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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도 꺾이지 않는 대학생 의료봉사단의 열정

대학생 조카의 의료봉사활동을 보며 우리 사회의 돌봄을 생각하다

등록|2023.07.29 16:34 수정|2023.07.30 16:25

▲ 건부항 치료를 하는 모습 ⓒ 최윤진


대학생인 조카가 캐리어를 빌리러 우리 집에 왔다. 여름방학이라 어디 여행이라도 가는 건가 했지만 의료봉사활동을 다녀올 거라고 했다.

한의대에 재학 중인 그는 의료봉사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매년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의료시설이 낙후된 농촌 마을로 봉사활동을 가서 지도 교수님과 함께 어르신들을 진료한다.

학기 중에 고되게 공부하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친구들과 여행이라도 다니며 풀 법한데 이 무더운 날씨에도 봉사활동을 간다니 대견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고작 며칠 봉사활동을 하며 진료해 주는 것이 과연 그곳 주민들에게 도움이 될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조카 말에 따르면, 환자들은 거의 고령의 노인들이며 주로 어깨가 쑤시고 아파서, 무릎이 아파서, 소화가 잘 안돼서, 요즘 같은 날씨에는 서병(暑病)으로도 많이 찾아온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과 같은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환자가 찾아오면 봉사단은 가장 먼저 예진한다. 식사는 얼마나 자주 하는지와 그 양은 어느 정도인지, 대소변은 얼마나 자주 보며 상태는 어떤지, 잠은 잘 주무시는지, 어떤 꿈을 꾸는지, 몇 번을 깨는지 등 아주 자세히 예진한다. 그러고 나서 침 치료나 물리치료, 한약 처방 등을 한다.
   
다음은 조카가 들려준 가장 기억에 남는 어느 환자의 이야기다.

'지난해 봉사활동을 갔을 때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70대 환자분이 오셨다. 그는 흰머리가 하나도 없었으며 정갈한 옷차림을 하고 지팡이를 짚고 왔다. 그 모습이 마치 영국 신사 같아 보여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다.

예진하면서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오랫동안 나누었다. 예전에는 아주 외향적이었다던 그는 파킨슨병을 앓으며 성격이 소극적으로 변하고 말까지 더듬게 됐다.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의기소침해 있었다. 그러고는 두침(頭鍼) 치료를 받고 갔다.

다음날 그는 음료수를 한 보따리 들고서 진료소를 다시 방문했다. 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하지만 행복한 표정으로 치료해 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말을 더듬지 않으면서 말이다.'

어르신들은 특별히 아픈 데가 없어도 진료소를 찾는다. 설령 아픈 데가 있더라도 며칠간의 진료로 완쾌될 수 없는 병인 걸 알고도 그들은 진료소를 찾는다. 그 이유는 뭘까?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안부를 물어봐 주고 몸을 만져주는 봉사단의 관심과 손길에서 위로받을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침 치료 한번 했을 뿐인데도 환자의 몸이 좋아지는 기적이 일어났던 건 아닐까?
 

▲ 동의대 한의대 의료봉사동아리 '댓바람', 학생들이 예진을 하고 있다. ⓒ 최윤진

    
평균 수명이 점차 늘어가고 과거와는 달리 질병의 양상이 만성질환 위주로 변하면서 치료보다는 돌봄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비록 일 년에 며칠 동안이지만 정기적으로 한 마을을 찾아가 그곳 어르신들의 안부를 챙기는 일은 만성질환이 심각한 상태로 커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봉사단이 하는 이 일은 분명 작지만 대단한 일이다.
   
조카는 봉사활동을 하는 4박 5일 동안 마을회관에서 지냈다. 좁은 곳에서 많은 사람이 함께 생활해야 하니 오죽 불편했을까. 몸을 씻고 밥을 해 먹는 기본적인 공간도 마땅치 않은 환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불편을 감수하고도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동아리 구성원,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워 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치료를 받고 난 후 힘들게 농사지은 옥수수나 수박 같은 간식을 챙겨와 감사 인사를 하는 주민들을 보면서 조카는 의료인으로서의 책임감, 관계와 소통의 중요성을 느낀다고 했다. 생김새도 성품도 상냥하고 너그러운 조카는 이런 경험들을 차곡차곡 쌓아 동아리 이름인 '댓바람'처럼 환자에게 서슴지 않고 달려가 진심을 다해 돌보고, 우리 사회를 좀 더 건강하게 만들 한의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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