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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전망대'가 이렇게 변하다니... 상상도 못 했다

[애기봉평화생태공원] 생태공원으로 거듭난 그곳에서 마주한 북한 땅

등록|2023.08.26 12:42 수정|2023.08.26 12:42

▲ 애기봉평화생태공원,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북한 땅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깝다. ⓒ 성낙선


가끔 세상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간혹 누군가 '세상이 변한 게 없다'거나 심지어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고 한탄하는 소리를 들을 때도 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나면 세상이 계속 바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떻게든 한 걸음 한 걸음, 더딘 걸음이기는 하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애기봉평화생태공원에서도 그런 역사의 곡절을 읽는다. 이 공원의 예전 이름은 '애기봉통일전망대'다. 통일전망대라고 하면,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온갖 주의사항을 귀담아듣고 난 뒤, 전망대에 올라가 망원경으로 북한 땅을 내려다보던 기억이 전부다. 전망대 분위기는 매우 무거웠다. 항상 긴장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통일전망대는 으레 그런 곳이었다.
 

▲ 애기봉평화생태공원, 주제공원의 분수대. ⓒ 성낙선


그래서 통일전망대가 '생태공원'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 같은 건 상상도 못 했다. 등치가 불가능했다. 통일전망대는 민간인들이 드나들기는 해도 사실상 '군사 시설'에 더 가까운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애초 변화를 기대하기 힘든 곳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속단할 일이 아니었다. 애기봉평화생태공원은 '통일전망대'도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애기봉평화생태공원은 2017년 11월 공원 조성 사업에 들어가 작년 6월 말이 되어서야 모든 공사가 완료됐다. 이 사업에 약 26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이전 애기봉통일전망대에는 기존의 '전망대'와 매년 겨울에 조명을 점등하는 문제로 남북 간 갈등을 야기했던 '애기봉 등탑'이 있었다. 애기봉 등탑은 공원이 조성되기 이전인 2014년에 이미 철거가 된 상태였다.
 

▲ 애기봉평화생태공원, 무장애길과 평화생태전시관 등이 보인다. ⓒ 성낙선


통일전망대에 찾아온 변화

애기봉평화생태공원에서 일어난 변화는 무엇보다 시설이 크게 확충되고,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예전보다 더욱 다양해진 데서 찾아볼 수 있다. 공원은 크게 '평화생태전시관'과 '조강전망대' 구역으로 나뉜다. 공원 입구에 있는 검문소를 지나 산비탈을 타고 오르다 보면 첫 번째로 보이는 건물이 평화생태전시관이다. 전시관 지하에 주차장이 있어 이곳에 차를 주차한다.

전시관은 영상관과 가상현실(VR)체험관, 그리고 '평화', '생태', '미래'를 주제로 한 3개의 전시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영상관에서는 조강(한강 하구)과 관련한 영상물을 시청할 수 있다. '조강'이라는 단어가 낯선 사람들은 여행에 앞서, 이곳에서 잠시 이 영상물을 시청하는 게 좋다. 여기에서 한때는 화려했지만, 한국전쟁으로 인해 이제는 과거 속으로 사라진 조강의 역사를 배울 수 있다.
 

▲ 전망대 길에 보게 되는 조강(한강 하구) 풍경. 조강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은 북한 땅, 왼쪽은 남한 땅이다. ⓒ 성낙선


조강은 예전에 '임진강과 한강, 예성강이 만나 서해로 흐르는 한강 하류 끝의 물줄기'를 지칭하던 용어다. '바다처럼 거대한 큰 강', '할아버지 강'이라는 뜻을 가졌다. 한국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조강은 '한양과 개성을 오가는 주요 조운로'로 경제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곳이었다. 또, '육로에 비해 사람과 물자를 쉽게 옮길 수 있어 견제와 군사 측면에서 최상의 조건을 갖춘 곳'이었다. 한마디로 조강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했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남북이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그러나 지금은 그같은 과거와는 아무 상관 없이,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면서 '다양한 생태 보고'로 남아 있다. 평화 전시관에서는 '전면 통창을 통해 한강 일대를 조망'하고, 생태 전시관에서는 '가슴 아픈 역사 속에서 아름답게 보전된 조강의 생태'를 볼 수 있다. 전쟁으로 사람들의 출입이 끊긴 이곳에서 수많은 동식물들이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VR체험관에서는 모형 기차를 타고 조강을 건너 개성으로 과거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 미래 전시관에서는 '애기봉평화생태공원이 담고 있는 의미'를 조명 불빛이 화려한 미디어아트로 감상할 수 있다. 미래 전시관에서 미디어아트를 놓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전시관 한쪽 끝에 위치해 있어 시선이 잘 가닿지 않기 때문이다. 전시장 한가운데 편하게 앉아 미디어아트를 감상할 수 있는 만큼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 애기봉평화생태공원, 생태 전시관 내 조형물. ⓒ 성낙선

 

▲ 애기봉평화생태공원, VR 체험관. 개성으로 과거 여행을 떠나는 열차. ⓒ 성낙선


더욱더 풍부해진 볼거리들

전시관 관람을 마치고, 건물 뒤쪽을 나가면 주제정원이 나온다. 이곳에 워터가든, 컬러풀가든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작은 정원들이 있다. 예전의 통일전망대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평화로운 풍경이다. 이 정원이 방문객들로 하여금 그들이 지금 민간인들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민통선 안에 들어와 있는 데서 느끼게 되는 긴장감을 한결 부드럽게 누그러뜨린다.

이 공원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변화는 전시관에서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길에 있다. 주제정원을 지나면 먼저 산 중턱을 가로지르는 '흔들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흔들다리가 놓이면서, 전망대 오르는 일이 한결 편해졌다.

출렁다리 밑으로는 장애인들이 휄체어를 타고 오를 수 있는 '무장애길'이 지그재그로 설치돼 있다. 길이 흔들다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다. 그래도 길 위에서 내려다보는 공원 풍경과 한강 하구(조강)가 아름답다. 길은 길지만, 천천히 시간을 들여 걸을 만하다. 이 길을 오가는 사람들을 위해 중간중간 벤치가 놓여 있다.
 

▲ 애기봉평화생태공원, 흔들다리. ⓒ 성낙선

 

▲ 애기봉평화생태공원,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북한 땅을 관찰하는 방문객들. ⓒ 성낙선


조강전망대에는 평화교육관, 오픈갤러리, 루프탑 154(야외전망대) 등이 있다. 루프탑 154는 이곳 애기봉이 154고지의 야산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 야외전망대는 전망대로서는 남한에서 북한 땅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다볼 수 있는 곳이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남쪽과 북쪽이 겨우 1.4km 떨어져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조강은 물론이고 산과 들판이 오밀조밀하게 뒤섞여 있는 북한 땅과 임진강과 한강이 합류하는 지점까지 모두 한눈에 들어온다. 그 풍경이 실로 장쾌하다. 전망대 앞 북한 땅은 개풍군에 속한다.

북한 땅이 얼마나 가까운지, 조강 건너편의 논과 농촌마을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그 모습이 정겹고 아름답다. 이곳 전망대에서는 또 마을 앞길을 걸어가거나 논에서 농사를 짓는 북한 주민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추석 무렵이 되면 북한 주민들이 논에서 추수하는 광경을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농촌 마을 한켠에 허름하고 낡은 시멘트 건물 몇 채가 보인다. 북한이 전시용으로 지은 '농촌문화주택'이다. 남한으로 치면, 빌라나 다가구주택쯤 되는 건물들이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건물들이라고는 하는데, 당장 사람 사는 흔적을 찾아보는 게 쉽지 않다. 문득 그곳에 살고 있을, 그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우리가 그들을 바라보듯이 그들도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게 분명하다. 뭐라고 인사말이라도 건네고 싶은데 왠지 말 한마디 꺼내는 게 조심스럽다. 들판 너머로는 멀리 개성 송악산이 보인다. 그 산이 또 서울 시내에서 남산이나 관악산을 보는 것만큼이나 가깝다.
 

▲ 애기봉평화생태공원 전망대(루프탑 154)에서 파노라마 사진으로 찍어본 조강과 북한 땅. ⓒ 성낙선


애기봉, 그 이름에 얽힌 사연

전망대를 내려오면서 '남북평화의종'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이 종은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에서 나온 탄피와, 남북을 가로막았던 녹슨 철조망, 철거가 된 애기봉 등탑 등을 녹여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 종은 누구나 타종을 할 수 있다. 방문객들이 저마다 한 번씩 종을 두드리고 내려간다. 그로 인해 공원 안으로 끊임없이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종소리가 낮고 묵직하다. 꽤 오래 울려 퍼진다.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 전망대에서 북한 땅을 향해 목청껏 소리치지 못했던 가슴속 한 마디가 종소리가 되어 애기봉 너머로 멀리 퍼져나가는 느낌이다. 애기봉의 원래 이름은 '쑥갓머리산'이라고 한다. 여기봉(女妓峰) 또는 예기봉(藝妓峰)으로도 불렸다. 이곳이 그런 이름으로 불린 건 '병자호란 당시 오랑캐에 쫓겨 내려온 평안감사와 그의 애기(愛妓)가 조강에서 생이별을 해야만 했던 애틋한 설화'가 전해지는 데서 기인한다.
 

▲ 애기봉평화생태공원, 애기봉 비석과 남북평화의종. ⓒ 성낙선


그런데 여기봉 또는 예기봉으로 불리던 봉우리가 갑자기 애기봉이 된 과정이 석연찮다. 1966년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한 전직 군인 출신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했다가 그같은 설화 속 사연을 듣고 "이곳에 친필로 애기봉이라 쓰고 비석을 세우도록 하였다"는 말이 있다. 그 이후, "애기봉이라는 이름이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추측건대 '예기봉'을 '애기봉'으로 잘못 알아듣고 그같은 이름을 남긴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애기봉평화생태공원에 가보기 전에는 통일전망대가 영원히 통일전망대로 남아 있을 줄 알았다. 다시 가 봐야 뭐가 또 볼 게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적어도 애기봉평화생태공원에서는 이제 예전의 통일전망대에서 겪었던 일들 같은 건 모두 잊어 버려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것 하나, 애기봉평화생태공원에 갈 때 신분증을 가져가야 하는 것만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리고 사전에 예약을 하고 가는 것도 잊지 말자. 그렇지 않으면 방문객이 많은 날엔 정문에서 퇴짜를 맞을 수도 있다. 주말엔 예약이 필수다. 그나마 다행인 게, 최근 방문객이 급증하면서 지난 7월 24일부터 연중 휴무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입장료는 성인이 3000원이다.
 

▲ 애기봉평화생태공원에서 볼 수 있는 여러 휴식공간 중에 하나.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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