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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우크라 점령지 주민에게 시민권 강요

미 예일대 연구소 "명백한 국제법 위반" 비판

등록|2023.08.04 10:44 수정|2023.08.04 11:37

▲ 예일 공중보건대학 인도주의 연구소는 2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인 도네츠크, 루한스크, 자포리자, 헤르손 내의 주민들에게 러시아 시민권을 강요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 표지 속 사진은 러시아 점령군이 거동이 불편한 루한스크의 한 주민을 직접 방문해 시민권 발급을 강요하는 모습이다. ⓒ 예일 공중보건대학 인도주의 연구소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점령한 지역의 주민들을 러시아 시민으로 귀화하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미국 연구소의 보고서가 나왔다.

예일 공중보건대학 인도주의 연구소는 2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인 도네츠크, 루한스크, 자포리자, 헤르손 내의 주민들에게 러시아 시민권을 강요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해당 지역의 주민들이 "위협과 협박, 인도주의적 지원과 기본 생필품에 대한 제한, 구금 또는 추방 가능성 등에 노출"되어 있다고 설명하며 "이 모든 것이 러시아 시민이 되도록 강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민권 결정 안 하면 추방 혹은 구금

보고서는 점령지 주민에게 러시아 시민권을 강요하는 러시아 정부의 방법을 두 가지로 분류했다.

첫 번째 방법은 러시아 시민권 신청을 법적으로 간소화하고 시민권 신청을 거부하는 이들에게 구금 또는 추방을 가할 수 있는 법안을 제정한 것이다.

올해 3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점령지 당국에 지역 주민들의 시민권 발급을 신속히 처리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자 점령지 당국은 임시 시민권 발급 사무소를 우후죽순으로 설치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자포리자와 헤르손에 각각 17곳과 19곳, 루한스크에 36곳의 시민권 발급 사무소가 있다.

또한 2022년 6월까지만 해도 최대 3개월이 걸리던 발급 절차가 지금은 2주가 걸리지 않도록 절차 과정이 대폭 간략화되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임명된 지역 지도자들이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과 시골 거주민들의 경우 직접 방문해 시민권 발급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편 올해 4월, 푸틴 대통령은 점령지 주민들이 2024년 7월 1일까지 러시아 시민권을 받거나 거부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러시아가 점령지를 합병한 지난해 10월 이후 점령지에 거주한 주민들의 경우 2024년 1월 1일까지 러시아 시민권을 받을지 거부할지 선택해야만 한다.

만약 이 기한까지 시민권을 받지 않는 사람은 '외국인 및 무국적자'로 간주되어 구금되거나 불특정 장소로 ​​추방될 수 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도네츠크 당국은 내년 7월 이후에도 시민권을 발급하지 않은 채 점령지에 남아있는 주민들을 수용할 시설의 설립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점령지 주민들이 시민권을 받더라도 러시아 시민권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 이들 주민들은 언제든 러시아에 귀화한 사실이 취소될 수 있어 사실상 2등 시민으로 전락한 셈이라고 보고서는 덧붙였다.

시민권 없이는 의료 서비스도, 전기도 이용 불가

러시아는 시민권이 없는 점령지 주민들에게 일상을 영위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여러 분야에서 제한을 가하려고 한다. 보고서는 그러한 제한에 "의료 서비스, 사회 서비스, 운전 및 취업 능력, 폭력 및 협박과 같은 명백한 위협 등이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러시아 정부가 점령지 주민들에게 러시아 시민권을 발급하는 조건으로 특정 의약품과 의료 서비스 접근을 허용했다며 이로 인해 점령지 주민들이 시민권을 받지 않으면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극단적 상황에 놓여있다고 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회 서비스에 대한 접근 역시 러시아 시민권을 받은 주민들에 한해서만 제공되며 자녀를 기르는 주민의 경우 시민권을 받지 않으면 매달 나오는 양육 수당을 받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 정부는 운전 면허증, 차량 등록, 심지어 전력망에 대한 접근 역시 시민권을 받은 주민만 가능하도록 조치하고 있다.

이러한 러시아 당국의 점령지 주민을 향한 시민권 강요에 대해 보고서는 "시민권 발급을 위한 필수 요소인 점령군에 대한 충성 맹세는 헤이그 협약과 제네바 협약을 위반하는 것이며 국적을 이유로 점령지 주민을 차별하는 것 역시 제네바 협약을 위반한 행위"라며 러시아 정부가 국제법을 명백히 어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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