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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의 고객은 기본이 50년, 일 해보니 알겠다

정원사는 비가 와도 쉬지 않는다... 비에 젖고 땀에 젖는 장마철 작업

등록|2023.08.07 10:38 수정|2023.08.07 10:38
일본 현지에서 75세 사부에게 정원사 일을 배우는 65세 한국 제자의 이야기.[기자말]
본격 츠유(장마)가 시작됐다.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 하고 있다. 정원일은 보통 비가 오면 쉬지만 요즘은 비가 와도 쉬지 않는다. 소나무 손질 시기를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시기를 놓지면 소나무를 망친다. 오늘 작업지는 후쿠오카 가는 길목의 도스라는 소도시다. 이동거리가 길어지니 차 안에서 이야기가 풍성해진다.

아버지에 이어 대를 이은 고객들
 

▲ 시기를 놓지면 소나무를 망친다. 정원사는 비가와도 쉬지 않는다. ⓒ 유신준


사부가 15살 때 일본에 정원 바람이 불었다. 60년 전 일이다. 정부에서 주도한 정원 바람에 따라 정원 일거리가 넘쳐났다. 아버지의 권유로 정원 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선택에 망설임은 없었다. 전문학교는 설계, 시공, 관리로 분야를 나눠 가르쳤다.

구루메 지역에서만 총 60명을 모집했는데 그 중 3명이 여자였다. 전체 중 5%. 지금도 그렇지만 정원사는 남자들 세계였다. 당시는 급조된 학교여서 제대로 된 교과서가 없었다. 도쿄에서 불러온 전문가가 프린트물로 수업을 진행했다 한다.

교과서는 없었지만 다들 수업은 열정적이었다고 사부는 회상한다. 전문가 선생은 핵심을 뽑아서 방향만 잡아줬다. 공부는 학생이 찾아서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정원일은 실습 위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 나를 가르치는 사부의 불친절한 수업방식은 그때 비롯된 것일지도... 그렇게 배웠으니 그렇게 가르칠 밖에.

그들은 작년까지도 동창회를 했다. 함께 고생하며 공부한 사이라서 관계가 끈끈하게 이어졌다. 15명 정도가 만났는데 올해부터는 만남을 그만두기로 했단다. 건강할 때 얼굴을 마주하면 옛 시절을 떠올리며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이제는 얼굴을 보든 소문을 듣든 불행한 일 투성이라 의미없는 동창회가 되었기 때문이란다.

사부는 전문학교에 다닐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실습을 많이 다녔다. 대상은 아버지 고객들이었다. 그때 인연을 대부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선대부터 대를 이어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정원사가 대를 이었으니 당연히 정원주도 대를 잇는다.

사부 고객은 기본이 50년이다. 5개월이나 5년이 아니라 50년!이다. 길어야 겨우 1년단위 계약갱신인 자본주의적 상거래 관행과는 단위 자체가 틀리는 거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세월이 흐르고 흐르니 국호만 일본이라 바뀐 건지도... 아직도 이 사람들은 에도시대 태평성대를 누리며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사부의 주요 고객들은 동네보다 타지에 많다. 편도 2시간 걸려 큐슈의 끝 지역인 기타큐슈까지 간다. 이른바 전국구 정원사다. 소문난 사부 솜씨답다. 그쪽도 사부의 작업 스타일을 잘 알고 있다. 라디오로 상징되는 즐겁게 일하기다. 물론 작업은 칼이다. 정성껏 성실하게 일하는 건 기본.

사부하고 싶은대로 즐겁게 일하니 좋은 작품이 나온다. 좋은 작품이 나오니 정원주들이 사부를 안 놓으려 한다. 고객과 트러블이 없다. 그쪽도 50년 전에 시작된 관계니 반백년씩이나 인연을 이어온 평생 무기계약 고객들이다.

정원을 손질해 놓으면 그 정원을 보고 다른 손님이 찾는다. 손질해 놓은 작품이 상품 견본인 셈이다. 그렇게 정원이 새끼를 치고 그 새끼가 또 새끼를 쳐서 기타큐슈에만 관리정원이 10곳이 넘었다. 요즘은 힘이 부쳐서 오히려 일을 줄이고 있다 한다. 남들은 일거리가 없어서 발을 동동구르는 시대인데... 맞다. 솜씨만큼 대접받고 사는 게 사람 사는 이치다.

기본 몇 십년 고객이다 보니 정원일은 사부가 다 알아서 한다. 정원주들이 신경 쓸 게 별로 없다. 그쪽 고객들은 사부가 2시간씩이나 걸려 와 주는게 고맙기만 하다. 혹시 뭔가 틀어져서 안 오겠다고 하면 어쩌나 되레 걱정이다. 그렇게 거래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게 무기계약 50년이다. 이래도 되나 싶다.

시기가 중요한 소나무 손질
 

▲ 편도 2시간 걸려 큐슈의 끝 지역인 기타큐슈까지 간다 ⓒ 유신준


도스까지 30분 걸렸다. 첫 번째 방문한 집은 흑송이 메인트리였다. 앞쪽에 좁은 공간을 잘 이용해서 일단 주차장을 들였다. 일본은 주차장이 없으면 차를 구입할 수 없으니 토지구획 영순위 배정이다. 남은 공간에 흑송을 가장 눈에 잘 띄게 세워놓고 몇 가지 나무들로 구색을 갖춰 정원을 만들었다.

뒷편 좁은 땅에도 나무가 두어그루 눈에 띄었다. 여름동백이라 불리는 히메샤라. 어떻게든 자연을 즐기려는 정원주의 마음이 느껴졌다. 나무를 심으면 돌봐야 하니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못 심는다. 바쁜 생활속에서 나무를 심고 가꾸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다.

요즘 손질하는 소나무는 대개 흑송이다. 적송은 그다지 많지 않다. 적송은 한국 어느 산이나 넘치는 수종이지만 이곳에서는 귀하신 몸 대접을 받는다. 귀하신 몸이라서 인가. 소나무는 부자나무라고도 부른다.

나무를 심으면 부자가 된다는 뜻이 아니다. 부자들이나 기를 수 있는 나무라는 뜻이다. 일단 소나무는 구입 가격이 비싸다. 모양을 갖춰 잘 키운 소나무는 부르는 게 값이다. 게다가 매년 반드시 전문가를 불러 세심한 손질을 해줘야 하니 유지비도 많이 든다. 시기를 놓치면 나무가 제멋대로 커서 가치가 뚝 떨어진다. 수형을 잡기도 힘들다. 여러모로 까다로운 나무다. 부자들은 얼마나 까다로운가. 사람이나 나무나 같은 팔자인 모양이다.
 

▲ 소나무는 부자나무라고도 부른다. 부자들이 심는 나무라는 뜻이다. ⓒ 유신준


흑송은 적송보다 피부도 이파리도 거칠다. 그래서 흑송을 남송이라 부르고 적송을 여송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이곳 흑송은 사부네에서 손질하던 적송에 비해서 새순이 상당히 길게 자랐다. 거친 새순이 눈에 띄게 표시가 날 정도지만 손질은 같은 요령으로 한다.

가지 윗쪽부터 아랫쪽으로 순을 잘라 낸 다음, 가지 전체의 솔잎을 적당히 덜어내는 작업이다. 순을 자르는 건 눈에 잘 띄니까 어렵지 않은데 솔잎을 덜어내야 하는 뒷 손질은 상당한 감각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까지 덜어 내느냐 가늠하는게 만만치 않다.
 

▲ 사부도 제자도 피차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 유신준


정원 디자이너 요시다씨를 만났을 때, 요즘 사부랑 소나무 손질을 하러 다닌다고 했더니 벌써 소나무냐고 놀라는 걸 봤다. 소나무가 그만큼 어려운 작업이라는 의미리라. 정원사 수업이 응당 단계가 있을텐데 사부는 뭐든 속성이다. 제자가 워낙 걸출해서(?) 가르치는 대로 잘 따라하니 진도가 빠른 모양이다. 속성인 이유는 또 있다. 사부도 제자도 피차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서다.

비옷을 입고 작업을 시작했다. 비오는 날은 작업도 번거롭지만 준비물도 번거롭다. 갈아입을 옷 두 벌을 더 준비해야 한다. 겉으로는 비를 맞아도 속은 땀으로 젖는다. 그러니 속옷까지 갈아 입어야 한다. 점심 먹고 갈아입고 집에 갈 때 갈아입어야 하니 두 벌이다.

돌아갈 때는 차를 타기 때문에 갈아입지 않으면 차량 에어컨 때문에 감기에 걸린다. 감기에 걸리면 다음날 일에 지장이 생겨 안 된다. 사람이 아파서 문제가 아니라 일에 지장이 생겨서 란다. 자나깨나 철저한 일 중심 사고다.

정원사 레벨을 가르는 결정적 기준

오늘은 속옷을 갈아입지 않고 작업을 했다. 비가 오다 그치다 더웠다가 시원했다가 종잡을 수 없는 날 덕분이었다. 이 동네는 해떴다고 하늘을 믿으면 안 된다. 맑은 하늘이 갑자기 흐려지며 거짓말처럼 비가 쏟아진다. 언제 비가 와도 이상하지 않은 날씨가 츠유다.

흑송을 한 가지 겨우 손질해 놓고 나니 사부가 초딩 솜씨라 놀린다. 시작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당연한 레벨이잖우. 사부 경력 60년과 어떻게 비교하시우. 초딩도 황송하오. 레벨을 가르는 결정적 기준은 '어느 정도까지 잎을 정리할 수 있느냐'다. 사부는 시원시원하게 홅어내지만 나는 소나무가 불쌍해서 그렇게 못한다. 그래서 초딩이다. 나중에는 결국 그게 되기 시작했다.
 

▲ 세상에! 이렇게까지 이파리를 덜어내도 괜찮은 거야? ⓒ 유신준


두 번째 집 흑송을 시작하고 나서다. 내가 손질한 가지를 살펴보던 사부가 이번에는 중딩으로 승진시켜 줬다. 오전까지 초딩이 오후에 중딩이라니 놀라운 고속 승진이다.

지금까지 내 작업을 사부의 것과 비교해 보면 답이 쉽게 나온다. 사부 가지는 가벼운데 반해 내 것은 두텁다. 초짜라서 조심조심하느라 솔잎을 못 덜어 낸 거다. 이제 좀 알 듯하다. 세상에! 이렇게까지 이파리를 덜어내도 괜찮은 거야? 하니 바로 중딩이란다.

오늘 두 번째 집 흑송은 덩치가 너무 커서 다 마치지 못했다. 정원주가 '그 가지 끝내고 오늘은 그만 할 거죠?'라고 묻는다. 서로 얼마나 잘 알면 그런 질문이 가능하게 되는 건가? 50년 관계가 거저된 게 아니다. 이심전심 세월로 얻은 빛나는 공감의 열매다.

나는 요즘 오후 세 시까지 화장실을 한 번도 안 간다. 몸이 사부 근무 방침에 충실히 따르고 있는 셈이다. 요령은 별거 없다. 아침은 너무 일러서 못 먹는다. 투입이 없으니 산출이 없다. 점심을 먹지만 빈 속이니 담아둘 공간이 있다. 퇴근 후 저녁 먹고 화장실을 간다. 마음이 정하면 몸이 따라주는 모양이다. 그렇게 시나브로 새끼정원사는 여물어 간다. 내일도 오전 6시 출근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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