론, 정치통일, 법행정, 군사안보, 경제IT, 통일교육 등이 있다).

졸업 시기가 되면 각 전공에 맞춰 북한학 논문을 써야 하는데, 타 학문과는 달리 현장(북한)에 가 볼 수도 없고 실제 주민을 만나볼 수도 없다. 이럴 때 답사가 굉장히 도움이 된다. 다음은 현장답사 소개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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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여름, 조·중 접경지역 현장조사에 함께 할 분들을 모집합니다. 이 현장조사는 북한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는 상황에서, 조선과 중국의 국경지역을 종단하며 조·중 국경지대 사람들의 삶을 탐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북녘 주민들의 삶을 중국 국경지대 사람들의 삶과 비교 문화적으로 살펴보고, 국경지대에서 어떠한 일들이 이뤄지고 있는지 직접 살펴볼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사실 나는 이런 거창한 목적을 가지고 간 여행은 아니었다. 믿고 따르던, 먼저 졸업한 선배들의 "북대 생활의 백미"라는 '강추'가 있었을 뿐. 7일에 경비 200여만 원, 만만치 않은 비용을 내고 또 제출용 얼굴 사진을 별도로 찍으면서 '이게 맞나', '꼭 가야 하나' 싶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다녀온 지금엔 역시 선배들의 강권에는 이유가 있었구나 싶다. 선후배·동료가 고민한다면 나 또한 기쁘게 '강추파'가 되리라.
 

▲ 답사 일자별 루트 ⓒ 유성애


7월 8일~14일, 중국-북한 접경지역으로 다녀온 대학원 답사였지만 출발 전 내겐 큰 기대가 없었다. 루트도 제대로 알지 못해 대련과 단둥, 용정 등 낯선 지명만이 머릿속을 떠다닐 뿐이었다. 그러나 정확히 10일 뒤 나는 살짝 예감했던 것 같다.

중국 장백현시, 강 하나를 건너면 북한 혜산 주민들과 마을 풍경이 보이던 강변의 어느 호텔 앞, 함께 온 친구들과 친해져서 숙소 복귀 전 좋아하는 노래를 휴대폰으로 틀어놓고 함께 따라 부르고 있는 이 순간이 나중에는 반드시 그리워지리라는 것을. 실제로도 그랬다.

7일간 기억에 남는 장면들
 

▲ 지난 7월 중국-북한 접경지역 탐방 때 압록강에서 배를 타고 접경지 마을을 살펴보는 중인 참가자들 모습. ⓒ 유성애


남북관계만큼이나 한중관계 또한 좋지 않은 상황이라 중국 공안경찰의 경비는 삼엄했다(답사팀 20여 명 중 전·현직 언론인이 약 30%라는 특성, 또 접경 지역만을 골라 다녔던 탓도 있을 것이다).

총 세 네 번의 검문이 있었는데, 공안이 버스 안에 들어와 여권과 얼굴을 일일이 대조하며 30~40분이 걸린 것을 시작으로 해 나중엔 버스 앞뒤로 경찰차 두 대가 따라붙고 식당까지 따라와 감시하기도 했다. 안중근 기념관과 윤동주 생가 같은 곳은 불분명한 이유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문 밖에서만 구경해야 했다.

답사는 한반도 지도 머리 부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압록강-두만강을 따라 거의 버스를 타고 이동했는데, 압록강에서 배를 타니 강 건너편 북한 주민들을 가까이서 눈으로, 또 망원경으로 직접 지켜볼 수 있었다.

육안으로는 저기에 사람이 몇 명 있다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나중에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보니 앳된 얼굴 군인이 마스크를 쓴 채 우리를 향해 손 흔드는 모습, 또 우리 쪽을 보며 환하게 웃는 여성 주민이 찍혀 있기도 했다. 북한 마을과 북한 주민을 지근거리에서 직접 보다니... 3n년간 살면서 단 한번도 해본 적 없던 새로운 경험이었다.
 

▲ 중국-북한 접경지역 압록강 주변에서 보이는 북한 마을 풍경. 현지 가이드 말에 따르면 최근에 3~4년 사이 새롭게 지어진 살림집들이 많다고 한다. ⓒ 유성애


답사 6일차, 저녁식사로 북한 여성들이 일하는 중국 식당에 간 것도 기억에 남는다. 큰 식당 안에서 왼쪽 절반은 중국인, 오른쪽 반은 한국인이었는데, 식사 중 제공되는 공연시간에 북한 여종업원들이 중국 관객을 상대로 '오성홍기(중국 국기) 찬란한 미래'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노래와 드럼·피아노 연주 등 이들 공연을 집중해서 지켜보는 남한 관객들과는 달리 중국 관객은 담배를 피우고, 심드렁한 표정과 불량한 자세로 공연을 봤다(공연 촬영을 금지한다고 식당 측에서 미리 고지를 했는데도, 대놓고 휴대폰으로 녹화하는 남성도 있었다).

지난해 대학원 과제를 하다가 현재 내 배우자의 이름과 같은 이름의 북한 저자가 쓴 논문을 읽고 인용하게 된 적이 있다. 어쩌면 북한 2500여만 주민들 중에는 내 이름과 똑같은 이름으로 평생 불리는 동명이인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묘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성별을 택할 수 없고 부모를 선택할 수 없듯, 태어날 지역을 정할 수도 없는 일인데.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인 여종업원들, 그러니 저들 자리에는 어쩌면 내가 서 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코끝이 찡해져 왔다.

정치상황 탓에 인적 교류가 막혀 남북한 주민이 만나지조차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 그래서 중국이라는 제3지역을 통해야만 가능하다는 것도 그날 공연을 지켜보던 내 감정을 복잡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던 것 같다.

황해도가 고향인 필자의 시조부모 포함, 나고 자란 고향을 인근에 두고도 가보지 못한 채 눈을 감고 있는 실향민과 이산가족 문제는 또 말해 무엇하나(관련 기사: '희망고문' 된 이산가족 상봉, 실향민에겐 시간이 없다 https://omn.kr/24pp6).   
 

▲ 1919년 3월 13일 북간도 만세운동 뒤 사망한 분들의 묘소인 3.13 반일 의사릉에 간 뒤 묵념 중인 답사 참가자들. 당시 일본 측 압력에 의해 탄압에 나선 중국군 총격에 의해 현장에서 14명이 즉사했고 3명이 치료 중 숨졌다고 한다. ⓒ 유성애


답사에선 사적지 탐방도 했다. 여순(뤼순)감옥은 1900년대 초 일본 군부가 운영하며 안중근과 신채호, 이회영 선생 등 당시 걸출한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하고 옥사·사형시킨 곳이다. 이토 히로부미를 쏜 안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여순일본관동법원도 돌아본 뒤 잠시 함께 추모하는 시간도 가졌다.

백두산 천지(서파)는 사실 3일차 코스였는데, 악천후 탓에 관리소 측이 문을 닫아걸어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음날 답사 일정을 바꿔 북파코스로 재도전, 맑은 날 천지를 보는 데 극적으로 성공해 더 기억에 남는다.
 

▲ 2023년 7월 12일 촬영한 백두산 천지 모습. 날씨가 매우 깨끗해 호수에 하늘이 그림처럼 비칠 정도였다. ⓒ 유성애


다시 생각하게 된 '민족'이라는 말

다녀온 참가자 몇몇 사이에선 영화 <동주> 다시보기 열풍(?)이 불고 있다. 시인 윤동주 생가가 있는 명동촌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특히나 눈에 띈 건 윤동주에 비해 덜 알려진 송몽규라는 인물이다.

윤동주가 문학적 감수성을 살려 시로 자신의 '부끄러움'을 직시했다면, 송몽규는 임시정부를 찾아가 군사교육을 받는 등 실천과 행동으로 독립을 꾀했다. 시대와 역사라는 씨줄과 날줄에 끼인 청년들은, 생체 실험을 받다가 해방조차 보지 못한 채 감옥에서 사망했다.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 윤동주 생가가 있는 명동촌을 돌아보고 있는 답사 참가자들. ⓒ 유성애


'민족'이라는 말은 사실 지금 젊은 사람들은 거의 쓰지 않는, 낡고 먼지 날리는 사어(死語)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일제의 동화-말살정책 앞에서 어떻게든 조선어(한글)를 쓰고 지키려 했던 이들을 보며 다시금 그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남북 관계가 악화될 대로 악화된 요즘 통일은 이제 불가능한 이야기, 북한은 더는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나라처럼 느껴진다. 200만 원 넘게 들여 간 이번 여행에서 남은 게 있다면, 내가 연구하려는 북한과 그 내부에서 사는 주민들, 그 실체를 직접 얼굴로 대면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북중 접경지역을 지명에 따라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게 된 일, 그리고 3대가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는 백두산 천지를 본 것보다도 내게는 그게 더욱 큰 추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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