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간 기다려 사온 햄버거를 보고 아빠가 한 말
줄 서는 맛집에 중장년층이 없다... '기다림의 미학'이 그리워지네요
나는 '휴가전쟁'에 있어 항상 약자였다. 휴가,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단어. 그러나 그 속엔 무엇보다 치열한 눈치싸움이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에겐 1년에 한 번 얻는 명절휴가는 귀성길 기차표를 사기 위한 전쟁이었다. 아버지 시대의 군대 휴가란 끈기의 다른 말이었다. 하루라도 포상휴가를 받아보고자 무엇이라도 일단 하고야 하는. 그럼 나는? 성수기 인파에 못 이겨 감히 나갈 엄두를 못 내는 암흑의 시기가 바로 내 휴가다.
더위나 추위에도 약하고, 엉덩이도 무겁지 못한 나는 이 대결에서 언제나 불리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판세가 바뀌고 있다. 어쩐지 내가 이 전쟁의 강자가 되고 있는 기분이다.
올 여름 휴가는 맛집에서
웨이팅의 '웨'자도 피했던 내가 모든 맛집을 섭렵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로 태블릿 예약 서비스가 크게 퍼졌다. 어떤 식당을 가도 문 앞에 예약 태블릿이 있다. 이곳에 휴대폰 번호를 입력하면 알아서 순번이 되었을 때 알람을 보내준다.
기다림은 이제 정적이 아니라 동적이다. 나는 '최적의 웨이팅 방문 코스'를 짠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기 위해 지도 어플을 켠다. 주변 상점이나 명소를 들르기도 하고, 카페에 앉아 시간도 때운다. 심지어 숙소를 잡아 눈을 붙이고 나오기도 한다.
가게들도 대기자를 위해 주변에 포토부스나 테마거리를 조성하는 등 즐길거리를 만든다. 이것이 요즘 '기다림'의 형태다. 웨이팅의 결과가 매번 만족스럽지는 않다. 오히려 동네 한적한 음식점이 더 맛있을 때도 많다. 그러나 아무나 쉽게 시도하지 못하는 핫플레이스를 다녀왔다는 점이 중요하다. 문득 궁금한 점이 생긴다. 이 대기줄에는 왜 중장년들은 보이지 않을까?
며칠 전 부모님과 휴가로 속초 리조트를 간 적이 있다. 체크인 시간에 딱 맞춰 들어간 탓인지, 대기자가 바글바글하다. 시장통에 혼란스러워하는 부모님을 뒤로 하고, 예약 태블릿을 찾는다. 휴대폰 번호를 입력한다.
"우리 (체크인) 대기번호 30번이래. 1시간 정도 걸릴 것같아."
아빠가 묻는다.
"1시간 동안 여기 서 있으면 돼?"
"아니. 돌아다니다 오면 되지."
"그랬다가 순서 넘어가면 어떡해?"
"휴대폰으로 알려준다잖아요."
엄마가 아빠 등을 툭 친다. 그들에게 움직이는 기다림은 낯설다. 비단 내 부모님만의 얘기가 아니다.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으면 계산대 줄도 격차가 느껴진다. 일반 계산대 줄에는 중장년이 서 있다. 끝없이 줄이 이어진다. 그러나 청년들은 추월차로를 달리듯 셀프계산대로 간다.
머리로 하는 기다림이 낯선 중장년들
인기 있는 맛집에 중장년들은 보이지 않는다. 유명 백화점 푸드코트는 주말엔 아예 스마트폰으로 원격줄서기만 가능해서, 자유로이 먹을 수 있는 곳이 50개 중 10곳이 채 되지 않는다.
기다림은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 여겼는데, 이젠 머리로 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아이러니한 것은 인내심은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 머리가 빨라진 만큼 엉덩이는 가벼워진다.
이번 여름 휴가, 부모님은 외출을 포기했다. 인파에 지칠 바에야 집에서 쉬고 싶단다. 난 오는 길에 '파이브가이즈 강남점'의 햄버거를 포장해온다. 장장 8시간을 기다려 사온 전리품이다.
"맛은 있는데, 밥을 기다려서 먹는다는 게 아직 이해가 잘 안 되네."
아빠는 고개를 갸웃한다. 하지만 아빠는 아직도 기다림의 강자다. 놀이공원에서 발이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어린 딸을 목마 태우고 3시간을 서 있던 당신이다. 지금도 여전하다. 언제 야근이 끝날지 모르는 날 데리러 3시간을 기본으로 차에서 졸며 기다린다.
어른들은 그 자리에 있다. 기다림이 그들을 기다리지 못할 뿐이다. 언제나 영원할 줄 알았던 휴가의 형태가 변하고 있다. 부모님과 나 사이의 벌어진 틈이 보인다. 어쩐지 이번 여름은 '기다림의 효율'보다 '기다림의 미학'이 그립다.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에겐 1년에 한 번 얻는 명절휴가는 귀성길 기차표를 사기 위한 전쟁이었다. 아버지 시대의 군대 휴가란 끈기의 다른 말이었다. 하루라도 포상휴가를 받아보고자 무엇이라도 일단 하고야 하는. 그럼 나는? 성수기 인파에 못 이겨 감히 나갈 엄두를 못 내는 암흑의 시기가 바로 내 휴가다.
올 여름 휴가는 맛집에서
▲ 테이블링서비스 ⓒ 정누리
웨이팅의 '웨'자도 피했던 내가 모든 맛집을 섭렵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로 태블릿 예약 서비스가 크게 퍼졌다. 어떤 식당을 가도 문 앞에 예약 태블릿이 있다. 이곳에 휴대폰 번호를 입력하면 알아서 순번이 되었을 때 알람을 보내준다.
기다림은 이제 정적이 아니라 동적이다. 나는 '최적의 웨이팅 방문 코스'를 짠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기 위해 지도 어플을 켠다. 주변 상점이나 명소를 들르기도 하고, 카페에 앉아 시간도 때운다. 심지어 숙소를 잡아 눈을 붙이고 나오기도 한다.
가게들도 대기자를 위해 주변에 포토부스나 테마거리를 조성하는 등 즐길거리를 만든다. 이것이 요즘 '기다림'의 형태다. 웨이팅의 결과가 매번 만족스럽지는 않다. 오히려 동네 한적한 음식점이 더 맛있을 때도 많다. 그러나 아무나 쉽게 시도하지 못하는 핫플레이스를 다녀왔다는 점이 중요하다. 문득 궁금한 점이 생긴다. 이 대기줄에는 왜 중장년들은 보이지 않을까?
며칠 전 부모님과 휴가로 속초 리조트를 간 적이 있다. 체크인 시간에 딱 맞춰 들어간 탓인지, 대기자가 바글바글하다. 시장통에 혼란스러워하는 부모님을 뒤로 하고, 예약 태블릿을 찾는다. 휴대폰 번호를 입력한다.
"우리 (체크인) 대기번호 30번이래. 1시간 정도 걸릴 것같아."
아빠가 묻는다.
"1시간 동안 여기 서 있으면 돼?"
"아니. 돌아다니다 오면 되지."
"그랬다가 순서 넘어가면 어떡해?"
"휴대폰으로 알려준다잖아요."
엄마가 아빠 등을 툭 친다. 그들에게 움직이는 기다림은 낯설다. 비단 내 부모님만의 얘기가 아니다.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으면 계산대 줄도 격차가 느껴진다. 일반 계산대 줄에는 중장년이 서 있다. 끝없이 줄이 이어진다. 그러나 청년들은 추월차로를 달리듯 셀프계산대로 간다.
머리로 하는 기다림이 낯선 중장년들
인기 있는 맛집에 중장년들은 보이지 않는다. 유명 백화점 푸드코트는 주말엔 아예 스마트폰으로 원격줄서기만 가능해서, 자유로이 먹을 수 있는 곳이 50개 중 10곳이 채 되지 않는다.
기다림은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 여겼는데, 이젠 머리로 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아이러니한 것은 인내심은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 머리가 빨라진 만큼 엉덩이는 가벼워진다.
▲ 파이브가이즈 ⓒ 정누리
이번 여름 휴가, 부모님은 외출을 포기했다. 인파에 지칠 바에야 집에서 쉬고 싶단다. 난 오는 길에 '파이브가이즈 강남점'의 햄버거를 포장해온다. 장장 8시간을 기다려 사온 전리품이다.
"맛은 있는데, 밥을 기다려서 먹는다는 게 아직 이해가 잘 안 되네."
아빠는 고개를 갸웃한다. 하지만 아빠는 아직도 기다림의 강자다. 놀이공원에서 발이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어린 딸을 목마 태우고 3시간을 서 있던 당신이다. 지금도 여전하다. 언제 야근이 끝날지 모르는 날 데리러 3시간을 기본으로 차에서 졸며 기다린다.
어른들은 그 자리에 있다. 기다림이 그들을 기다리지 못할 뿐이다. 언제나 영원할 줄 알았던 휴가의 형태가 변하고 있다. 부모님과 나 사이의 벌어진 틈이 보인다. 어쩐지 이번 여름은 '기다림의 효율'보다 '기다림의 미학'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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