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소식에 "마음 아파요"라는 아이, 함께 책을 읽었습니다
고 김재림 할머니를 추모하며 <일제 강제동원, 이름을 기억하라!>를 읽고
▲ <일제 강제동원 이름을 기억하라!>(글 정혜경, 그림 최혜인, 사계절, 2018), 가격 12,000원 ⓒ 사계절
아이들이 방학을 해 대화할 시간이 많아진 가운데, 지난달 30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김재림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접했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딸이 기사를 보고 "엄마, 너무 마음이 아파요"라고 말한다. 관련한 책을 함께 읽으며 할머니의 생애를 검색했다.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김 할머니는 1930년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관영리에서 1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능주공립초등학교(현 능주초등학교) 졸업 후, 같은 해인 1944년 5월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에 강제동원 됐다. 2년 정도 제작소에서 생활하다 1945년 귀향했다.
아이들과 함께 찾은 책, 피해자들은 어찌 이 세월 견뎠을까
▲ 미쓰비시중공업 강제동원 피해자 김재림(1930~2023) 할머니. ⓒ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일제 강제동원'에 대해 설명은 쉬웠지만 아픔까지 함께 느끼기는 어려웠다. 밖은 한여름이다. 아이와 함께 시원한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찾은 책, <일제 강제동원 이름을 기억하라!>를 넘길 때마다 피해자분들은 어찌 이 모진 세월을 견뎌내었을까 하며 마음이 저렸다.
지은이 정혜경은 정부 기관인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에서 11년간 조사과장으로 일했다. 이 경력 때문인지 여는 글인 글쓴이의 말과 '기록이 말하는 일제 강제동원', '이름을 기억하라', '기억하고 실천해야 해'. 모두 세 개의 이야기가 굉장히 설득력이 있었다. 그린 이인 최혜인은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지금은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자칫 어려워질 수 있는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책장을 넘기니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2013년 11월 17일. 한 기자의 특종으로 세상이 발칵 뒤집혔단다.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마을 이장들이 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전쟁에 끌려간 사람의 이름을 전국에서 모은 자료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그렇다. 이 명부의 이름은 '일정 시 피징용자 명부'였다(관련 기사: 3·1운동 당시 희생된 630명 명부 최초공개 https://omn.kr/4zeb )
주일 한국대사관이 이사갈 때까지 서고 상자 안에 있는 서류의 가치를 60년 동안 알아보지 못했다. 어려운 한자로만 되어 있었기에. 장관 도장이 찍혀 있는 것을 보고, 자료 확인차 저자인 정혜경 박사에게 의뢰가 왔다. 거기에는 22만 8274개의 사연 많은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일본의 탄광에서 탄을 캐면서 부모님을 그리워하던 소년. 태평양에서 비행장 닦던 청년 이야기. 경북 방직공장에서 일하다가 감독에게 얻어맞아 울던 소녀. 함경북도에서 철도를 놓던 할아버지까지.
▲ 2023년 7월 30일 별세하신 고 김재림 할머니책 표지 뒷면에 있는 문구를 읽으며 김재림 할머니를 떠올려본다 ⓒ사진출처=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강제동원 피해는 동원된 뒤 남은 그 가족에게도 크나큰 상처를 주었다. 일례로, 책에 나오는 신윤순 할머니는 한 번도 아버지의 얼굴이 본 적이 없고, 어릴 적 친구들의 놀림에 속상할 때도 많았단다. 신 할머니가 태중에 있을 때, 아버지는 사할린(화태)으로 징용을 갔기 때문에 그렇다.
추후 그는 사할린 탄광에서 보내진 편지를 들고 기나긴 여정 동안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사할린에 도착하자 개인이 와서 안 된다며 거부당했던 신 할머니는, "나라가 나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누군가에게 아들이었고 딸이었을 그분들
일본 정부는 당시 일할 사람을 찾다가 "일하면서 배울 수 있고, 월급도 많이 받게 해 준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본문 115쪽 중)"라면서 13세 이상 여학생이나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을 조선에서 데려오기로 했다. 공장에 비행기 부품을 만들던 청년들이 전쟁터로 나가, 부품을 만들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던 조선 소녀들은 미쓰비시중공업의 거짓말에 속고 말았다. 시간은 흘러 나고야에 갔던 소녀들은 할머니가 되었다.
한편, 책에는 지난 역사를 반성하고 실천의 삶을 살고 있는 일본의 선생님도 소개되었다. 세계사 선생님인 다카하시 마코토 선생님은 살고 지역 공장인 미쓰비시 중공업에 조선인 소녀들이 강제 동원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1999년 미쓰비시 중공업을 법정에 세웠다.
미쓰비시 측의 사과와 대법원판결을 기다리다가 건강 약화로 세상을 떠나는 분들이 늘고 있다. 김재림 할머니 또한 그중 한 분이다.
책 마지막 장을 덮으며 아이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김 할머니가 어릴 적 나고 자란 곳인 화순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이라서 더 많은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어쩌면 할머니의 강제동원 되었던 시기가 딱 지금 아이들 나이였으니 말이다.
할머니가 졸업한 학교를 사진으로 보면서, 다음엔 아이들과 함께 가보기로 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누군가에게 아들이었고 딸이었을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억하고 작게라도 실천하는 것이다.
김재림 할머니를 포함한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를 잊어선 안 될 것이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말처럼 할머니의 마지막이 헛되지 않도록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아픈 역사를 기억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화순저널에 실립니다. 방방곡곡 김민지 문화평론가의 글은 네이버블로그(mjmisskorea, 북민지) "애정이넘치는민지씨"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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