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문 잠그고 욕... 순식간에 그 일이 생각났습니다
20대 교사의 죽음이 11년차 교사에게 남긴 과제... 목소리 내고, 함께 지지대 만들어야
길었던 한 학기가 지나고 여름방학을 맞이했다. 긴 육아휴직 후 3월부터 7월 말까지 학교-집-학교-집이라는 뫼비우스의 띠 위에서 정신없이 달려온 날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머릿속을 쓱 훑고 지나간다.
최근 S초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사고로 인해 요즘 학교 현장에서는 어두운 분위기가 감돈다. 교사 지인들의 카톡은 모두 애도와 추모의 뜻으로 검은 리본의 물결을 이루고, 대화방에서는 청원 사이트 공유가 줄을 잇는다.
언론에서는 교권 추락에 대한 기사가 끊이지 않고 보도된다. 나를 비롯한 동료 교사들은 무너진 학교와 교사의 권위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는 현 세태에 안도감을 표하는 동시에, 이게 이제서야 이슈가 된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 등 양가적 감정을 느끼고 있다.
학부모들의 솟구치는 민원, 아동학대라는 족쇄에 묶여 맘 편히 지도할 수 없는 교실 안, 수업 이외의 밀려드는 크고 작은 업무들. 해가 다르게 힘들어지는 교육현장에서 손발이 묶인 우리는 한자리에 모여서 "누구 하나 죽어야 이런 상황을 알아주려나"라는 말들을 탄식하듯 내뱉곤 했었는데... 그러나 그럼에도, 절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 결국 벌어지고야 말았다.
올해로 11년차, 해가 다르게 교육현장의 분위기가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감을 피부로 체감한다. 이번 사건을 접하고 3년 전 그 일이 자동 반사적으로 떠올라 나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대고 식은땀이 난다.
첫 아이 육아 후 2년 만에 첫 복직. 그 해는 내게 가장 아픈 기억으로 점철된 순간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정신과병원의 문을 두드렸고, 교권보호위원회를 처음 열어봤고, 학교 교실에 비상벨이라는 것을 설치했다.
비속어들을 몸에 감고 살았던 그때
그 당시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비속어들을 몸에 감고 살았다. 휴일이고 평일이고 가리지 않고 오는 전화와 문자에 내 하루는 그 학부모로 인해 좌지우지 되었다.
그 아이를 보면 꼭 그 학부모가 앉아있는 것 같아 수업을 하면서도 늘 위축되었고, 어쩌다 교실에서 놀이를 하다가 그 아이가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집에 가서 어떤 말을 할까 조마조마하며 하루를 보낸 적도 있었다. 그 문제의 그 학부모는 불쑥 학교를 찾아와 문을 잠그고 상담을 요청하며 욕을 하는 일도 더러 있었다.
그 전에도 학교생활을 하며 많은 어려운 학부모들을 매해 겪어왔었다. '딱 일 년만 참자'라는 마음으로 삼키고 살아왔지만 당시만큼은 한 순간도 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밤에 자면서도 그 학부모 생각에 가위눌림도 여러 차례 경험했으니까.
당시의 내 삶은 모두 그 학부모에게 반납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나는 이겨내야만 했다. '엄마 사랑해요'라고 쓴 아들의 스케치북 그림을 내 휴대폰 배경화면에 넣어두고 들여다보며 말이다.
당시 나는 학부모의 연락이 있을 때마다 교감선생님께 알렸고, 학교 측에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달라고 강력히 요구했고, 교육청 신문고에도 내 사정을 알렸다. 학부모에 대한 처벌이 법적으로 규정되지 않아 사실상 교권보호위원회 처벌은 서면사과 정도가 다였겠지만, 그래도 교사가 겪는 어려움을 확실히 드러낼 필요가 있었다. 그런 식으로, 이전엔 그냥 꾹꾹 눌러 참아온 것들을 하나씩 드러내니 숨구멍도 조금씩 트여오는 것 같았다.
이런저런 조치 끝에 나는 다른 학교로 옮겨갔고, 교육청 연계 상담을 받으며 상처 났던 마음이 조금씩 회복되어갔다. 하지만 이후 나를 대신해 담임으로 들어왔을 다른 선생님에 대한 미안함으로 마음 한구석에는 늘 무거운 돌덩이가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해당 학부모가 이전에 했던 일들로 인해 학교 측과 걸려 있던 소송에서 지면서 처벌이 내려졌고, 그들은 내게 미안하다는 편지를 전해왔다. 또 그 이후로는 학교의 담임 교사에게는 전혀 연락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내 가슴 속 돌덩이를 조심스레 내려놓을 수 있었다.
"저만 좋은 학부모 만난 것 같아 미안하다"는 말
아마도 이번 사건을 접하며 나 같은 일을 떠올리는 교사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교육자라는 이유로, 아이의 담임이라는 이유로 여러 번 속울음을 삼키며 그 생채기들을 마음속에 품고 살고 있으리라.
그래서인지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교사들의 태도는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소극적이고 조용한 집단이고 단체 행동이 잘 이루어지지 않던 전에 비해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모두들 한마음 한뜻이 되는 듯하다. 그간 꾹꾹 눌러온 울분들이 이번 사건으로 도화선이 되어, 안타깝게도 한 번에 터진 것이다.
이번 초등교사의 안타까운 사고 후, 교사들 SNS에 수많은 추모글들이 올라왔는데 그 중 가슴에 오래 머무른 문구가 있었다. "저만 올해 좋은 학부모와 학생을 만난 것 같아 미안합니다"라는 말 말이다.
매해 다른 학부모와 학생을 접하는 교사. 그만큼 그 해에 만나는 학생들과 학부모에 따라 교사들의 1년이 좌지우지 된다. 방학을 앞둔 요즘, 내가 지난 한 학기를 돌아보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바로 우리 반 학부모의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들었던 순간이었다.
공개 수업 뒤 내게 건네온 "선생님, 수업 준비하느라 수고 하셨습니다"라는 한 마디 말이다. 현장체험 사진을 올린 게시글에 달린 "더운 날 아이들 데리고 다니느라 수고했습니다"라는, 별 것 아닌 한 마디. 그런 향기로운 말들이 교단에 올라 선 내 두발에 힘이 들어가게 했다. 그리고 그 힘은 아이들에게도 전해져 교실, 나아가 그들이 살아갈 세상을 더 향기롭게 만든다.
힘들 때 참지 마세요, 꼭 주변에 알리세요
S초 선생님은 이제 2년차, 한창 꽃피울 나이였다고 들었다. 아이들의 마음에 큰 희망의 꽃을 마음에 피워줄 수 있었을 아름다운 한 송이 꽃이 져버렸다. 그 선생님을 살게 했을 학부모들의 향기로운 한 마디들, 한편으론 교사들이 법적, 제도적으로 의지할만한 단단한 지지대가 있었다면 그 꽃은 지금 활짝 필 수 있지 않았을까.
11년 차인 선배로서 죄책감이 든다. 우리가 좀 더 목소리를 빨리 내주었어야 하는데, 라고 말이다. 교육현장이 단단해져야 아이들의 살아갈 세상도 단단해진다. 그 힘은 교사에게서 나오고 또 그런 교사를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은 학부모들의 향기로운 말 한 마디, 믿음과 신뢰다.
한편으론 지금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 교사들에게, 11년 차 교사로서 말해주고 싶다. 힘듦을 마음속으로 삼키지만 말고 드러내고 도움받고 적극적으로 알리라고. 또 말하고 싶다. 그런 교사들의 목소리를 듣고 해결해주는 법이라는 든든한 지지대도 필요하다고. 그것이 또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단단한 세상을 만드는 지름길이기도 하므로.
방학이 끝나면 좀 더 나은 세상이 되어 있을까? 작은 희망을 품으며 여름방학 전 마지막 알림장을 마무리한다. 어쩌면 지금도 곳곳에서 큰 꽃들이 꺾이고 지고 하면서 겨우겨우 학교현장을 지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가슴 속 희망을 피울 단단한 선생님들이 더는 꺾이지 않도록, 주변의 지지대와 자양분 같은 변화의 물결들이 곳곳에서 일렁이길 바란다.
최근 S초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사고로 인해 요즘 학교 현장에서는 어두운 분위기가 감돈다. 교사 지인들의 카톡은 모두 애도와 추모의 뜻으로 검은 리본의 물결을 이루고, 대화방에서는 청원 사이트 공유가 줄을 잇는다.
▲ 서울 서초 S초등학교 교사가 교내에서 사망한 사실이 알려진 뒤인 20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 각 교원단체에서 보낸 추모 화환들이 놓여 있다. ⓒ 연합뉴스
학부모들의 솟구치는 민원, 아동학대라는 족쇄에 묶여 맘 편히 지도할 수 없는 교실 안, 수업 이외의 밀려드는 크고 작은 업무들. 해가 다르게 힘들어지는 교육현장에서 손발이 묶인 우리는 한자리에 모여서 "누구 하나 죽어야 이런 상황을 알아주려나"라는 말들을 탄식하듯 내뱉곤 했었는데... 그러나 그럼에도, 절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 결국 벌어지고야 말았다.
올해로 11년차, 해가 다르게 교육현장의 분위기가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감을 피부로 체감한다. 이번 사건을 접하고 3년 전 그 일이 자동 반사적으로 떠올라 나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대고 식은땀이 난다.
첫 아이 육아 후 2년 만에 첫 복직. 그 해는 내게 가장 아픈 기억으로 점철된 순간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정신과병원의 문을 두드렸고, 교권보호위원회를 처음 열어봤고, 학교 교실에 비상벨이라는 것을 설치했다.
비속어들을 몸에 감고 살았던 그때
그 당시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비속어들을 몸에 감고 살았다. 휴일이고 평일이고 가리지 않고 오는 전화와 문자에 내 하루는 그 학부모로 인해 좌지우지 되었다.
그 아이를 보면 꼭 그 학부모가 앉아있는 것 같아 수업을 하면서도 늘 위축되었고, 어쩌다 교실에서 놀이를 하다가 그 아이가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집에 가서 어떤 말을 할까 조마조마하며 하루를 보낸 적도 있었다. 그 문제의 그 학부모는 불쑥 학교를 찾아와 문을 잠그고 상담을 요청하며 욕을 하는 일도 더러 있었다.
그 전에도 학교생활을 하며 많은 어려운 학부모들을 매해 겪어왔었다. '딱 일 년만 참자'라는 마음으로 삼키고 살아왔지만 당시만큼은 한 순간도 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밤에 자면서도 그 학부모 생각에 가위눌림도 여러 차례 경험했으니까.
당시의 내 삶은 모두 그 학부모에게 반납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나는 이겨내야만 했다. '엄마 사랑해요'라고 쓴 아들의 스케치북 그림을 내 휴대폰 배경화면에 넣어두고 들여다보며 말이다.
당시 나는 학부모의 연락이 있을 때마다 교감선생님께 알렸고, 학교 측에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달라고 강력히 요구했고, 교육청 신문고에도 내 사정을 알렸다. 학부모에 대한 처벌이 법적으로 규정되지 않아 사실상 교권보호위원회 처벌은 서면사과 정도가 다였겠지만, 그래도 교사가 겪는 어려움을 확실히 드러낼 필요가 있었다. 그런 식으로, 이전엔 그냥 꾹꾹 눌러 참아온 것들을 하나씩 드러내니 숨구멍도 조금씩 트여오는 것 같았다.
이런저런 조치 끝에 나는 다른 학교로 옮겨갔고, 교육청 연계 상담을 받으며 상처 났던 마음이 조금씩 회복되어갔다. 하지만 이후 나를 대신해 담임으로 들어왔을 다른 선생님에 대한 미안함으로 마음 한구석에는 늘 무거운 돌덩이가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해당 학부모가 이전에 했던 일들로 인해 학교 측과 걸려 있던 소송에서 지면서 처벌이 내려졌고, 그들은 내게 미안하다는 편지를 전해왔다. 또 그 이후로는 학교의 담임 교사에게는 전혀 연락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내 가슴 속 돌덩이를 조심스레 내려놓을 수 있었다.
"저만 좋은 학부모 만난 것 같아 미안하다"는 말
▲ 20일 오후 서울교육청앞에서 서울교사노조와 전국초등교사노조 조합원들이 ‘(S초등학교)신규 교사 사망 사건 추모 및 사실 확인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교사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우성
아마도 이번 사건을 접하며 나 같은 일을 떠올리는 교사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교육자라는 이유로, 아이의 담임이라는 이유로 여러 번 속울음을 삼키며 그 생채기들을 마음속에 품고 살고 있으리라.
그래서인지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교사들의 태도는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소극적이고 조용한 집단이고 단체 행동이 잘 이루어지지 않던 전에 비해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모두들 한마음 한뜻이 되는 듯하다. 그간 꾹꾹 눌러온 울분들이 이번 사건으로 도화선이 되어, 안타깝게도 한 번에 터진 것이다.
이번 초등교사의 안타까운 사고 후, 교사들 SNS에 수많은 추모글들이 올라왔는데 그 중 가슴에 오래 머무른 문구가 있었다. "저만 올해 좋은 학부모와 학생을 만난 것 같아 미안합니다"라는 말 말이다.
매해 다른 학부모와 학생을 접하는 교사. 그만큼 그 해에 만나는 학생들과 학부모에 따라 교사들의 1년이 좌지우지 된다. 방학을 앞둔 요즘, 내가 지난 한 학기를 돌아보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바로 우리 반 학부모의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들었던 순간이었다.
공개 수업 뒤 내게 건네온 "선생님, 수업 준비하느라 수고 하셨습니다"라는 한 마디 말이다. 현장체험 사진을 올린 게시글에 달린 "더운 날 아이들 데리고 다니느라 수고했습니다"라는, 별 것 아닌 한 마디. 그런 향기로운 말들이 교단에 올라 선 내 두발에 힘이 들어가게 했다. 그리고 그 힘은 아이들에게도 전해져 교실, 나아가 그들이 살아갈 세상을 더 향기롭게 만든다.
힘들 때 참지 마세요, 꼭 주변에 알리세요
S초 선생님은 이제 2년차, 한창 꽃피울 나이였다고 들었다. 아이들의 마음에 큰 희망의 꽃을 마음에 피워줄 수 있었을 아름다운 한 송이 꽃이 져버렸다. 그 선생님을 살게 했을 학부모들의 향기로운 한 마디들, 한편으론 교사들이 법적, 제도적으로 의지할만한 단단한 지지대가 있었다면 그 꽃은 지금 활짝 필 수 있지 않았을까.
11년 차인 선배로서 죄책감이 든다. 우리가 좀 더 목소리를 빨리 내주었어야 하는데, 라고 말이다. 교육현장이 단단해져야 아이들의 살아갈 세상도 단단해진다. 그 힘은 교사에게서 나오고 또 그런 교사를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은 학부모들의 향기로운 말 한 마디, 믿음과 신뢰다.
한편으론 지금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 교사들에게, 11년 차 교사로서 말해주고 싶다. 힘듦을 마음속으로 삼키지만 말고 드러내고 도움받고 적극적으로 알리라고. 또 말하고 싶다. 그런 교사들의 목소리를 듣고 해결해주는 법이라는 든든한 지지대도 필요하다고. 그것이 또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단단한 세상을 만드는 지름길이기도 하므로.
방학이 끝나면 좀 더 나은 세상이 되어 있을까? 작은 희망을 품으며 여름방학 전 마지막 알림장을 마무리한다. 어쩌면 지금도 곳곳에서 큰 꽃들이 꺾이고 지고 하면서 겨우겨우 학교현장을 지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가슴 속 희망을 피울 단단한 선생님들이 더는 꺾이지 않도록, 주변의 지지대와 자양분 같은 변화의 물결들이 곳곳에서 일렁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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